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창군 권근이 권학에 대한 조목을 아뢴 상서문
길창군(吉昌君) 권근(權近)이 상서(上書)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신(臣) 근(近)이 장귀(章句)의 말학(末學)으로 오랫동안 문한(文翰)의 직임을 욕되게 하여 은혜를 입은 바가 지나치게 후(厚)하나, 일찍이 보답한 것이 없사온데, 이제 또 외람하게 유학 제조(儒學提調)가 되었으니, 어찌 감히 노둔(駑鈍)한 재주를 다하여 문치(文治)의 만분(萬分)의 일을 돕지 않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신(臣)이 쇠(衰)한 나이에 병이 많고, 정신이 혼미하며, 눈은 관람(觀覽)하기에 어둡고, 기운은 강설(講說)하기에 피곤하여, 비록 힘을 다해 후학(後學)을 가르쳐 내고자 하여도 실로 감내할 수 없으니,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생각하매 전하(殿下)의 위임(委任)하신 뜻을 저버릴까 두렵습니다. 삼가 권학(勸學)하는 사목(事目) 한두 조건(條件)을 갖추 기록하여 아뢰오니, 성상(聖上)의 재가(裁可)를 바랍니다.
1. 문과(文科) 초장(初場)에 의의(疑義)를 파(罷)하고 강론(講論)을 시험하였으니, 이것은 사장(詞章)의 도습(蹈襲)하는 폐단을 억제하고, 되도록 경서(經書)를 궁리(窮理)한 실학(實學)의 선비를 얻자는 것이니 참으로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러나, 이 법을 행한 지 이제 벌써 두어 과[數科]가 되었으나, 아직 경학(經學)에 뛰어난 인재가 그 동안에 나오지 않고, 문재(文才)와 기습(氣習)은 도리어 저하되고 좀스러워졌으니, 신(臣)이 항상 그렇게 된 까닭을 괴이하게 여겨서 이를 생각하고 헤아려 봅니다. 문장(文章)을 짓는 것은 기(氣)로써 주장을 삼고, 기를 기르는 것은 뜻[志]으로 근본을 삼으니, 뜻이 넓으면 기가 웅대(雄大)하여지고, 뜻이 좁으면 기가 용렬(庸劣)해지는 것은 당연한 형세입니다.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경서의 뜻[經旨]을 알아 가지고 유사(有司)의 물음에 대답하고자 하여, 그 뜻이 먼저 구두(句讀)와 훈고(訓詁)092) 사이에 국한되어, 오로지 기억하고 외우는 것만 힘써서 입[口]에만 담으려 하니, 의리(義理)의 깊은 것과 문장(文章)의 법에는 힘을 쓸 여가가 없습니다. 또 한마디 말[一言]이라도 맞지 아니하여 척출(斥黜)을 당하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두려워서 꺼려하여 그 기(氣)가 먼저 꺾이니, 이것이 곧 문장과 기습이 전체로 저하되고 좀스러워지는 까닭입니다. 비옵건대, 지금으로부터 강론(講論)을 파(罷)하고 다시 의의(疑義)를 시험하되, 다만 경의(經義) 한 문제[一道]와 사서의(四書疑) 한 문제를 업(業)으로 하게 하여, 아울러 전조(前朝)093) 의 구식(舊式)에 의(依)하고, 그 오경의(五經疑) 한 문제는 여러 경서에서 각각 내지 말고 사서의(四書疑)의 예(例)와 같이 하여, 혹 한 경서(經書)만을 행하기도 하고, 혹 다른 경서(經書)를 병합하기도 하여 마땅함에 따라 설문(設問)해서, 어떤 경의(經疑)에서 나오는가를 먼저 알지 못하게 하면, 응시(應試)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오경(五經)에 통하여, 심지(心志)가 너그럽고 넓어지며, 편안하고 한가롭게 널리 박람(博覽)하여 사기(辭氣)가 풍부하게 넓어지고, 문재(文才)가 진작(振作)하여 피어날 것입니다.
1. 중장(中場)의 고부(古賦)는 초학(初學)의 선비가 지을 수 없는 것이고, 또 실지로 쓸 데도 없으니, 익히지 않더라도 가(可)합니다. 비옵건대, 고부(古賦)를 파(罷)하고 논(論)·표(表) 각각 한 문제[一道]와 판(判) 한 문제로 시험하소서.
