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들을 친히 시험하다. 시무책(時務策)의 글제
문신(文臣)들을 광연루(廣延樓) 아래에서 친히 시험하였는데, 좌정승(左政丞) 하윤(河崙)·대제학(大提學) 권근(權近)으로 독권관(讀券官)118) 을 삼고, 이조 참의(吏曹參議) 맹사성(孟思誠)·지신사(知申事) 황희(黃喜)로 대독관(對讀官)119) 을 삼았다. 중외(中外)의 시산 문신(時散文臣) 종3품(從三品) 이하 응시(應試)한 자가 1백 8인이었는데, 장막(帳幕)을 베풀고 종이[紙]·벼루[硯]·주과(酒菓)와 아침·저녁밥을 주고, 논(論)·표(表) 각 1도(道)를 시험하는 것으로 초장(初場)을 삼았는데, 논(論)의 글제는 ‘사문을 연다[闢四門]’이고, 표(表)의 글제는 ‘안남을 평정한 것을 하례한다[賀平安南]’이었다. 하루를 걸러서 종장(終場)을 열고 시무(時務)를 시험하였는데, 책(策)의 글제에 이르기를,
"왕(王)은 이르노라. 옛날 제왕(帝王)이 법(法)을 세우고 제도(制度)를 정함에 반드시 시의(時宜)에 인하여 지치(至治)를 융성하게 하였으니, 당(唐)·우(虞)120) 와 삼대(三代)121) 의 치평(治平)을 이룬 도(道)를 들을 수 있는가? 정일 집중(精一執中)은 요(堯)·순(舜)·우(禹)가 서로 준 심법(心法)이고, 건중 건극(建中建極)은 상탕(商湯)122) ·주무(周武)123) 가 서로 전(傳)한 심법(心法)인데, ‘정(精)’이니 ‘일(一)’이니 하는 것은 그 공부(功夫)가 어떻게 다르며, ‘집(執)’이니 ‘건(建)’이니 하는 것은 그 뜻이 어떻게 같은가? ‘중(中)’이라고 말하면 극(極)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고, ‘극(極)’이라고 말하면 중(中)에 지나는 것 같으니, 두 가지를 장차 어떻게 절충(折衷)할 것인가? 읍량(揖讓)하고 정벌(征伐)하는 것과 문(文)과 질(質)을 손익(損益)하는 것이 일[事]과 때[時]가 다른데, 함께 다스림[治]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한(漢)·당(唐) 이후에서 송(宋)·원(元)에 이르기까지 대(代)마다 각각 다스림[治]이 있는데, 중도(中道)에 합하여 말할 만한 것이 있는가? 내가 부덕(否德)한 몸으로 한 나라의 신민(臣民)의 위[上]에 임(臨)하여 비록 덕교(德敎)가 백성에게 미친 것이 없으나, 거의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소강(小康)을 이루기를 생각하여, 제왕(帝王)의 마음과 도(道)에 일찍이 뜻이 있어 배우기를 원해 정사(政事)를 듣는 여가에 경적(經籍)을 보고 그 뜻을 강구(講究)하나, 힘을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니, 동정(動靜)·운위(云爲)의 즈음과 정교(政敎)·법령(法令)의 사이에 어찌 지나치고 불급(不及)하는 어긋남이 없겠는가? 지나쳐서 마땅히 덜어야 할 것은 무슨 일이며, 불급하여서 마땅히 보태야 할 것은 무슨 일인가? 지금 우리 나라는 창업(創業)한 지가 오래지 아니하여 법제(法制)가 아직 갖추지 못하고, 천도(遷都)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역사(役事)가 아직 그치지 않으니, 정치(政治)의 득실(得失)과 전리(田里)의 휴척(休戚)이 말할 것이 많다.
우선 그 큰 것을 들어 말한다면, 전선(銓選)을 정(精)하게 하려 하나 요행(僥倖)으로 속여 나오[冒進]는 것이 제거되지 않으니, 공적을 상고하는 법[考績之法]이 어떻게 사의(事宜)에 합하겠는가? 전제(田制)를 바루[正]고자 하나 다과(多寡)와 고하(高下)가 고르지 못하니, 답험(踏驗)124) 하는 일이 과연 의논할 것이 없겠는가? 부역(賦役)은 고르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인보(隣保)의 제도와 호패(號牌)의 시설이 어떤 것이 행할 수 있는 것인가? 조전(漕轉)은 급히 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해운(海運)의 모책(謀策)과 육수(陸輸)의 계책(計策)이 어떤 것이 쓸 만한 것인가? 의관(衣冠)의 법도(法度)는 모두 중국의 제도를 따르는데, 오직 여복(女服)만은 오히려 옛 풍속을 따르고 있으니, 이것은 과연 다 고칠 수 없는 것인가? 관혼(冠婚)·상제(喪制)도 또한 다 중국의 제도를 따라야 할 것인가? 무릇 이 두어 가지는 시위(施爲)하는 도(道)가 반드시 그 마땅함이 있을 것이다. 옛것에 어그러지지 않고 지금에 해괴(駭怪)하지 않게 하려면, 그 방법이 어디에 있는가?
