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부사 성석린이 국방대책 등의 시무 20조를 진달한 상서문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성석린(成石璘)이 상서(上書)하여 시무(時務) 20조(條)를 진달하였는데,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에 내려서 의논하게 하였다. 상서(上書)에 이르기를,
"국가의 일은 형세뿐이니, 그 형세를 보아서 미리 방비하면 근심이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혜가 있는 자라 하더라도 항상 일이 생긴 뒤에는 잘 조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臣)은 본래 지견(知見)이 없고 나이 또한 쇠(衰)하고 늙었사오나, 감히 우자 일득(愚者一得)의 생각으로 성총(聖聰)을 더럽힙니다. 예전에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을 걱정한 자가 있었사온데, 노신(老臣)의 소견이 실로 서로 표리(表裏)가 되는 바가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자(聖慈)께서 혼미(昏迷)하고 망령됨을 용서하시면 뒤에 반드시 천리마(千里馬)로 드리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신이 진달하는 것은 모두 천근(淺近)한 사목(事目)이니 어찌 족히 향안(香案) 앞에 진달할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만(萬)에 하나라도 취(取)할 것이 있으시면 엎드려 바라옵건대 밝으신 주상(主上)께서 결단(決斷)하여 행하소서. 무릇 나라를 가지고 집을 가진 자는 방비가 없을 수 없습니다. 한 집에는 가장(家長)이 된 자가 몸소 거느려서 힘써 행하면 성효(成效)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식량을 족하게 하고 군사를 족하게 하는 것이 한 나라의 방비가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소의 간식(宵衣旰食)014) 하고 진념(軫念)하시어 중외(中外)에 영(令)을 내리셔서 일체의 급하지 않은 비용은 다 쓸어버리시고, 힘써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족하게 하여, 백성들과 더불어 좋고 나쁜 것[休息]을 함께 하소서.
1. 갑병(甲兵)이 견리(堅利)하고 항진(行陣)이 정제(整齊)하며, 분수(分數)가 밝고 호령(號令)이 엄하며, 상벌(賞罰)이 적당하고 양식[糧餉]이 풍족하며, 모책(謀策)을 좋아하여 반간(反間)015) 을 쓰고, 시일을 오래 끌며 여러 길로 아울러 나가서 승리를 취하는 것은 중국 사람[華人]의 장기(長技)이고, 말[馬]이 튼튼하고 활[弓]이 강하며, 양식을 가볍게 싸 가지고 날[日]을 어울러 행(行)하며, 천시(天時)를 타고 지리(地利)를 헤아려서 치돌(馳突)하여 힘껏 싸워 승리를 취하는 것은 호인(胡人)의 장기(長技)이고, 견고(堅固)한 것을 의지하고 험(險)한 것을 믿어, 병법(兵法)에 의하지 않고 깊고 험한 곳을 택하여 산성(山城)을 쌓아, 늙은이와 어린이를 안치(安置)하고 콩[菽]과 조[粟]를 거두어 들이고, 봉화(烽火)를 들어 서로 응하며 샛길로 가만히 통하여 불의(不意)에 출격하여 승리를 취하는 것은 동방(東方) 사람의 장기(長技)입니다. 평지(平地)의 성(城)은 없을 수는 없지마는, 자고로 동방 사람이 잘 지키는 자가 적사오니, 오로지 읍성(邑城)만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정부(政府)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조목(條目)은 전조(前朝)의 성시(盛時)에 여러 번 수축(修築)을 더하여 구란(寇亂)을 피(避)하였으니, 지금 각도(各道) 관찰사(觀察使)에게 이문(移文)을 보내어 매양 농사 틈을 당하면 미리 방비하여 튼튼하게 수축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서북면(西北面)은 평양(平壤)이 근본이 되오니 도순문사(都巡問使)와 부윤(府尹)을 반드시 적합한 사람을 얻어야 하고, 기계(器械)와 군량(軍糧)을 모두 충족하게 하여야 합니다. 신이 일찍이 이 부(府)의 부윤을 겸하였었사온데, 그 영내(營內)의 궁시(弓矢)와 도창(刀槍)이 하나도 쓸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신이 그 까닭을 물어보았는데, 다만 전 사람이 마음을 쓰지 않은 데에 있었습니다. 