1. 한리(漢吏)094) 의 문(文)은 사대(事大)의 요무(要務)이니 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사온데, 지금 의학(醫學)·역학(譯學)·음양학(陰陽學)·율학(律學) 등은 모두 과목(科目)이 있어도 오직 이것만은 없으니, 진실로 궐전(闕典)입니다. 비옵건대, 전조(前朝)의 명경과(明經科)의 예(例)에 따라 문과(文科)의 종장(終場)에 이문(吏文)하는 선비를 아울러 시험하여, 정과(正科)에 동방(同榜)으로 창명(唱名)토록 허락하여 잡과(雜科)와 달리 하게 하고, 문과(文科)에 응시하는 자로서 이문(吏文)까지 아울러 응시하고자 하는 자가 있거든 이를 들어주고, 정과(正科) 내(內)에 분수(分數)를 더하게 하소서.
1. 직책이 관각(館閣)095) 을 띠고 있는 문신(文臣)과 한량 문신(閑良文臣)096) 으로서 장차 임용(任用)할 만한 자는, 매월 5일마다 한 차례씩 예문관(藝文館)에 모이어 서로 더불어 강마(講磨)하게 하고, 무릇 문한(文翰)의 일이 있으면 모두 제술(製述)하게 하여 잘 된 것을 택(擇)하여 쓰고, 그 능(能)하고 능하지 못한 것을 상고하여 승진(陞進)·폄출(貶黜)하도록 하며, 한량 문신도 재행(才行)과 근만(勤慢)을 예문관으로 하여금 천거하여 녹용(錄用)하게 하고, 직관(直館) 이상은 매일 동인 시문(東人詩文) 약간 편(篇)을 뽑아서 그 하관(下官)을 시켜 정부(政府)와 제조(提調)가 있는 곳에 나아가 품(稟)하게 하여, 그 취사(取捨)를 들어서 전서(全書)를 만들게 하고, 대간원(臺諫員)은 매월 그 근만(勤慢)을 조사하게 하소서.
1. 삼관(三館)097) 의 여러 인원(人員)은 유학 제조(儒學提調)로 하여금 매월 한 번씩 그들이 읽은 경사(經史)의 여러 글들을 상고하여 그 이름을 기록해 치부(置簿)하게 하고, 연말[年終]에 질(秩)이 차서 옮기게 될 때에, 그들이 읽은 경서(經書)의 많고 적은 것을 아울러 써서, 상등(上等)인 자는 뛰어서 청요(淸要)한 벼슬에 두고, 중등(中等)인 자는 전례(前例)에 따라 천질(遷秩)시키고, 하등(下等)인 자는 외임(外任)으로 서용(敍用)하소서.
1. 소학(小學)의 글은 인륜(人倫)·세도(世道)에 매우 긴절(緊切)한 것이온데, 지금의 학자(學者)는 모두 익히지 않으니 심히 불가(不可)합니다. 지금부터 경중(京中)과 외방(外方)의 교수관(敎授官)이 모름지기 생도(生徒)들로 하여금 먼저 이 글을 강(講)한 연후에 다른 글을 배우도록 허락하게 하고, 생원시(生員試)에 응시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성균 정록소(成均正錄所)로 하여금 먼저 이 글의 통부(通否)를 상고하게 하여 응시하도록 허락하고, 길이 항식(恒式)을 삼으소서.
1. 전조(前朝) 때에는 외방(外方)에 있는 한량 유신(閑良儒臣)이 사사(私私)로이 서재(書齋)를 두어서 후진(後進)을 교훈(敎訓)하여, 스승과 생도가 각기 편안함을 얻어서 그 학업을 이루었었는데, 지금에는 사유(師儒)가 간혹 다른 고을[州]의 교수(敎授)가 되어, 가족과 떨어지게 되고 생업(生業)을 폐(廢)하게 되므로, 모두 구차히 면(免)하려 하고, 생도는 강제로 향교(鄕校)에 나오게 하여 편안히 공부를 하지 못하고, 수령(守令)이 혹은 서사(書寫)의 일로써 사역(使役)을 시키니, 이름은 권학(勸學)이라 하나 실지는 폐이(廢弛)됨이 많습니다. 이제부터는 외방(外方)에 있는 유신(儒臣)이 사사(私私)로이 서재(書齋)를 두고 교훈(敎訓)하는 자는 감히 다른 고을[州]의 교수(敎授)로 정하지 말도록 하고, 생도(生徒)도 강제로 향학(鄕學)에 나오게 하지 말도록 하며, 감사(監司)와 수령(守令)이 권면(勸勉)을 가하여, 각기 편안히 살면서 강학(講學)하여 풍화(風化)를 돕게 하소서.
