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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 10월 6일 경진 7번째기사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의안 대군 이화의 졸기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가 죽었다. 조회(朝會)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쌀·콩 각각 백 석(石)과 종이 2백 권(卷)을 부의(賻儀)하였다. 시호(諡號)를 양소공(襄昭公)이라 주었다. 화(和)는 순박하고 씩씩하고 용감하여 젊어서부터 태조(太祖)를 잠저(潛邸)에 모시어 좌우(左右)를 떠나지 않았으며, 매양 정토(征討)에 따라다녀 여러 번 전공(戰功)을 나타내서 마침내 개국 공신(開國功臣)이 되고, 또 정사(定社)·좌명(佐命)의 열(列)에 참여하였다. 죽으매 나이 61세였다. 일곱 아들이 있으니 이지숭(李之崇)·이숙(李淑)·이징(李澄)·이담(李湛)·이교(李皎)·이회(李淮)·이점(李漸)이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56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義安大君 卒。 輟朝三日, 賻米豆各百石、紙二百卷, 贈諡襄昭公淳樸壯勇, 自少侍太祖潛邸, 不離左右, 每從征討, 屢著戰功, 遂爲開國功臣, 又參定社佐命之列。 卒年六十一。 七子, 之崇


  •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56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