신이 급하지 아니한 공작(工作)은 모두 파(罷)하고 오로지 군기(軍器)에만 힘을 써서 겨우 각색(各色)의 약간의 수량을 준비하였으며, 군량도 또한 이렇게 하였습니다. 토관(土官)과 천호(千戶)의 설치는 평시(平時)에 실상 폐단이 있지마는, 일이 있어 위급(危急)한 때를 당하면, 저들 수령(守令)들이 겸임한 자가 힘을 쓰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하였는데, 정부(政府)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조목(條目)은 한결같이 이미 일찍이 행이(行移)한 것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안주(安州)·의주(義州)·이성(泥城)·강계(江界) 등처에도 또한 재주가 많은, 무리를 거느릴 만하고 기미(機微)를 알아 진퇴(進退)하는 자를 보내어 성보(城堡)를 수축하고 군량을 저축하며, 기계(器械)를 준비하고 인마(人馬)를 훈련시켜, 은혜와 위엄이 아울러 행하여 사람이 사랑하고 두려워할 줄을 알게 한 연후에야 부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임시(臨時)해서 차정(差定)하여 보내어 장수가 사람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이 장수를 알지 못하면, 위급한 때에 임하여 어떻게 서로 구제하겠습니까? 마땅히 속히 차견(差遣)하여 3년으로 성효(成效)를 책임지워야 합니다. 어찌 목마른 때에 임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1. 동북면(東北面)의 영흥(永興)·함흥(咸興)·정주(定州)·청주(靑州)·단주(端州)·경원(慶源)·경성(鏡城) 등처에도 또한 서북면(西北面)의 예(例)에 의하여 깊은 곳의 요충지(要衝地)에 한 성(城)을 수축하고, 한 사람의 대장(大將)을 보내서 이를 지키고, 허약(虛弱)하게 할 것이 아닙니다. 비록 무사(無事)한 때를 당하더라도 또한 파(罷)할 것이 아닙니다.
1. 각도(各道)의 계수관(界首官)016) 은 꼭 벼슬이 높고 재주가 군민(軍民)의 일을 겸할 수 있는 사람을 가려서 차견(差遣)하여, 반드시 3년을 채우게 하소서."
하였다. 정부(政府)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세 조목(條目)은 비록 이미 행이(行移)한 일이지마는, 지금 또한 다시 행이(行移)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각도(各道)의 대소(大小) 수령(守令) 또한 모름지기 사람을 가려서 반드시 3년을 채워야 합니다. 대저 수령은 백성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 경내(境內) 인민(人民)의 다소와 노약(老弱)·빈부(貧富), 그리고 단쌍(單雙)017) ·협거(俠居)018) ·간은(間隱)019) 의 일에 이르기까지도 마음을 써서 엿보고 살피면 알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의 경내(境內) 인호(人戶)의 많고 적은 것을 따질 것 없이, 다만 가장 가까이 사는 자로써 수효를 정하여 혹 10호(戶), 혹은 3, 4호(戶)로써 한 인보(隣保)020) 를 삼고, 그 중에서 일정한 산업[恒産]이 있고 믿을 만한 자를 택하여 정장(正長)으로 삼아, 그 인보 안의 인구(人口)를 기록하여 관장(管掌)하게 하고, 조석(朝夕)으로 출입(出入)하여 물[水]과 불[火]로 서로 구제하게 하면, 인보 안의 일들을 저절로 서로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상(異狀)이 있거든, 정장(正長)이 곧 관가(官家)에 고(告)하여 유이(流移)하지 못하게 하고, 수령(守令)이 항상 고찰(考察)을 가하여 유루(遺漏)가 없는 것을 살핀 연후에, 평일(平日)의 인보기(隣保記) 안에 있는 인구(人口)의 다소(多少)에 의거하여 그 성명(姓名)과 연세(年歲)를 쓰고, 양천(良賤)을 분변하면, 차발(差發)이 균평(均平)하고 군민(軍民)이 구분되어, 백성이 놀라지 않고 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새로 왔거나 물고(物故)하였거나 생산(生産)한 자가 있으면, 정장(正長)이 반드시 곧 관가에 고하여 각각 이름 아래에 주(注)를 달아서 상사(常事)로 삼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1년 뒤에는 저절로 풍속(風俗)이 될 것입니다. 만일 따로 사람을 차견(差遣)하여 추쇄(推刷)한다면, 부산스럽게 부동(浮動)하여서 금(禁)하여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臣)이 평양(平壤)에서 인보가 서로 고하는 법[隣保相告之法]을 행하여 유이(流移)하지 못하게 하였사온데, 곧 그 효과를 보았습니다."
