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 편찬 시기에 대해 논란을 벌이다
영춘추관사(領春秋館事) 하윤(河崙)에게 《태조실록(太祖實錄)》을 편수(編修)하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하윤(河崙)과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유관(柳觀)·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정이오(鄭以吾)·변계량(卞季良)을 불러 대궐에 이르니, 중관(中官)이 하윤(河崙)을 인도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중관(中官)이 유관(柳觀) 등에게 전지(傳旨)하기를,
"《태조실록(太祖實錄)》을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의 지획(指畫)을 들어 편수(編修)해 올리라."
하였다. 하윤이 명령을 받고 나와서 장무 사관(掌務史官)을 불러 말하기를,
"임신년부터 경진년까지의 사관(史官)의 사초(史草)를 빨리 수납(收納)하라."
하였다. 유관·변계량이 춘추관(春秋館)에 모여 편수 사목(編修事目)을 의논하니, 기사관(記事官)이 고하기를,
"예전 사기(史記)를 보건대 모두 3대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전조(前朝) 때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태조실록》을 어찌 오늘날에 편수할 수 있습니까? 본관(本館)에서 왜 상소(上疏)하여 정지하기를 청하지 않습니까?"
하니, 유관 등이 말하기를,
"기사관(記事官)이 하는 것이 좋소."
하고, 드디어 영관사(領館事) 하윤(河崙)에게 고하니, 하윤이 말하기를,
"만일 상소하여 청하고자 하거든 반드시 예전 법을 상고하시오. 예전 사기(史記)도 모두 사군(嗣君) 때에 이루어졌소. 근거 없는 말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오?"
하였다. 기사관 등이 말하기를,
"태조(太祖)의 구신(舊臣)으로서 태조의 실록을 찬수(撰修)하면 후세(後世)의 의논이 어떻게 여기겠습니까?"
하니, 하윤이 얼굴을 붉히며 말하기를,
"태조의 일을 한때[一時]의 사관(史官)이 어떻게 다 갖추 기록하였겠소? 족히 사실로 삼을 수 없소! 마땅히 노성(老成)한 신하가 죽지 않았을 때에 본말(本末)을 갖추 기록하여 실록(實錄)을 만들어야 하오. 이것이 마땅히 할 일이오. 지금 대간(臺諫)의 신하들이 사람의 과실(過失)을 말하는 것도 꺼리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서법(書法)으로 사람을 포폄(褒貶)하는 것이겠는가? 예전 사람이 문헌(文獻)이라고 말하는데 문(文)은 사기(史記)이고, 헌(獻)은 노성(老成)한 사람을 말함이오. 나는 불가(不可)함을 알지 못하겠소."
하였다. 기사관(記事官)이 감관사(監館事) 성석린(成石璘)에게 고하니, 성석린이 말하였다.
"이 의논이 어디서 나온 것을 알 수 없으니, 노신(老臣)의 알 바 아니오. 내가 비록 감관(監館)이지만, 원래 주상(主上)의 명령이 없었고, 또 영(令)을 품(稟)한 자가 와서 말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알겠소? 소(疏)를 갖추어 청하는 것은 책임이 사관(史官)에게 있소."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05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命領春秋館事河崙, 修《太祖實錄》。 上召崙及知春秋館事柳觀、同知春秋館事鄭以吾ㆍ卞季良至闕。 中官引崙入內, 旣而, 中官傳旨柳觀等曰: "《太祖實錄》, 聽晋山府院君指畫編修以進。" 崙承命出。 召掌務史官曰: "自壬申年至庚辰年, 史官史草, 宜速收納。" 柳觀、卞季良會春秋館, 議編修事目。 記事官等告曰: "竊觀古史, 皆成於三世之後, 在前朝亦然。 《太祖實錄》, 豈宜編於今日乎? 本館盍上疏請止之?" 觀等曰: "記事官爲之可也。" 遂告領館事河崙, 崙曰: "若欲疏請, 必稽古法。 古史亦皆成於嗣君之時。 無稽之言, 何足貴哉!" 記事官等曰: "以太祖之舊臣, 撰太祖之實錄, 後世之議, 以爲如何?" 崙作色曰: "太祖之事, 一時史官, 豈能備記! 不足取以爲實, 宜及老成之臣未亡之日, 備記本末, 勒成實錄, 是可爲也。 今臺諫之臣, 猶不諱言人罪過。 況以書法褒貶人乎? 古人云: ‘文獻, 文則史也, 獻則老成人也。’ 予則不知其不可也。" 記事官等以告監館事成石璘, 石璘曰: "此議不知所自出, 非老臣所知也。 吾雖監館, 元無上命, 又無稟令者來言, 安得以知之! 具疏以請, 責在史官。"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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