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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 5월 19일 정묘 4번째기사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민제와 붕당을 맺는다고 조호·김첨·허응·박돈지의 죄를 청하는 사간원의 상서

사간원(司諫院)에서 상서(上書)하여 조호(趙瑚)·김첨(金瞻)·허응(許應)·박돈지(朴惇之) 등의 죄를 청하였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생각하옵건대, 신하로서 불충(不忠)한 것은 천지(天地)가 용납하지 않고 신민(臣民)이 모두 분하게 여겨서, 천하 고금(天下古今)에 사람사람이 다 벨[誅]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 등이 인친(姻親)인 까닭으로 인해 다행히 관대한 법을 받아 목숨[首領]을 보전하였으니, 그 아비 여흥 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는 전하(殿下)의 재조(再造)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여 문(門)을 닫고 스스로 뉘우쳐서 빈객(賓客)을 접촉하지 말고 전일(前日)의 허물을 고쳐야 마땅한데, 지금 검교 찬성사(檢校贊成事) 조호(趙瑚)와 전 총제(摠制) 김첨(金瞻)·허응(許應)과 전 공안부 윤(恭安府尹) 박돈지(朴惇之)를 초치(招致)하여 서로 붕당(朋黨)을 맺어 모이지 않는 때가 없으니, 그 정상이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민제(閔霽)의 죄상(罪狀)을 성상(聖上)께서 재가(裁可)하여 시행하소서. 조호김첨민씨(閔氏)에게 붙어서 전하(殿下)께서 내선(內禪)하시려던 때를 당하여, 조호는 그 아들 희민(希閔)으로 내집사(內執事)를 시키려 하였고, 김첨은 따로 이의(異議)를 하였습니다. 대간(臺諫)의 신하들이 교장(交章)하여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전하(殿下)의 호생지덕(好生之德)113) 을 입었으니, 마땅히 뉘우쳐 깨달아서 스스로 새로워져야 할 것인데, 지금 일국(一國)의 신민(臣民)이 분하게 여김을 돌보지 않고 다시 허응·박돈지 등과 더불어 박혁(博奕)114) 을 핑계하고 항상 민씨(閔氏)의 집에 모이며, 허응은 전일(前日)의 헌사(憲司)의 장(長)으로서 아무 거리낌도 없이 아부하여 잘 보이려고 하였으며, 박돈지는 일찍이 풍속(風俗)을 더럽혀 그 이름이 형서(刑書)에 기록되어 있는데, 지나치게 주상(主上)의 은혜를 입어서 벼슬이 양부(兩府)에 이르렀으니, 성은(聖恩)에 보답하기를 도모하는 것이 그 분수인데 도리어 조호 등과 더불어 불충(不忠)한 집을 두둔하니, 그 마음이 반드시 달라서 난(亂)의 계제(階梯)를 이룰까 두렵습니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서리[霜]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 하였으니, 대개 미연(未然)에 제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사(攸司)로 하여금 조호·김첨·허응·박돈지의 직첩(職牒)을 거두시고 그 까닭을 국문(鞫問)하게 하여, 붕당(朋黨)의 근원을 막고 이상(履霜)의 조짐(兆朕)을 경계하소서."

또 상소(上疏)하기를,

"어제 조호·김첨·허응·박돈지 등의 붕비(朋比)115) 에 대한 죄상(罪狀)을 갖추어 아뢰었사온데 유윤(兪允)을 입지 못하였으니, 황송하고 두려움을 이기기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일이 종사(宗社)에 관계되기 때문에 감히 침묵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천청(天聽)을 어지럽게 하오니, 엎드려 성상(聖上)의 재가(裁可)를 바랍니다. 조호 등이 서로 붕당(朋黨)을 맺어 민씨(閔氏)의 집에 드나든 것이 일조 일석(一朝一夕)이 아니어서, 나라 사람들이 모두 듣고 본 바입니다. 탄핵을 당하자 그 죄를 피하려고 꾀하여 정상을 숨기고 자수(自首)하지 않아서, 여흥 부원군(驪興府元君) 민제(閔霽)공함(公緘)116)답통(答通)117) 이 서로 반대됩니다. 그러니 조호 등이 정상을 숨기고 자수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다스리지 않으면 뒤에 반드시 도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먼저 그 당(黨)을 끊어놓으면 악한 짓을 하는 자가 외로워진다.’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한결같이 전(前)에 청(請)한 것에 의하여 조호 등 네 신하의 죄를 다스려서 은미(隱微)한 것을 막는 경계(警戒)를 삼가소서."