하였다. 정부(政府)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조목(條目)은 거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제주(濟州)의 말[馬]들은 중국(中國)에서도 또한 훌륭하다고 하는데, 실상은 소문(所聞)에 미치지 못합니다. 마땅히 쓸 만한 것을 골라내어서 육지(陸地)에 연접한 여러 섬 가운데에 방목(放牧)하고, 마정(馬政)도 또한 거행하면, 3년이면 성효(成效)가 있을 것입니다.
1. 왜노(倭奴)가 근심이 된 지 오래온데, 지금까지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 봉(封)하여 왕으로 삼았고, 주는 것을 후하게 하니, 만족하고 기(氣)가 나서 횡역(橫逆) 방자(放恣)함이 반드시 심할 것입니다. 마땅히 노성(老成)하고 학행(學行)이 있는 자 한 사람을 보내서 인호(隣好)를 수결(修結)하여 그 형세를 관찰해야 합니다. 신(臣)은 항상 말하기를, ‘우리의 근심이 될 것은 반드시 이들 왜노(倭奴)’라고 합니다."
하였다. 정부(政府)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두 조목(條目)은 점차적으로 사의(事宜)를 헤아려서 시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국가에서 항상 조전(漕轉)021) 의 어려움으로 걱정하는데, 신(臣)은 생각하기를, ‘무릇 경기(京圻)에 전지(田地)를 받은 자는 모두 다 거두어 들여서 조전(漕轉)하는 미두(米豆)의 수량에 충당하고, 다만 품(品)에 따른 구분전(口分田)022) 만 경기(京圻)에 주어 소원에 따라 농사(農舍)가 되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외방(外方)에 주면, 공사(公私)가 다 편(便)하여, 인마(人馬)가 지쳐서 죽는 근심이 없을 것이고, 또 쌀을 손실하고 농사를 실패하는 폐단이 없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의논하는 자가 반드시 말하기를, ‘외방(外方)의 소요(搔擾)가 이것으로부터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폐단은 전일(前日)과 다릅니다."
하였다. 정부(政府)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조목(條目)은 이미 일찍이 상량(商量) 의논하고서 시행하지 못한 일이오니, 마땅히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여야 합니다."
하였다.
"1. 동서북면(東西北面)과 각도(各道) 주현(州縣)에 모두 둔전(屯田)을 두어, 그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오로지 권과(勸課)를 힘쓰게 하여, 그 거둔 것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여 전최(殿最)023) 를 정하고, 사송(詞訟)·영작(營作)·잡범(雜凡)의 사무(事務)는 일체 모두 정지하게 하소서."
