길주도 찰리사 조연 등이 모련위 지휘 파아손 등을 섬멸하였다는 승전 보고
길주도 찰리사(吉州道察理使) 조연(趙涓) 등이 두문(豆門)에 이르러 모련위 지휘(毛憐衛指揮) 파아손(把兒遜)·아고거(阿古車)·착화(着和)·천호(千戶) 하을주(下乙主) 등 네 사람을 유인하여 죽이고, 군사를 놓아 그 부족(部族) 수백 인을 섬멸하고 가옥을 불사르고 돌아왔는데, 사로잡은 것이 남자 한 명, 여자 26명이고, 장사(將士)가 잡은 인구가 남녀 합하여 약간 명이었다. 이에 조연이 첩음(捷音)으로 의정부(議政府)에 보고하였다.
"연(涓)이 2월 29일에 신유정(辛有定)·김중보(金重寶)·곽승우(郭承祐)와 더불어 군마(軍馬) 1천 1백 50명을 거느리고 길주(吉州)를 출발하여 3월 초6일에 오음회(吾音會)의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가 있는 곳에 이르러 동건(童巾)에 사는 올량합 지휘(兀良哈指揮) 아란(阿亂)의 손자(孫子) 가시구(加時仇)를 붙잡아, 경원(慶源)에 침입한 적당(賊黨)들을 물어 보았는데, 곧 구주(具州)에 사는 올적합(兀狄哈) 김문내(金文乃)·갈다개(葛多介)·장노(將老) 다비내(多非乃) 및 동지휘(童指揮)의 관하(管下) 안춘(安春)·끽리(喫里) 등 수십 명과 두문(豆門) 보을오(甫乙吾) 관하(管下) 최합아불화(崔哈兒不花) 등이었습니다. 또 들으니, 동지휘(童指揮)가 싸움을 돕는다고 소리쳐 말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경원부(慶源府)의 소다로(所多老)에 이르러 각호(各戶)의 가재(家財)와 우마(牛馬)를 약탈하였고, 보을오(甫乙吾)는 찰리사(察理使)를 알현(謁見)한다고 칭탁하고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소다로(所多老)를 경과하여 약탈을 자행하였다 합니다. 초9일에 올량합 지휘(兀良哈指揮) 아고거(阿古車)가 살고 있는 두문(豆門)에 이르러 가시구(加時仇)의 형(兄) 합아비(哈兒非)를 붙잡아 물어 보았는데, 갈다개(葛多介)·김문내(金文乃)가 당초에 대부(大父) 아란(阿亂)이 있는 곳에 함께 가서 보을오(甫乙吾)·아고거(阿古車)·착화(着和) 등 관하(管下)와 더불어 〈경원에〉 침략할 것을 함께 의논하였고, 구주(具州)의 갈다개(葛多介) 등 적류(賊類)는 본래 5호(戶)였는데, 동지휘(童指揮)가 사람을 시켜 ‘조선(朝鮮)이 군사를 보내어 문죄(問罪)한다.’고 고하여, 일찍이 도망하여 산속에 숨었다고 합니다. 생각건대, 올적합(兀狄哈)·올량합(兀良哈)·오도리(吾都里)는 여진(女眞) 남녀(男女)와 서로 혼인하여 모두 같은 족류(族類)인데, 서로 서로 주모(主謀)하여, 떼로 모여 도적질을 하며, 마음대로 변경(邊境)에 들어와 우마(牛馬)를 약탈하고 인물(人物)을 살상하며, 심지어는 임의로 국고(國庫)를 열어서 그 해(害)가 대단히 심합니다. 동맹가첩목아는 처음에는 힘을 함께 하여 도적을 잡는다고 칭하고 분명히 약속[期會]까지 하였는데, 지금은 동량북(東良北) 사람에게 통지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물러가 주둔하였으며, 아고거(阿古車)·파아손(把兒遜)·착화(着和) 등도 두문(豆門)에서 한 번 회합(會合)하고 요해처(要害處)에 복병(伏兵)하여 동지휘(童指揮)와 더불어 서로 호응하여 난(亂)를 꾸몄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적(賊)의 괴수 아고거·파아손·착화 및 하을주(下乙主) 등과 관하(管下) 군인(軍人) 1백 60명을 잡아 베었고, 김문내(金文乃) 등은 처음부터 수모자(首謀者)가 아니고, 또 이미 도망하여 숨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날이 걸리는 노정(路程)에 진군(進軍)하기가 어려워서 이미 경원부(慶源府) 소다로(所多老)에 물러와 주둔하고 명령을 기다립니다."
보고가 도착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휘(指揮) 등이 모두 중국 조정의 직사(職事)를 받았는데, 지금 마음대로 죽였으니 이것은 상국(上國)에 흔단(釁端)을 일으킨 것이다. 하루 속히 주문(奏聞)하고, 사로잡은 인구를 모두 찾아내어 본고장에 돌려보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33면
- 【분류】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吉州道察理使趙涓等至豆門, 誘殺毛憐衛指揮把兒遜ㆍ阿古車ㆍ着和、千戶下乙主等四人, 縱兵殲其部族數百人, 燔燒廬舍而還。 生擒男一名女二十六名及將士所獲人口男女幷若干人。 於是趙涓以捷音報議政府曰:
涓於二月二十九日, 與辛有定、金重寶、郭承祐, 率領軍馬一千一百五十名發吉州, 至三月初六日, 到吾音會 童猛哥帖木兒在處, 獲童巾接兀良哈指揮阿亂孫子加時仇, 問得慶源入侵賊黨, 乃具州接兀狄哈 金文乃、葛多介、將老、多非乃及童指揮管下安春喫里等數十名、豆門接甫乙吾管下崔哈兒不花等也。 又聞童指揮聲言助戰, 領兵至慶源府 所多老, 掠取各戶家財牛馬。 甫乙吾托以謁見察理使, 多率徒衆, 經過所多老, 恣行搶奪。 初九日, 至兀良哈指揮阿古車居處豆門, 獲加時仇兄哈兒非, 問得葛多介、金文乃當初同至大父阿亂處, 與甫乙吾、阿古車、着和等管下同議入侵。 其具州 葛多介等賊類, 本是五戶, 童指揮使人告以朝鮮行兵問罪, 曾已逃匿騎山。 竊謂兀狄哈、兀良哈、吾都里、女眞男女相婚, 竝是族類, 互相主謀, 群聚爲盜, 擅入邊境, 掠奪牛馬, 殺傷人物, 至乃擅開國庫, 爲害已甚。 童猛哥帖木兒初稱同力捕賊, 明爲期會, 今則傳通東良北人, 領兵退屯; 阿古車、把兒遜、着和等亦於豆門一會, 伏兵要害, 與童指揮相應構亂。 已將賊魁阿古車、把兒遜、着和及下乙主等及管下軍人一百六十名捕斬。 其金文乃等, 初非首謀, 亦已逃竄, 累日程途, 難以進兵, 已於慶源府 所多老, 退屯待命。
及報至, 上曰: "指揮等皆受中朝職事, 今而擅殺, 是生釁於上國也。 宜速奏聞, 其生擒人口, 悉令推刷還本。"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33면
- 【분류】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