1. 시장(詩章)으로 창화(唱和)하는 것은 유자(儒者)의 말기(末技)098) 이기는 하나, 또한 인재(人材)의 성쇠(盛衰)에 관계되오니, 이를 편벽되게 폐할 수 없고, 또 성정(性情)을 음영(吟詠)하면 감발(感發)하여 흥기(興起)하는 바가 있으니, 곧 예전에 주자(胄子)099) 를 전악(典樂)100) 이 영가(詠歌)로써 가르치던 남은 뜻입니다. 전조(前朝) 때에 안에는 구재(九齋)101) 가 있고, 밖에는 도회(都會)102) 를 두어서, 매양 하월(夏月)에는 시(詩)를 짓는 것으로 과업(課業)을 삼고, 동당 감시(東堂監試)103) 에도 또한 시(詩)로써 시험하였었는데, 지금은 모두 혁파(革罷)하고 오로지 경술(經術)만을 힘써서, 끝은 버리고 근본으로 향하니 아름다운 법(法)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유자(儒者)가 비록 경서(經書)에 통(通)하였다고 하더라도 문장(文章)에 뛰어난 재주가 적고, 시도(試道)에 있어서도 많이는 잘하지 못하니, 대개 두 가지를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만일 중국(中國)의 사신(使臣)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와서 서로 더불어 창화(唱和)한다면, 어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비옵건대, 이제부터는 시산(時散)104) 의 문신(文臣) 3품 이하를 매년(每年) 춘추(春秋)의 중월(仲月)에 예문관(藝文館)에 모아서, 관각(館閣)의 제학(提學) 이상이 제목을 내어 시(詩)를 짓게 하여서 그 능(能)하고 능하지 못한 것을 상고하여 이름을 갖추어서 아뢰어 서용(敍用)에 빙거(憑據)하게 하고, 중외(中外)의 학교(學校)에서 매년(每年) 춘추(春秋)의 계월(季月)에 다시 과시(課詩)의 법(法)을 행하고, 감사(監司)와 수령(守令)이 감학(監學)할 때에도 또한 시(詩)를 짓게 하여, 그 능한 자를 표창해서 권면(勸勉)을 가하소서."
하였는데,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8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정론-정론(政論) / 역사(歷史)
- [註 092]훈고(訓詁) : 자구(字句)의 해석.
- [註 093]
전조(前朝) : 고려(高麗).- [註 094]
한리(漢吏) : 중국의 이문(吏文).- [註 095]
관각(館閣) :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 [註 096]
한량 문신(閑良文臣) : 일정한 직책이 없는 산관 문신(散官文臣).- [註 097]
삼관(三館) :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교서관(校書館).- [註 098]
말기(末技) : 하찮은 잔 재주.- [註 099]
주자(胄子) : 대를 이를 맏아들.- [註 100]
전악(典樂) : 옛날 음악을 관장하던 벼슬 이름.- [註 101]
구재(九齋) :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부터 있던 성균관(成均館)의 경학(經學)을 공부하던 재(齋). 오경 사서재(五經四書齋)로서 역재(易齋)·서재(書齋)·시재(詩齋)·춘추재(春秋齋)·예재(禮齋)의 오경재(五經齋)와 논어재(論語齋)·중용재(中庸齋)·맹자재(孟子齋)·대학재(大學齋)의 사서재(四書齋).- [註 102]