하였다. 정부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조목(條目)은 이미 일찍이 수판(受判)024) 한 일입니다. 그러나, 수령에게 권과(勸課)를 오로지 위임하여 전최(殿最)의 조건을 삼는 것은 또한 아울러 이문(移文)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배[船]를 타는 역사(役事)가 가장 괴롭다고 이름이 났습니다. 그러므로, 3호(戶)로 하여금 하나를 만드는데, 1호(戶) 안에 어찌 모두 한 사람이겠습니까? 정군(正軍)이 된 자는 자기가 배를 타지 않고, 모두 봉족자(奉足者)025) 를 시켜 능하고 능하지 않은 것도 묻지 않고 대신하게 하니, 적(賊)을 만난 즈음에 모두 배 밑바닥에 엎드려서 손도 쓰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신(臣)이 어떻게 아는가 하면, 가끔 각도(各道)에서 보고한 장문(狀文)을 보면 죽은 자는 모두 대신 세운 자들입니다. 원컨대, 각도(各道)에 각각 강명(剛明)한 사람 한 사람을 보내어 병선(兵船)이 있는 곳을 순행(巡行)하게 하여 항상 점고(點考)해서, 연습하지 않고 소용이 없는 자로 하여금 기선(騎船)에 충당하여 죄 없이 해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만호(萬戶)와 천호(千戶)가 된 자가 군인(軍人)들과 더불어 서로 이익(利益)으로 꾀하여 통해서 함께 폐단을 지으니, 만일 왕관(王官)이 아니면 어떻게 금하겠습니까? 이같이 두어 해만 한다면 병선(兵船)이 완고(完固)해지고 군사(軍士)가 정강(精强)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1. 각도(各道) 주현(州縣)으로 하여금 모두 군기(軍器)를 만들게 하소서. 각궁(角弓)과 환도(環刀)는 사람마다 만들기 어렵지마는, 지포 엄심(紙布揜心)026) ·두구(頭具)와 창(槍) 같은 것은 누가 만들지 못하겠습니까? 마땅히 수량을 정하여 견고하고 예리하게 만들게 하소서. 신(臣)이 왕년(往年)에 충청도 관찰이 되었을 때에 왜노(倭奴)가 깊숙이 들어와서 도둑질을 하므로, 신(臣)이 주현(州縣)으로 하여금 수효를 정하여 창(槍)을 만들게 하였사온데, 심히 편리하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1. 마땅히 주현(州縣)으로 하여금 각각 병선(兵船)을 만들게 하소서. 비록 폐단이 있다고는 하지마는, 위급한 때에 임하여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한집[一家]의 사람도 오히려 배를 만드는데, 비록 작은 폐읍(弊邑)이라 할지라도 어찌 한 부잣집만 못하겠습니까?"
하였다. 정부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세 조목(條目)은 점차적으로 사의(事宜)를 헤아려 시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군기감(軍器監)은 오로지 병기(兵器)를 관장하여 조작(造作)하는 것이 심히 많으니, 선공감(繕工監) 각사(各司)에 소속되어 있는 장인(匠人)과 여러 곳의 역사(役事)가 한가한 장인(匠人)을 모두 군기감(軍器監)에 붙여서 오로지 조작(造作)하게 하소서."
하였다. 정부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조목(條目)은 각사(各司)의 부득이한 차비(差備) 정수(定數)를 제외한 장인(匠人)을 모두 군기감에 붙이면 거의 편익(便益)할 듯합니다."
하였다.
"1. 금은(金銀)으로 만든 기명(器皿)은 궁내(宮內)와 국가에서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중외(中外)에 영(令)을 내려 일체 금지하고, 나라 안이 모두 사기(沙器)와 칠기(漆器)를 쓰게 하소서.
1. 소와 말을 잡는 것은 나라에 금령(禁令)이 있으니, 유사(有司)가 엄하게 금하여 다스리고, 화척(禾尺)027) ·재인(才人)028) 등이 도살(屠殺)로써 생업을 삼는 자는 마땅히 소재처(所在處)로 하여금 모아들여 구제[完聚存恤]하게 하되, 전지(田地)를 주어 경작하게 하여 이산(離散)하지 않게 하소서. 이들 무리인들 어찌 쓸 곳이 없겠습니까?"
