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태종실록 12권, 태종 6년 11월 23일 기묘 2번째기사 1406년 명 영락(永樂) 4년

좌정승 하윤이 둔전의 폐해 제거 등 시무 조목을 올리니 모두 윤허하다

좌정승 하윤(河崙) 등이 민폐(民弊)를 제거하는 몇 가지 조목을 올리었다.

"전조(前朝)192) 의 말년에 민폐(民弊)가 다단(多端)하였으나, 아조(我朝)에 이르러 점차 혁거(革去)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민간(民間)에 그 여폐(餘弊)가 남아 있습니다. 주(州)·현(縣)의 둔전(屯田)은 이미 금령(禁令)이 있는데도, 수령(守令)들이 멋대로 행하여 혹은 백성을 모아다가 경작하고, 혹은 종자를 뿌려서 세(稅)를 거두어 국용(國用)에 돌리지 않고, 이를 전적으로 사비(私費)로 쓰며, 혹은 백성을 모아 배[船]를 만들어 선세(船稅)를 거두는가 하면, 어량(漁梁)을 만들어 어리(漁利)를 거두고, 또는 숯을 묻어 탄가(炭價)를 거두기도 하며, 혹은 민간(民間)에서 심은 왕골[莞]·모시[苧]·대[竹]·칠(漆)을 취(取)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과실(菓實)이 익기도 전에 감봉(監封)하였다가, 그것이 익으면 핍박하여 수효를 채우게 하니, 도리어 본호(本戶)를 침요(侵擾)하여 고의로 손해를 끼칩니다. 또 품관(品官)과 향리(鄕吏)들이 전토(田土)를 널리 점령하고, 유망인(流亡人)을 불러들여 병작(竝作)하여 그 반(半)을 거두니, 그 폐단이 사전(私田)보다도 심합니다. 사전(私田) 1결에서는 풍년이 든 해에만 2석(石)을 거두는데, 병작(竝作) 1결에서는 많으면 10여 석까지는 취(取)합니다. 유이자(流移者)는 이것을 빙자하여 역(役)을 피하고, 영점자(影占者)는 이것을 빙자하여 용은(容隱)하니, 부역(賦役)이 고르지 못한 것이 오로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호강(豪强)한 노예(奴隷)들이 대천(大川)을 점거하여 어리(漁利)를 독차지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손을 대지 못하여, 민간에 어물(漁物)이 적게 되니, 이들의 폐단을 혁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州)·현(縣)의 둔전(屯田)과 배를 만들어 선세(船稅)를 거두는 일, 어량(漁梁)을 만들어 어리(漁利)를 취한 일, 숯을 묻어 탄가(炭價)를 거두는 일, 민간에서 심은 왕골·모시·대나무·칠을 취하는 등의 일을 일절 금단(禁斷)하고, 백성의 과실을 취하고 그 값을 치루지 않는 자는 《경제육전(經濟六典)》에 의하여 또한 금단하소서.

그리고, 민가에서 대전(代田)한 이외의 산야(山野)에다 심은 과실은 10분의 1을 세(稅)로 하여, 호주(戶主)로 하여금 자진 납부케 하고, 감봉(監封)해서 수를 채워 호주를 침요(侵擾)케 하지 말며, 전지(田地)의 병작(竝作)은 환과 고독(鰥寡孤獨)으로 자식(子息)이 없고, 노비(奴婢)가 없는 자로서 3·4결(結) 이하를 경작하는 자 이외는 일절 금단하고, 어량에서 이익을 독차지하여 백성이 손을 못대게 하는 자는 엄히 금단하소서. 그리고, 백성으로 자원(自願)하는 자는 어리(漁利)를 얻게 하되, 10분의 1을 세(稅)로 하고, 모두 도관찰사(都觀察使)에게 보고케하여 그 수대로 출납(出納)하게 하소서. 이렇게 해도 여전히 폐단을 일으키는 자가 있으면, 관찰사가 엄하게 규리(糾理)하여 출척(黜陟)의 빙거(憑據)로 삼고, 관찰사로서 고찰(考察)하지 않는 자는 사헌부에서 방문(訪問) 핵실(劾實)하고, 이를 신문(申聞)하여 논죄(論罪)케 하소서."

또 아뢰기를,

"아무리 추운 때라 하더라도 모이엄(毛耳掩)193)분투혜(分套鞋)194) 는 전정(殿庭)의 조회(朝會) 때나 행행(行幸)의 영송(迎送) 때 이외에는 착용하지 말게 한 것 외에, 이 밖에 궐문(闕門) 밖에서 조회를 기다릴 때나 행행시의 노차(路次)에서 시위(侍衛)할 때, 그리고, 각 아문(衙門)에 좌기(坐起)할 때에는 나이 늙고 병이 들어 자원(自願)하여 착용하는 자는 금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80면
  • 【분류】
    정론(政論) / 의생활(衣生活)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농업-전제(田制) / 재정-역(役) / 재정-잡세(雜稅)

  • [註 192]
    전조(前朝) : 고려.
  • [註 193]
    모이엄(毛耳掩) : 사모 밑에 쓰는 털로 만든 방한구.
  • [註 194]
    분투혜(分套鞋) : 몹시 추울 때에 신 위에 덧 신는 방한화.

○左政丞河崙等, 上祛民弊數條。 啓曰: "前朝之季, 民弊多端, 至于我朝, 漸次革去, 民間尙有餘弊。 州縣屯田, 已有禁令, 爲守令者, 任然行之, 或聚民屯種, 或散種科斂, 不歸國用, 全爲私費, 或聚民造船, 以收船稅, 作梁以收漁利, 埋炭以收炭價, 或取民間所種莞苧竹漆, 至於菓實, 當未熟之時監封, 待熟摘取, 逼令充數, 反擾本戶, 以致故損。 又品官鄕吏廣占土田, 招納流亡, 竝作半收, 其弊甚於私田。 私田一結, 豐年只收二石, 竝作一結, 多取十餘石, 流移者托此避役, 影占者托此容隱。 賦役不均, 專在於此。 又豪强奴隷占斷大川, 以專漁利, 禁民入手, 以致民間漁物乏少, 此等之弊, 不可不革。 州縣屯田造船收稅、作梁取利、埋炭收價、取民莞苧竹漆等事, 一皆禁斷; 取民菓實, 不給其直者, 依《經濟六典》, 亦行禁斷; 人家代田外山野所種菓實, 十分稅一, 令戶主自納, 勿行監封充數, 以擾主戶; 田地竝作, 除鰥寡孤獨無子息無奴婢三四結以下作者外, 一行禁斷; 漁梁專利, 禁民入手者, 痛行禁斷; 令民自願者, 皆獲漁利, 十分稅一, 皆報都觀察使, 知數出納。 其有如前作弊者, 觀察使痛行糾理, 以憑黜陟, 觀察使不爲考察者, 司憲府訪問核實, 申聞論罪。" 又啓: "當極寒日, 毛耳掩分套鞋, 除殿庭朝會行幸迎送時, 不許穿著外, 闕門外待朝時、行幸路次侍衛時、各衙門坐起時, 年老有疾, 自願穿著者, 勿許禁止。" 皆從之。


  •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80면
  • 【분류】
    정론(政論) / 의생활(衣生活)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농업-전제(田制) / 재정-역(役) / 재정-잡세(雜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