하였으나, 모두 궁중에 머물러 두고 내리지 않았다. 간원(諫院)에서 대궐에 나아가 명령을 기다리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 간(諫)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냐? 내가 이미 잘 헤아려 보았다."

하였다.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 안속(安束) 등이 아뢰기를,

"민제(閔霽)가 이미 네 사람이 왔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하였는데, 조호 등은 모두 정상을 숨기고 자수하지 않았으니, 그 계교가 간사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그것은 진실로 옳다. 그러나, 나의 생각 또한 이미 잘 생각해 보았다. 후일에 다시 오늘과 같은 모임이 있으면, 내가 어찌 경 등이 말하는 것을 금하겠는가? 소사(所司)의 기강(紀綱)이 이미 떨쳤으니 반드시 다시 물을 것 없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40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

  • [註 113]
    호생지덕(好生之德) : 어진 마음이 있어서 살상(殺傷)을 싫어하는 덕(德).
  • [註 114]
    박혁(博奕) : 장기와 바둑.
  • [註 115]
    붕비(朋比) : 붕당(朋黨)을 지어 자기편을 두둔하는 것.
  • [註 116]
    공함(公緘) : 글로서 심문(審問)하는 것. 또는 그 내용.
  • [註 117]
    답통(答通) : 통문(通文)에 대한 회답.

○司諫院上書請趙瑚金瞻許應朴惇之等罪。 書曰:

竊惟臣之不忠, 覆載所不容, 臣民所共憤, 天下今古人人之所當誅也。 向者閔無咎無疾等, 以姻親之故, 幸蒙寬典, 獲保首領。 若其父驪興府院君 閔霽者, 深感殿下再造之恩, 掩戶自撾, 不接賓客, 以改前日之愆, 宜也, 今乃招致檢校贊成事趙瑚、前摠制金瞻許應、前恭安府尹朴惇之, 交結朋比, 無時聚會, 其情難測。 伏望閔霽罪狀, 上裁施行。 趙瑚金瞻黨於閔氏, 當殿下內禪之時, 欲以其子希閔爲內執事, 則別建異議。 臺諫之臣, 交章請罪, 得蒙殿下好生之德, 宜其悔悟自新, 今也不顧一國臣民之憤, 更與惇之等, 托以博奕, 常聚閔氏之門。 則以前日憲司之長, 無所忌憚, 而依阿取容; 惇之則曾汚風俗, 附名刑書, 濫受上慈, 位至兩府, 圖報聖恩, 其分也, 反與等黨不忠之家, 其心必異, 恐生亂階。 《易》曰: "履霜堅氷至。" 蓋欲制之於未然也。 伏望殿下, 令攸司收惇之職牒, 鞫問其故, 以杜朋黨之源, 以戒履霜之漸。

又上疏曰:

昨日, 具趙瑚金瞻許應朴惇之等朋比之狀以聞, 未蒙兪允, 不勝惶懼。 然事關宗社, 不敢緘默, 再瀆聖聰, 伏惟上裁。 等交結朋比, 出入閔氏之門, 非一朝一夕, 而國人所共聞見, 及其被劾, 規避其罪, 匿情不首, 與驪興府院君 閔霽公緘答通相反。 然則等匿情不首, 必有以也。 此而不治, 後必難圖。 《傳》曰: "先絶其黨, 則爲惡者孤。" 伏望殿下, 一依前請, 治等四臣之罪, 以謹防微之戒。

皆留中不下。 諫院詣闕待命, 上曰: "我豈欲拒諫哉? 我已熟計矣。" 左司諫大夫安束等啓曰: "旣不敢隱四人之來, 而等皆匿情不首, 其計譎矣。" 上曰: "是固然矣, 然我之計亦熟矣。 後日復有如今日之會, 我豈敢禁卿等有言也! 所司之紀綱已振, 不必更問。"


  • 【태백산사고본】 6책 1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40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