臣近以章句末學, 久玷文翰之任, 承恩過厚, 曾無報效。 今又濫爲儒學提調, 敢不罄竭駑鈍, 以補文治之萬一! 然臣衰年多疾, 精神昏憒, 目暗於觀覽, 氣疲於講說, 雖欲盡力訓進後學, 實不能堪, 夙夜思惟, 恐負殿下委任之意。 謹將勸學事目一二條件, 具錄申聞, 伏惟聖裁。 一, 文科初場, 罷疑義試講論, 是抑詞章蹈襲之弊, 務得窮經實學之士, 誠爲令典。 然行此法, 今已數科, 未有經學傑然之才, 出於其間, 而其文才氣習, 反爲猥瑣。 臣常怪其然而思忖之, 爲文以氣爲主, 養氣以志爲本, 志廣則氣雄, 志隘則氣劣, 勢當然也。 今之學者欲求經旨, 以待有司之問, 其志先局於句讀訓詁之間, 專務記誦, 取辦於口, 其於義理之蘊, 文章之法, 有不暇致力焉。 又恐一言不中, 以見斥黜, 羞赧畏憚, 其氣先挫, 此乃文章氣習靡然猥瑣之由也。 乞自今罷講論, 復試疑義, 但業經義一道、四書疑一道, 竝依前朝舊式; 其五經疑一道, 不許諸經各出, 宜如四書疑例, 或單擧一經, 或幷合他經, 隨宜設問, 不使先知出何經疑, 則可使赴試者皆通五經, 而心志寬廣, 優游博覽, 辭氣增廣, 而文才振發矣。 一, 中場古賦, 初學之士所不能作, 且無實用, 雖不肄習可也。 乞罷古賦, 試以論表各一道及判一道。 一, 漢吏之文, 事大要務, 不可不重。 今醫譯陰陽律學, 皆有科目, 而此獨無, 誠爲闕典。 乞依前朝明經科例, 文科終場, 竝試吏文之士, 許於正科同榜唱名, 使與雜科殊異。 其赴文科者, 有欲幷試吏文, 聽, 乃於正科之內, 加其分數。 一, 職帶館閣文臣及閑良文臣可將任用者, 令每月五日, 一次會藝文館, 相與講磨, 凡有文翰之事, 皆令製述, 擇其善者而用之, 考其能否, 以爲升黜。 閑良者才行勤慢, 亦令藝文館薦擧錄用, 其直館以上, 每日選揀東人詩文若干篇, 令其下官, 進稟政府及提調之處, 聽其取舍, 以成全書, 臺諫員, 每月考其勤慢。 一, 三館諸員, 令儒學提調每月一次考其所讀經史諸書, 錄名置簿, 年終秩滿當遷之時, 幷書所讀經書多少, 上者超置淸要, 中者隨例遷秩, 下者外敍。 一, 《小學》之書, 切於人倫世道爲甚大, 今之學者, 皆莫之習, 甚不可也。 自今京外敎授官, 須令生徒, 先講此書, 然後方許他書。 其赴生員之試, 欲入太學者, 令成均正錄所, 先考此書通否, 乃許赴試, 永爲恒式。 一, 前朝之時, 在外閑良儒臣, 私置書齋, 敎訓後進, 師生各得所安, 以成其學。 今者師儒, 或爲他州敎授, 違離家屬, 廢棄生業, 皆欲苟免; 生徒逼令赴其鄕校, 不得自便受業, 守令或役以書寫之務, 名爲勸學, 實多廢弛。 自今在外儒臣, 私置書齋敎訓者, 毋敢定爲他州敎授; 生徒毋令强赴鄕學; 監司守令乃加勸勉, 使各安居講學, 以裨風化。 一, 詩章唱和, 儒者末技, 然亦關於人才盛衰, 不可偏廢。 且其吟詠性情, 有所感發而興起, 卽古者敎冑子典樂詠歌之遺意也。 前朝之時, 內有九齋, 外置都會, 每於夏月, 賦詩爲課, 東堂監試, 亦試以詩, 今皆革罷, 專務經術, 棄末趨本, 可謂令典。 然今儒者, 雖號通經, 鮮有文章傑出之才, 其於詩道, 亦多不工, 蓋兩失之矣。 儻有中國詞臣奉使而來, 相與唱和, 寧不取笑? 乞自今, 時散文臣三品以下, 每年春秋仲月, 會藝文館, 館閣提學以上, 出題賦詩, 以考能否, 具名申聞, 以憑敍用。 中外學校, 每年春秋季月, 復行課詩之法, 監司守令監學之時, 亦令賦詩, 旌其能者, 以加勸勉。
從之。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8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정론-정론(政論) / 역사(歷史)
- [註 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