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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 5월 27일 을해 2번째기사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대신들을 빈전·재·국장·조묘 도감의 도제조와 판사를 삼다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하윤(河崙)·좌정승(左政丞) 성석린(成石璘)·우정승(右政丞) 이무(李茂)·한산 부원군(漢山府院君) 조영무(趙英茂)로 4도감(都監) 도제조(都提調)를 삼고, 옥천군(玉川君) 유창(劉敞)·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이응(李膺)·철성군(鐵城君) 이원(李原)으로 빈전 도감 판사(殯殿都監判事)를, 한천군(漢川君) 조온(趙溫)·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이귀령(李貴齡)·서천군(西川君) 한상경(韓尙敬)으로 재 도감 판사(齋都監判事)를,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 남재(南在)·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박자청(朴子靑)·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함부림(咸傅霖)·총제(摠制) 성발도(成發道)로 국장 도감 판사(國葬都監判事)를, 이조 판서(吏曹判書) 이직(李稷)·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박자청(朴子靑)·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김한로(金漢老)·총제(摠制) 이간(李衎)으로 조묘 도감 판사(造墓都監判事)를 삼았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삼가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상고하면, ‘천자(天子)가 붕(崩)하면 항시(巷市) 7일이고, 제후(諸侯)가 훙(薨)하면 항시(巷市) 3일이라.’ 하였는데, 주(註)에 이르기를, ‘항시(巷市)라는 것은 〈마을 가운데〉 거리에서 물건을 교역(交易)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서인(庶人)이 나라의 대상(大喪)을 위하여 근심하고 슬퍼해서 저자[市]를 파(罷)하는 것인데, 일용(日用)에 필요한 물건이 또 없을 수 없기 때문에 마을 거리에서 저자[市]를 보는 것입니다. 국조 고전(國朝故典)에 대신(大臣)이 죽으면 저자[市]를 3일 동안 정지하게 되어 있으니, 지금 국상(國喪)에는 저자를 5일 동안 정지하게 하소서."

하였다. 또 아뢰기를,

"삼가 고례(古禮)를 상고하면, 소상(小祥)에는 연관(練冠)을 쓰고 수질(首絰)을 버리며, 대상(大祥)에는 상복(喪服)을 벗고 담사(禫祀) 뒤에 길복(吉服)을 입는 것이니, 지금 국상(國喪)에 문무 신료(文武臣僚)의 상복(喪服)을 전의 수판(受判)에 의하여 13일 소상(小祥)에 비로소 유각 백사모(有角白紗帽)를 쓰고, 25일 대상(大祥)에 효복(孝服)을 벗고 비로소 백의(白衣)·오사모(烏紗帽)를 쓰되, 요질(腰絰)은 그대로 띠고, 27일 담사(禫祀) 뒤에 요질(腰絰)을 버리고 비로소 백의(白衣)·백립(白笠)·오사모(烏紗帽)·흑각대(黑角帶)를 착용하여 3년을 마치고, 전함(前銜) 대소 신료(大小臣僚)는 백의(白衣)·백립(白笠)으로 3년을 마치며, 외방(外方)의 대소 사신(大小使臣)과 수령(守令)은 경중(京中)의 백관(百官)의 예(例)에 따르고, 빈전 도감(殯殿都監)과 전내(殿內)의 여러 집사(執事)는 산릉(山陵)의 안장일(安葬日)까지 한(限)하여 상복(喪服)을 벗지 말며, 정조(停朝)129) 는 13일 소상(小祥)으로 한(限)하고, 민간(民間)의 가취(嫁娶)와 사사(祠祀)는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의하여 장사지낸 뒤에는 금하지 말며, 문무 신료(文武臣僚)의 효복(孝服)은 산릉(山陵)의 안장일(安葬日)에 이르러 다시 입고 시위(侍衛)하게 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5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4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왕실-의식(儀式) / 출판-서책(書冊)

  • [註 129]
    정조(停朝) : 조회를 정지하는 것.

○以領議政府事河崙、左政丞成石璘、右政丞李茂漢山府院君 趙英茂爲四都監都提調, 玉川君 劉敞、參知議政府事李膺鐵城君 李原殯殿都監判事, 漢川君 趙溫、參贊議政府事李貴齡西川君 韓尙敬齋都監判事, 議政府贊成事南在、判恭安府事朴子靑、參知議政府事咸傅霖、摠制成發道國葬都監判事, 吏曹判書李稷、判恭安府事朴子靑、判漢城府事金漢老、摠制李衎造墓都監判事。

〔○〕 禮曹啓: "謹按《禮記》 《檀弓》曰: ‘天子崩, 巷市七日; 諸侯薨, 巷市三日。’ 註曰: ‘巷市者, 從交易之物於巷也。’ 此庶人爲國之大喪, 憂慼罷市, 而日用所須, 又不可缺, 故從市於巷也。 國朝故典, 大臣卒, 停市三日。 今於國喪, 乞停市五日。" 又啓: "謹按古禮, 小祥練冠去首絰, 大祥去喪服, 禫而卽吉。 今國喪, 文武臣僚喪服, 乞依前受判十三日小祥, 始着有角白紗帽; 二十五日大祥, 去孝服, 始着白衣烏紗帽, 仍帶腰絰; 二十七日禫後, 去腰絰, 始着白衣白笠烏紗帽黑角帶終三年。 前銜大小臣僚, 白衣白笠終三年; 外方大小使臣守令, 依京中百官例。 殯殿都監及殿內諸執事則山陵安葬日爲限, 不去喪服; 停朝以十三日小祥爲限; 民間嫁娶祠祀, 乞依《文獻通考》, 旣葬後無禁; 文武臣僚孝服, 至山陵安葬日, 更穿着侍衛。"


  • 【태백산사고본】 6책 15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4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왕실-의식(儀式)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