현준(賢俊)들과 더불어 서정(庶政)을 함께 도모(圖謀)코자 생각하여 친히 자대부(子大夫)들을 뜰에서 책문(策問)하는 바이니, 정사(政事)를 하는 설(說)을 듣기를 원(願)하노라. 자대부들은 경술(經述)을 통(通)하고 치체(治體)를 알아서 이 세상에 뜻이 있은 지가 오래니, 제왕(帝王)의 마음을 가지고 다스림[治]을 내는 도리와 지금의 법(法)을 세우고 제도(制度)를 정하는 마땅함을, 예전의 교훈(敎訓)에 상고하고 시대에 맞는 것을 참작하여, 높아도 구차하고 어려운 것에 힘쓰지 않고, 낮아도 더럽고 천한 데에 흐르지 않도록 각각 포부를 다하여 모두 글에 나타내어라. 내가 장차 친히 보고 쓸지니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90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註 118]독권관(讀券官) : 종2품 이상의 과거 시험관(科擧試驗官).
- [註 119]
대독관(對讀官) : 정3품 이하의 과거 시험관.- [註 120]
당(唐)·우(虞) : 요·순(堯舜)의 시대.- [註 121]
삼대(三代) : 하·은·주(夏殷周).- [註 122]
○壬寅/親試文臣於廣延樓下。 以左政丞河崙、大提學權近爲讀券官, 吏曹參議孟思誠、知申事黃喜爲對讀官。 中外時散文臣從三品以下赴試者, 百有八人。 設帳幕, 賜紙硯酒菓及朝夕食。 試論表各一道爲初場, 論題曰闢四門, 表題曰賀平安南。 間一日開終場, 試時務。 策題曰:
王若曰, 古昔帝王, 立法定制, 必因時宜, 以隆至治。 唐、虞三代致治之道, 可得聞歟? 精一執中, 堯、舜、禹相授心法; 建中建極, 商湯、周武相傳心法。 曰精曰一, 其功何異? 曰執曰建, 其義何同? 謂之中, 則未至乎極, 謂之極, 則似過乎中。 二者將安所折衷歟? 揖讓征伐, 文質損益, 事與時異, 而同歸于治, 何歟? 漢、唐以降, 迄于宋、元, 代各有治, 其有合乎中道而可述者歟? 予以否德, 莅于一國臣民之上, 雖無德敎可以及民, 庶幾夙夜思致小康, 其於帝王之心之道, 蓋嘗有志而願學焉。 聽政之暇, 覽觀經籍, 究求厥旨, 而未知所以用力之方。 動靜云爲之際, 政敎法令之間, 豈無過與不及之差者乎? 其有過而當損者何事, 有不及而當益者何事歟? 今我國家, 創業未久, 而法制尙未備; 遷都未幾, 而力役尙未弭。 政治之得失, 田里之休戚, 可言者多, 姑擧其大者言之。 銓遷欲其精也, 〔而〕 僥倖冒進之未除, 考績之法, 何以合宜歟? 田制欲其正也, 而多寡高下之不均, 踏驗之事, 果能無議歟? 賦役不可不均也, 隣保之制、號牌之設, 何者可行? 漕轉不可不急也, 海運之謀、陸輸之策, 何者可用歟? 衣冠法度, 悉遵華制, 而獨女服尙仍舊俗, 是果不得而盡革者歟? 冠婚喪制, 亦可盡從華制歟? 凡此數者, 施爲之道, 必有其宜。 伊欲使其不戾乎古而不駭於今, 其術安在? 思與賢俊, 共圖庶政, 親策子大夫于庭, 願聞爲治之說。 子大夫通經術識治體, 有志斯世久矣。 其於帝王存心出治之道, 當今立法定制之宜, 稽諸古訓, 酌乎時中, 高不務於苟難, 卑不流於汚淺, 各底所蘊, 悉著于篇。 予將親覽而致用焉。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90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註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