하였다. 정부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두 조목(條目)은 한결같이 일찍이 수판(受判)한 것에 의하여 거듭 밝혀서 거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성중(成衆)029) 과 각사(各司) 애마(愛馬)030) 로부터 서리(書吏)·전리(典吏)에 이르기까지 액수(額數)에 구애(拘礙)하지 말고 사람마다 입속(入屬)하도록 허락하소서."
하였다. 정부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조목(條目)은 한결같이 전에 정한 액수(額數)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전조(前朝) 때에는 각령(各領) 육십(六十)031) 이외에 모두 보충군(補充軍)이 있었으니, 마땅히 각령(各領)으로 하여금 각각 몇 사람을 천거하게 하소서."
하였다. 정부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조목은 점차적으로 마땅한 것을 헤아려서 시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일찍이 전조(前朝) 때에 싸움을 잘하기로 이름난 사람을 보면, 안우(安祐)·이방실(李方實) 같은 이는 모두 제기(梯己)032) ·심복(心腹)·수족(手足)과 같은 사람이 있어, 위태한 때에 임(臨)하고 승부(勝負)를 결단할 즈음에 당하여서는 모두 그들의 힘을 입었습니다. 마땅히 장상(將相)으로 하여금 미리 자제(子弟)와 친족(親族) 및 아는 사람들 중에서 재주와 힘이 있는 자 각각 몇 사람씩을 뽑아서 급한 때에 쓸 수 있도록 대비하게 하소서."
하였다. 정부(政府)에서 의논하기를,
"위의 조목(條目)은 마땅한 것을 헤아려서 수(數)를 정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1. 각도(各道)의 잡공(雜貢)을 1, 2년(年)을 한(限)하여 모두 다 감면(減免)하고, 오로지 군량(軍糧)·군기(軍器)·병선(兵船) 등의 일로 힘쓰도록 하시고, 연례(年例)로 바치는 재목(材木)·기름[油]·꿀[蜜]·후지(厚紙)·화석(花席) 등도 더욱 폐단이 있사오니, 지주(旨酒)033) 와 조화(造花)는 오직 공상(供上)과 내연(內宴) 외에는 일체 금지(禁止)하고, 공사(公私)의 연음(宴飮)도 마땅히 엄(嚴)히 금하고, 무릇 경중(京中)과 외방(外方)의 쓸데없는 비용[冗費]은 모두 다 감손(減損)하여, 공사(公私)가 충족(充足)하기를 기다리소서. 쓸데없는 비용의 종목(種目)은 환히 셀 수가 있습니다. 물방울과 티끌이 쌓이면 마침내는 구릉(丘陵)과 못[池]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였다. 정부에서는 의논하기를,
"위의 조목(條目) 안에 후지(厚紙)·화석(花席)·지주(旨酒)·조화(造花) 등사(等事)는 공상(供上)을 제외한 이외에는 일체 모두 감손(減損)하고, 경중(京中)과 외방(外方)의 쓸데없는 비용은 자세히 조사하여 모두 다 감손하고, 공사(公私) 연음(宴飮)을 금지하는 것은 이미 일찍이 행이(行移)한 것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명하기를,
"한결같이 의정부(議政府)에서 의논한 것에 의하여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83면
- 【분류】정론(政論) / 외교-왜(倭)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병참(兵站) / 군사-관방(關防) /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기(軍器) / 사법-법제(法制)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공업-장인(匠人) / 식생활(食生活) / 교통-육운(陸運) / 교통-수운(水運)
- [註 014]소의 간식(宵衣旰食) :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옷을 입고 저물어서야 저녁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임금이 정사(政事)에 골몰하여 여가가 없음을 이르는 말.
