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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 12월 11일 갑신 1번째기사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맹사성 및 대간들을 극형에 처하라고 판부하니, 대신들이 반대하는 청을 올리다

집의(執義) 이계공(李季拱)·장령(掌令) 이백겸(李伯謙)·헌납(獻納) 정주(鄭賙)·문수성(文守成)을 순금사에 가두었다. 이천우(李天祐) 등이 맹사성(孟思誠) 등의 옥사(獄辭)를 갖추어 아뢰니, 판부(判付)하기를,

"맹사성·서선·박안신·이안유맹귀미를 모두 극형에 처하라."

하고, 또 백관(百官)이 시가(市街)에 모여 형의 집행을 감독하라고 명하고, 또 중관(中官)을 보내어 독촉하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잃었다. 안성군(安城君) 이숙번(李叔蕃)이 아뢰기를,

"사성(思誠)이 수범(首犯)·종범(從犯)을 분간하자고 한 말은 곧 목인해(睦仁海)진원귀(陳原貴)를 가리킨 것이고, 또 직책이 언관(言官)에 있어 국가를 위한 것뿐이니, 어찌 다른 마음이 있겠습니까? 이 대륙(大戮)에 좌죄(坐罪)됨이 어찌 가하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경(卿)은 대신(大臣)이니 마땅히 초연(超然)하여 사(私)가 없어야 할 것인데, 어째서 남의 지도(指導)를 받고 이런 말을 하는가?"

하니, 숙번이 대답하기를,

"신이 젊어서부터 전하를 따랐으니, 전하께서 신의 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신은 지도를 받은 일도 없고, 두려워하는 것도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이 마땅히 이 대사(大事)를 처리하라."

하니, 숙번이 대답하기를,

"전하께서 일찍이 신 등에게 이르시기를, ‘모진 매 밑에 무엇을 구(求)하여 얻지 못하랴?’ 하셨습니다. 사성(思誠)이 심한 고문을 받고 그 고통을 참지 못하여 ‘모약왕실(謀弱王室)’이란 초사(招辭)에 승복(承服)한 것입니다. 지금 이것으로 극형을 가하는 것이 가합니까?"

하였다. 임금이 지신사(知申事) 황희(黃喜)를 책하기를,

"작지 않은 재상(宰相)이 이와 같은 말을 아뢰는데 어찌 제지하지 않았는가?"

하였다. 숙번이 순금사 사직(巡禁司司直) 김이공(金理恭)에게 이르기를,

"임금이 말을 하여 스스로 옳게 여기면, 경대부(卿大夫)가 감히 그 그른 것을 바로 잡지 못하는 것은 예전 사람이 경계(警戒)한 바이다. 남 판서(南判書)·박 참지(朴參知)는 모두 도리를 아는 재상인데, 어째서 다시 아뢰지 않고 모두 뜻에만 아첨하여 이 옥사(獄事)를 이루는가? 그대도 또한 사류(士流)인데 어째서 이같이 하느냐?"

하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기를,

"주상께서 만일 이 사람들을 반드시 사형하려고 하신다면, 신은 머리를 깎고 도망하겠다."

하였다. 권근(權近)이 또한 병든 몸으로 여(輿)를 타고 달려와 고하니, 이에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하윤(河崙)·좌정승(左政丞) 성석린(成石璘)·영삼군사(領三軍事) 조영무(趙英茂) 등이 대궐 뜰에 나와, 하윤이 아뢰기를,

"사성(思誠)은 모반(謀叛)한 것도 아니며, 무고(誣告)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공사(公事)에 실수한 것으로 극형을 당하면 어찌 정리(情理)에 맞겠습니까?"

하고, 성석린은 아뢰기를,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느니보다는, 차라리 법을 굽혀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으로 민심을 흡족시키는 것이 신들의 소원입니다."

하고, 조영무는 아뢰기를,

"신이 사성(思誠)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며, 소사(所司)를 구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전하(殿下)의 덕(德)을 돕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하윤을 책하기를,

"경이 나더러 잘못이라고 하는 것인가? 공사(公事)를 어찌 실수할 수 있는가?"

