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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9권, 태종 10년 2월 10일 정미 3번째기사 1410년 명 영락(永樂) 8년

길주 찰리사 조연에게 올적합을 공격하기로 결정하다. 덕릉과 안릉의 이전 문제 거론

길주 찰리사(吉州察理使) 조연(趙涓)을 명하여 올적합(兀狄哈)을 치게 하였다. 동북면 병마 도절제사(東北面兵馬都節制使) 연사종(延嗣宗)한흥보(韓興寶)가 패사(敗死)한 상황을 치보(馳報)하니, 임금이 깜짝 놀라 한흥보가 나라를 위해 전망(戰亡)하였다 하여 쌀·콩 40석과 종이 1백 권(卷)을 부의(賻儀)하고, 귀장(歸葬)하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올적합(兀狄哈)을 토벌하려고 하여 일찍이 경원(慶源)을 지켰던 자를 모조리 불러서 그 방략(方略)을 물으니, 조영무(趙英茂) 등이 아뢰기를,

"지금 올적합 등이 까닭 없이 입구(入寇)하여 변장(邊將)을 죽였으니, 이것을 내버려두고 치지 않는다면 저들이 징계(懲戒)할 바가 없을 것입니다. 파을소 지휘(波乙所指揮)도 역시 올적합의 별종(別種)인데, 그가 중간에 거(居)하여 양쪽으로 투항(投降)하니, 이것 또한 아울러 멸(滅)해야 됩니다. 청컨대, 길주도 찰리사(吉州道察理使)로 하여금 그 도(道) 병마(兵馬) 1천을 조발(調發)하여 친다면 단번에 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옳게 여겨, 대호군(大護軍) 박미(朴楣)로 경차관(敬差官)을 삼아 경원(慶源)에 가서 사변(事變)을 조사 탐지[體探]하게 하고, 돌아오는 날에 접전(接戰)할 때의 군중(軍中)의 영리한 자 한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하였다. 첨총제(僉摠制) 곽승우(郭承祐)로 경원진 병마사(慶源鎭兵馬使)를 삼고, 행 사직(行司直) 안을귀(安乙貴)로 경원진 좌우익 도천호(慶源鎭左右翼都千戶)를 삼아 역마(驛馬)를 타고 빨리 달려 진(鎭)에 부임하게 하였다. 임금이 또 의정부(議政府)에 명하여 의논하니, 하윤(河崙)·성석린(成石璘)이 대답하기를,

"작은 산도둑[山寇]을 이긴다 하더라도 무위(武威)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 이 도둑은 본래 쥐처럼 훔치고 개처럼 도둑질하여 대군(大軍)에게 덤비려 들지 않습니다. 신 등은 두렵건대, 우리 군사가 그 지경(地境)에 이르면 곧 산골짜기로 도망하고, 우리 군사가 퇴각하면 다시 와서 침요(侵擾)할 것이니, 한갓 왕사(王師)만 수고롭게 하고 후일의 변흔(邊釁)만 열어 놓을까 염려됩니다."

하였다. 조영무(趙英茂)·유양(柳亮) 등이 아뢰기를,

"작은 도적이 감히 우리 지경(地境)에 독기(毒氣)를 부리니, 이때에 섬멸하지 않으면 무위(武威)를 과시할 수 없습니다. 또 이 도적뿐만 아니라, 오도리(吾都里)·올량합(兀良哈) 잡종(雜種)도 두려워함이 없을 것이니, 한번 거사(擧事)하여 멸(滅)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조영무 등의 의논을 좇아 조연(趙涓)으로 주장(主將)을 삼고, 전 도절제사(都節制使) 신유정(辛有定)·전 동지총제(同知摠制) 김중보(金重寶)로 동북면 조전 절제사(東北面助戰節制使)를 삼아, 신유정 이하 모두 조연의 절도(節度)를 받게 하였다. 신유정은 집안이 가난하기 때문에 의정부(議政府)로 하여금 쌀과 콩을 적당하게 주어 가족(家族)을 부양(扶養)하게 하고, 또 〈신유정에게〉 습의(襲衣)와 궁시(弓矢)를 주어 보냈다. 임금이 재상(宰相)들에게 이르기를,

"경원(慶源)에는 다만 덕릉(德陵)안릉(安陵) 두 능이 있을 뿐이다. 능을 옮긴 일이 예전에도 있었으니, 능을 옮기고 군(郡)을 폐(廢)하여, 경성(鏡城)으로 물러와 지키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좋습니다. "

하였다. 이에 의정부에 명하여 능실(陵室)을 천봉(遷奉)할 편부(便否)를 의논해 아뢰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29면
  • 【분류】
    외교-야(野)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왕실-종사(宗社) / 인물(人物)

○命吉州察理使趙涓, 往伐兀狄哈。 東北面兵馬都節制使延嗣宗馳報韓興寶敗死之狀。 上驚駭, 以興寶爲國戰亡, 賻米豆四十石、紙百卷, 命歸葬。 上欲討兀狄哈, 悉召曾守慶源者問方略, 趙英茂等啓曰: "今兀狄哈等無故入寇, 殺邊將。 釋此不討, 彼無所懲。 波乙所指揮, 亦兀狄哈之別種也。 居中兩投, 亦當竝滅。 請令吉州道察理使調其道兵馬一千以往, 則可一擧而滅之也。" 上然之, 以大護軍朴楣爲敬差官, 如慶源體探事變。 命回還之日, 率接戰時軍中穎悟者一人以來。 以僉摠制郭承祐慶源鎭兵馬使, 行司直安乙貴慶源鎭左右翼都千戶, 令馳驛赴鎭。 上又命議政府議之, 河崙成石璘對曰: "蕞爾山寇, 勝之不武。 且此寇本鼠竊狗偸, 非欲抗大軍。 臣等恐師至其境, 卽逃竄山谷, 師退則復來侵擾, 徒勞王師, 而啓後日之邊釁也。" 趙英茂柳亮等啓曰: "小寇敢肆毒於我境, 不以此時往殄滅之, 卽無以示武也。 且非止此寇而已, 吾都里兀良哈雜種, 亦無所懼矣, 不如一擧而滅之。" 上從英茂等之議, 使趙涓爲主將, 前都節制使辛有定、前同知摠制金重寶爲東北面助戰節制使, 有定以下, 皆受節度。 有定家貧, 故令議政府量給米豆, 以養家屬, 又賜襲衣弓矢以遣之。 上謂宰相等曰: "慶源, 但二陵在耳。 遷陵, 古亦有之, 遷陵廢郡, 退守鏡城如何?" 皆曰: "可。" 乃命議政府, 擬議陵室奉遷便否以聞。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29면
  • 【분류】
    외교-야(野)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왕실-종사(宗社)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