- [註 015]
반간(反間) : 적정(敵情)을 탐지하는 간첩.- [註 016]
계수관(界首官) : 서울에서 각도(各道)에 이르는 본가도(本家道)의 연변(沿邊)이나 도계(道界)에 있는 고을의 수령(守令).- [註 017]
단쌍(單雙) : 부부(夫婦)가 결혼하여 함께 살고 있는지, 혹은 그렇지 아니하고 혼자 살고 있는지의 여부를 말한 것임.- [註 018]
협거(俠居) : 남의 집 협호(夾戶)를 빌어서 사는 것. 협호(夾戶)는 정당(正堂)과 따로 떨어져 있어서 딴 살림을 하게 된 집채를 말함.- [註 019]
간은(間隱) : 숨은 일.- [註 020]
인보(隣保) : 조선조(朝鮮朝) 때의 자치조직(自治組織)의 하나. 이것은 백성의 생활과 인구의 실태를 파악하고, 수화(水火)를 구제(救濟)하고 유이(流移)와 도둑을 방지하여 서로 보호하고 서로 지키게 함으로써 풍속(風俗)을 이루게 한다는 목적에서 조직된 것으로, 10호(戶) 혹은 3, 4호(戶)로써 한 인보(隣保)를 삼고, 그 중에서 항산(恒産)이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을 택하여 정장(正長)으로 삼아, 인보내(隣保內)의 인구를 기록하여 주장(主掌)하게 하였음.- [註 021]
조전(漕轉) : 배로 물건을 실어나름.- [註 022]
구분전(口分田) : 자손이 없이 죽은 관원(官員)의 아내와 부모 구망(父母俱亡)한 출가전(出嫁前)의 딸이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자손이 없이 죽은 군인의 아내에게 품등(品等)을 따라 주던 전지(田地).- [註 023]
전최(殿最) : 지방 감사(監司)가 각 고을 수령(守令)의 치적을 심사하여 중앙에 보고하는 우열(優劣) 성적을 고사(考査)할 때 상(上)을 최(最), 하(下)를 전(殿)이라 하며, 음력 6월과 12월에 두 번 시행하였음.- [註 024]
수판(受判) : 수교(受敎).- [註 025]
봉족자(奉足者) : 보조자(補助者)의 뜻. 정군(正軍) 1명에 대하여 봉족(奉足) 한두 사람을 지급하여 정군을 돕게 하고, 정군이 출역(出役)하였을 경우에는 그 집안 일을 돕게 한 급보 제도(給保制度).- [註 026]
지포 엄심(紙布揜心) : 지포(紙布)로 만든 가슴을 가리는 갑옷.- [註 027]
화척(禾尺) : 버드나무의 세공(細工)이나 도우(屠牛)를 전업(專業)으로 하던 천민(賤民).- [註 028]
재인(才人) : 광대(廣大).- [註 029]
성중(成衆) : 궁궐의 숙위(宿衛)와 근시(近侍)의 일을 맡은 관원(官員). 고려 때에는 내시 다방(內侍茶房)·사순(司楯)·사의(司衣)·사이(司彝) 등이 이에 속하고, 조선 때에는 내금위(內禁衛)·충의위(忠義衛)·충찬위(忠贊衛)·충순위(忠順衛)·별시위(別侍衛)·족친위(族親衛) 등에 속하였음.- [註 030]
애마(愛馬) : 위사(衛士)의 한 종류.- [註 031]
육십(六十) : 고려 때 군제(軍制)의 하나로, 각령(各領)에 오위(伍尉) 20명, 대정(隊正) 40명씩이 있었는데, 이들을 아울러서 육십(六十)이라고 칭(稱)하였음.- [註 032]
제기(梯己) : 물건(物件)을 감추어 놓고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게 하고 자기만 사용하는 것.- [註 033]
지주(旨酒) : 맛 좋은 술.○領議政府事成石璘, 上書陳時務二十條, 命下議政府議得。 書曰:
國家之事, 勢而已, 觀其勢而預爲之備, 可得無患, 雖有智者, 常不能善於其後。 臣素無知見, 年又衰邁, 敢以愚者一得之慮, 仰瀆聰聽。 古有杞人憂天者。 老臣之見, 實相表裏, 伏望聖慈赦其迷妄, 後必有以千里馬獻者。 臣之所陳, 皆淺淺事目, 豈足達於香案之前! 萬有一可取者, 伏望明主斷而行之。 凡有國有家者, 不可無備, 一家則爲家長者躬率力行, 乃有成效。 今玆足食足兵, 是爲一國有備之具, 恭惟殿下, 宵旰軫念, 下令中外, 盡掃一切不急之費, 務令家給人足, 與民休息。 一, 甲兵堅利, 行陣整齊, 分數明, 號令嚴, 賞罰當, 糧餉足, 好謀用間, 曠日持久, 諸道竝進, 以取勝者, 華人之長技也; 馬健弓勁, 輕齎倂日, 乘天時, 度地利, 馳突力戰, 以取勝者, 胡人之長技也; 負固恃險, 不依兵法, 擇深阻築山城, 安置老少, 收納菽粟, 擧烽相應, 間道潛通, 出其不意以取勝者, 東人之長技也。 平地之城, 固不可無, 然自古東人之善守者鮮, 不可專恃邑城。
政府議得: "右條, 乃前朝盛時, 累增修築, 以避寇亂。 今行移於各道都觀察使, 每當農隙, 預備堅實修築何如?"
