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전에서 병조 판서 윤저 등과 궁방 대책에 관해 의논하다
편전(便殿)에서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병조 판서(兵曹判書) 윤저(尹柢)에게 이르기를,
"근래에 각도(各道)에서 공헌(貢獻)하는 궁시(弓矢)가 군기감(軍器監)에서 만드는 것에 비교하면, 견고하고 예리하기가 배(倍)나 되므로 곧 병조(兵曹)에 내리었으니, 이를 간직하여 쓰임에 대비코자 한 것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영의정(領議政) 성석린(成石璘)이 일찍이 상서(上書)하여 말하기를, ‘재상(宰相)과 대신(大臣)은 마땅히 반인(伴人)을 거느려야 한다.’고 하였는데, 나는 미편(未便)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위급한 변(變)이 있어, 장수와 정승[將相]이 연고가 있는데 사졸(士卒)이 구원하지 않은 자는 마땅히 율(律)로써 베[斬]는 것을 논해야 하니, 누가 제 생명을 아끼어 장수와 정승을 구원하지 않겠는가? 내가 경진년의 변(變)에 나를 따르던 자가 서익(徐益)과 심귀령(沈龜齡) 등 두어 사람뿐이었는데, 하늘의 도움에 힘입어서 오늘이 있게 되었으니, 하늘에 도움이 있는 것이지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찌 반드시 사사로이 반인(伴人)을 거느리랴?"
하였다. 또 여러 신하에게 이르기를,
"일찍이 무과(武科)에 합격한 자는 항상 스스로 병서(兵書)를 숙독(熟讀)하는가? 숙독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들으니, 황제(皇帝)가 안남(安南)을 정벌할 때에 안남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했고 대적할 자가 없었다 한다."
하니, 공조 판서(工曹判書) 이내(李來)가 대답하기를,
"천하(天下)의 군사로 이 조그마한 나라를 정벌하니, 누가 감히 대적할 자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군사는 정(精)한 데에 있지 많은 데에 있지 않다. 어찌 한 가지만 가지고 말할 수 있는가? 또 안남 국왕(安南國王)이 황제에게 달려가서 고(告)하였으니, 황제의 거사(擧事)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황제가 본래 큰 것을 좋아하고 공(功)을 기뻐하니, 만일 우리 나라가 조금이라도 사대(事大)의 예(禮)를 잃는다면, 황제는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죄(罪)를 물을 것이다. 나는 생각하기를 한편으로는 지성(至誠)으로 섬기고, 한편으로는 성(城)을 튼튼히 하고 군량(軍糧)을 저축하는 것이 가장 오늘날의 급무(急務)라고 여긴다."
하니, 대사헌(大司憲) 성석인(成石因)이 대답하기를,
"성(城)을 빨리 쌓으려고 하면 백성이 크게 곤(困)하여 집니다. 신은 생각건대, 매년(每年)에 한 면(面) 혹은 반 면(半面)을 쌓아 견고한 것으로 귀(貴)함을 삼으면, 그 역사(役事)는 더디나, 백성이 곤(困)하지 않고 성(城)은 더욱 튼튼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석인(石因)이 또 말하기를,
"수령(守令)의 책임이 지극히 중(重)한데, 지금 국가에서 안은 중(重)하게 여기고 밖은 경(輕)하게 여깁니다. 모름지기 현량(賢良)을 택(擇)하여 중외(中外)에 교대해 두되, 이상(二相)111) ·삼재(三宰)112) 와 대사헌(大司憲)·대언(代言)과 같은 사람들로 교대해 수령을 삼는다면, 수령도 또한 스스로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또 역승(驛丞)은 개월(箇月)이 없어 교대하는 것이 일정한 기간이 없으니, 수령(守令)의 예(例)에 의하여 개월을 정하고 출척(黜陟)에 빙거(憑據)하소서."
하니, 임금이 옳게 여기었다. 또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겸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김승주(金承霔)에게 이르기를,
"철물(鐵物)은 본국(本國)에서 나는 것이고, 군기감(軍器監)은 오로지 병기(兵器)를 위하여 설치한 것이다. 세월이 이미 오래 되었으니 만드는 병기가 정치(精緻)113) 하고 넉넉해야 할 것인데, 영선(盈羨)114) 을 보지 못함은 무슨 까닭인가? 공인(工人)이 잘 훈련되고 익숙하여 정(精)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 이제부터 경(卿)은 의정부(議政府)에 합좌(合坐)하는 날 이외에는 날마다 군기감에 앉아서 군기(軍器)를 연조(鍊造)하는 일에 오로지 힘쓰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8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관리(管理)
- [註 111]이상(二相) : 의정부의 좌우 찬성(左右贊成).
- [註 112]
○壬辰/視事于便殿。 上謂兵曹判書尹柢曰: "邇來各道貢獻弓矢, 比軍器監所造, 其堅利有倍, 故輒下兵曹, 欲其藏以待用也。" 又曰: "領議政成石璘, 嘗上書以爲: ‘宰相大臣, 當率伴人。’ 予則以爲未便。 脫有急變, 將相有故, 而士卒不救者, 當以律論斬, 孰不愛其生以救將相乎? 予於庚辰之變, 從予者獨徐益、沈龜齡等數人耳, 賴天所佑, 以有今日。 在天不在人, 何必私率伴人乎?" 又謂群臣曰: "曾中武科者, 常自熟讀兵書乎? 不則將何所用? 聞皇帝征安南, 安南人束手就戮, 無有敵之者。" 工曹判書李來對曰: "以天下之兵, 伐此小國, 誰敢有敵之者?" 上曰: "不然。 兵在精不在衆, 豈可執一言乎! 且安南國王奔告于皇帝, 則帝之此擧, 不得不爾。 我皇帝本好大喜功, 如我國少失事大之禮, 必興師問罪。 我則以爲一以至誠事之, 一以固城壘蓄糧餉, 最是今日之急務。" 大司憲成石因對曰: "築城如欲速, 則民大困矣。 臣以爲每年築一面或半面, 以牢固爲貴, 則其役徐而民不困, 城益固矣。" 上曰: "然。" 石因又曰: "守令之任至重, 今國家重內而輕外。 須擇賢良, 迭處中外。 如二相三宰大司憲代言, 迭爲守令, 則守令亦自以榮矣。 且驛丞無箇月, 遞代無常。 可依守令例, 定其箇月, 以憑黜陟。" 上然之。 又謂知議政府事兼判軍器監事金承霔曰: "鐵物, 本國所産, 軍器監, 全爲兵器而設。 歲月旣久, 宜其所造兵器精緻有餘, 而未見盈羨者, 何也? 工人調熟而精者幾人歟? 自今卿除議政府合坐, 日坐軍器監, 專務鍊造軍器。"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8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관리(管理)
- [註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