하니, 하윤이 대답하기를,

"예전에 인군(人君)이 형벌(刑罰)을 결단(決斷)하려면 반드시 삼복주(三復奏)·오복주(五復奏)를 기다렸습니다. 옛날에 한 선제(漢宣帝)양운(楊惲)을 죽였는데, 식자(識者)들이, 위상(魏相)병길(丙吉)이 정승(政丞)으로 있고, 우정국(于定國)이 정위(廷尉)로 있으면서 이를 간(諫)하여 저지하지 못한 것을 기롱(譏弄)하였습니다."

하고, 드디어 통곡하며 말하기를,

"신이 동방(東方)에 오늘날의 임금이 있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미처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경들이 아는 바이다.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사성(思誠)의 죄는 죽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경들이 이렇게까지 간(諫)하니, 내가 우선 생각해 보겠다."

하니, 모두 대답하기를,

"각사(各司)가 이미 시가(市街)에 모였으니, 만일 일찍 유윤(兪允)하지 않으시면 구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사체(事體)가 지극히 중(重)하고 내 뜻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가볍게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인주(人主)가 혼자서만 국가를 다스릴 수 없고, 경들도 어찌 나를 불의(不義)에 빠뜨리고자 하겠는가? 경들의 말을 따르겠다. 경들도 왕실(王室)이 약해지지 않도록 도모하라."

하니, 하윤 등이 모두 울며 사례하고 물러갔다. 우정승(右政丞) 이무(李茂)만은 맹귀미(孟歸美)의 장인(丈人)이기 때문에 감히 정부(政府)의 청(請)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68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정론(政論) / 변란(變亂)

○甲申/下執義李季拱、掌令李伯謙、獻納鄭賙文守成于巡禁司。 李天祐等具孟思誠等獄辭以聞, 判付曰: "孟思誠徐選朴安臣李安柔孟歸美, 竝置極刑。" 且命百官會市街監刑, 又遣中官督之, 國人皆相顧失色。 安城君 李叔蕃啓曰: "思誠首從分揀之說, 直指睦仁海陳原貴, 且職在言官, 但爲國家, 豈有他心! 坐此大戮可乎?" 上怒曰: "卿, 大臣也, 宜特立無私。 奈何受人指導, 發此言也?" 叔蕃對曰: "臣自少從殿下, 殿下固知臣之心也。 臣無所受矣, 無所畏矣。" 上曰: "卿當處此大事。" 叔蕃對曰: "殿下嘗謂臣等曰: ‘箠楚之下, 何求不得!’ 思誠痛被拷問, 不忍其苦, 乃承謀弱王室之招。 今以此而加極刑可乎?" 上責知申事黃喜曰: "不小宰相, 以如此言啓聞, 胡不止之?" 叔蕃謂巡禁司司直金理恭曰: "君出言自以爲是, 卿大夫莫敢矯其非, 古人所戒也。 判書、參知, 皆識理宰相也。 何不復啓, 而皆阿意以成此獄乎? 汝亦士流, 何若是歟?" 乃涕泣而歎曰: "上若必欲刑此人, 則臣當削髮以逃矣。" 權近亦輿疾奔告。 於是, 領議政府事河崙、左政丞成石璘、領三軍事趙英茂等詣闕庭。 啓曰: "思誠非謀叛非誣告, 但以公事失錯而被極刑, 豈協情理!" 石璘啓曰: "與其殺不辜, 寧失不經。 好生之德, 洽于民心, 臣等之願也。" 英茂啓曰: "臣非愛思誠, 非救所司也, 祇欲補殿下之德耳。" 上責曰: "卿謂予誤歟? 公事豈可以失錯哉?" 對曰: "古者人君斷刑, 必俟三復奏五復奏。 昔 宣帝楊惲, 識者譏魏相丙吉爲相, 于定國爲廷尉, 不能諫止。" 遂痛哭曰: "臣意東方未有今日之主, 不知乃有此事也。" 上曰: "予之不嗜殺人, 卿等之所知也。 反復思之, 思誠之罪可殺也, 而卿等諫之至此, 予姑思之。" 皆對曰: "各司已會市街, 若不早賜兪允, 無及矣。" 上曰: "事體至重, 予志已定, 不可輕易。 然人主不可以獨治國家, 卿等豈欲陷我以不義也? 且從卿等之言, 卿等其亦圖王室之不弱也。" 等皆泣謝而退。 獨右政丞李茂孟歸美之婦翁, 不敢與政府之請。


  •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68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정론(政論)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