一, 西北面, 平壤爲根柢。 其都巡問使與府尹, 須要得人, 器械糧餉, 皆可取足。 臣曾兼尹玆府, 其營內弓矢刀槍, 無一可用者。 臣問其故, 只在前人不爲用心耳。 臣悉罷不急工作, 專務軍器, 僅備各色若干數, 糧餉亦如之。 其土官千戶之設, 平時則實有弊也, 乃當有事危急之際, 恐彼守令之兼任者, 不得用其力也。
政府議得: "右條, 一依已曾行移施行何如?"
一, 安州、義州、泥城、江界等處, 亦遣才堪帥衆、知機進退者, 修城堡蓄糧餉備器械鍊人馬, 使恩威竝行, 人知愛畏, 然後可得而使也。 若臨時差遣, 將不知人, 人不知將, 則及其臨危, 何以相濟! 宜速差遣, 責以三年, 何待臨渴! 一, 東北面永興、咸ㆍ定州、靑ㆍ端州、慶源、鏡城等處, 亦依西北面例, 其深處要衝之地, 修築一城, 遣一大將以守之, 不可虛弱, 雖當無事之時, 亦不可罷。 一, 各道界首官, 須擇官高其才可兼軍民者差遣, 必滿三年。
政府議得: "右三條, 雖已曾行移之事, 今亦更當行移施行何如?"
一, 各道大小守令, 亦須擇人, 必滿三年。 夫守令近民, 故境內人民多少、老弱貧富, 乃至單雙、俠居、間隱之事, 用心伺察, 則無有不知者也。 其境內人戶, 不揀多少, 只以居最近者爲數, 或十戶或三四戶爲一隣保, 擇其中有恒産可信者, 定爲正長, 錄其隣保內人口掌之, 使其朝夕出入, 水火相救, 則保內之事, 自然相知。 如有異狀, 正長卽告于官, 使不流移; 守令常加考察, 審無遺漏, 然後據其平日隣保記內人口多少, 書其姓名年歲, 辨其良賤, 則差發均軍民分, 民不驚駭, 事可得成。 如有新來物故生産者, 正長須卽告官, 各注名下, 以爲常事。 如此則一年之後, 自然成俗。 若別差人推刷, 則紛然浮動, 不可禁遏。 臣於平壤, 行隣保相告之法, 使不流移, 卽見其效。
政府議得: "右條擧行何如?"
一, 濟州馬群, 中國亦謂之良, 其實則不及所聞。 宜令擇出可用者, 放于連陸諸島中。 馬政亦宜擧行三年, 有成。 一, 倭奴爲患久矣, 至今未已。 今封爲王, 厚其賚與, 志滿氣驕, 橫恣必甚, 宜遣一老成有學行者, 修結隣好, 以觀其勢。 臣嘗謂爲吾患者, 必此倭奴也。
政府議得: "右二條, 漸次量宜施行何如?"
