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18권, 태종 9년 10월 12일 경술 1번째기사
1409년 명 영락(永樂) 7년
달단을 협공하기 위해 명에서 군사를 요청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각도에 순찰사를 보내다
각도(各道)에 순찰사(巡察使)를 나누어 보냈는데, 이직(李稷)은 서북면(西北面)에, 이원(李原)은 강원도(江原道)·동북면(東北面)에, 함부림(咸傅霖)은 충청(忠淸)·전라도(全羅道)에, 박은(朴訔)은 경상도(慶尙道)에, 전 도관찰사(都觀察使) 권진(權軫)은 풍해도(豐海道)에 보냈다. 주문사(奏聞使) 오진(吳眞)이 비밀히 명(明)나라 조정의 소식을 보고하기를,
"달단 황제(韃靼皇帝)가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관중 구자(關中口子) 밖에 주둔하고 있는데, 총병관(摠兵官)인 기국공(沂國公) 무성후(武城侯)가 이를 막다가 싸움에서 패하여, 온 군사가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므로, 황제(皇帝)가 제로(諸路)의 군사를 징집하여 장차 명년 2월에 북정(北征)하려 합니다."
하였다. 이때에 국가에서 황엄(黃儼)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혹은 전하는 말에, ‘군사 10만과 장수 두 사람을 청하여 동북면(東北面)을 경유하여 달단(韃靼)을 협공(挾攻)하려 한다.’ 하기 때문에, 이 명령이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14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명(明)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