一, 國家常患漕轉之難。 臣以謂凡受田於京圻者, 盡行收取, 以充漕轉米豆之數, 只給隨品口分田於京圻, 隨其所願, 使爲農舍, 餘皆給於外方, 則公私兩便, 人馬免疲斃之患, 又無損米失農之弊。 議者必曰: "外方搔擾, 自此復起。" 然今之弊, 異於前日。
政府議得: "右條, 已曾擬議, 未得施行之事, 宜當更議施行。"
一, 東西北面及各道州縣, 皆置屯田, 令其守令, 專爲勸課, 計其所收多少, 以爲殿最。 其詞訟營作, 雜凡事務, 一皆停罷。
政府議得: "右條, 乃已曾受判之事, 然其守令專委勸課, 以爲殿最之條, 亦幷移文施行何如?"
一, 騎船之役, 號爲最苦, 故令三戶爲一。 一戶之內, 豈皆一人! 其爲正軍者不自騎船, 皆令奉足者, 不問能否而代之, 遇賊之際, 皆伏船底, 拱手就死。 臣何以知之? 往往見各道報狀, 其死者盡是代立。 願於各道, 各遣一剛明之人, 巡行兵船在處, 常加點考, 無令不習無用者充騎, 無辜被害。 其爲萬戶千戶者, 與其軍人相啗以利, 通同作弊, 若非王官, 其何以能禁! 如此數年, 可使兵船完固, 軍士精强。 一, 令各道州縣, 皆造軍器。 其角弓環刀, 人人難造, 如紙布揜心, 頭具及槍, 誰不能作! 宜令定數, 堅利造作。 臣於往年, 承乏觀察忠淸道時, 倭奴深入爲寇, 臣令州縣定數造槍, 甚爲便益。 一, 宜令州縣, 各造兵船, 雖云有弊, 臨時無及。 今一家之人, 尙能造船。 雖小弊邑, 豈不如一富家乎!
政府議得: "右三條, 漸次量宜施行何如?"
一, 軍器監, 專掌兵器, 造作甚多。 其繕工監各司屬匠人及諸處閑役匠人, 盡屬軍器監, 專爲造作。
政府議得: "右條, 除各司不得已差備定數外匠人, 悉屬軍器監, 庶爲便益。"
一, 金銀器皿, 除內用國用外, 下令中外, 一切禁止, 國中皆用沙漆器。 一, 宰殺牛馬, 國有禁令, 有司痛行禁治, 其禾尺才人等, 專以宰殺爲生業。 宜令所在之處, 完聚存恤, 給田耕種, 使不離散。 此輩豈無用處!
政府議得: "右二條, 一依已曾受判內, 申明擧行何如?"
一, 自成衆各司愛馬, 以至書吏典吏, 不拘額數, 許人入屬。
政府議得: "右條, 一依前定額數施行何如?"
一, 前朝之時, 各領六十外, 皆有補充軍。 宜令各領各擧幾人。
政府議得: "右條, 漸次量宜施行何如?"
一, 嘗觀前朝號爲善戰者如安祐、李方實, 皆有梯己心腹手足之人, 當其臨危決勝之際, 皆賴其力。 宜令將相, 預選子弟族親及所知有才力者各幾人, 以備緩急之用。
政府議得: "右條, 量宜定數施行何如?"
一, 各道雜貢, 限一二年, 竝皆蠲免, 專以軍糧軍器兵船等事爲務, 其年例材木油蜜厚紙華席等, 尤爲有弊。 旨酒造花, 唯供上內宴外, 一切禁止; 公私宴飮, 亦宜堅禁; 凡京外冗費, 盡行減損, 以竢公私充足。 其冗費之目, 班班可數, 涓埃之積, 終成丘池。
政府議得: "右條內, 厚紙華席旨酒造花等事, 除供上外, 一皆減損; 京外冗費, 備細推考, 竝皆減損; 公私宴飮禁止, 依已曾行移施行何如?" 命一依議政府議得內施行。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8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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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註 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