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의 토지와 노비를 줄인 것을 비방한 중 설연 등을 유배시키다
중 설연(雪然)·혜정(惠正)·윤제(允濟) 등에게 장(杖)을 쳐서 유배시켰다. 처음에 하윤이 주장하여 절[寺]의 수를 한정하고 전민(田民)091) 을 감하도록 논의하니, 중들이 모두 원망하였고, 또 진주 목사(晉州牧使) 안노생(安魯生)이 설연의 옥사(獄事)를 맨 먼저 발설하였고, 다시 적폐(積弊)를 없애고 이단(異端)을 물리친 일로 전(箋)을 올려 하례하니, 또한 아울러 비방하였다. 설연이 도망쳐 서울에 이르니,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 등 6인이 돌려가면서 숨겨 주었는데, 일이 발각되니, 모두 견책을 받았었다. 이에 이르러 대간과 형조에서 순금사(巡禁司)와 함께 설연을 국문해 다스리니, 그 제자 혜정(惠正)이란 자가 그 무리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간직한 참서(讖書)로 보건대, 승왕(僧王)이 나라를 세워 이에 태평(太平)하게 될 것이다."
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하윤(河崙)과 안노생(安魯生)이 죽으면 내 참서가 맞는 것이다."
하고, 드디어 하윤과 안노생을 죽이기를 모의하였는데, 중 홍련(洪漣)이 그 모의를 듣고 유양(柳亮)에게 고하였다. 순금사에 명하여 체포하여 국문하니, 공사(供辭)가 양가(兩街)의 중 윤제(允濟) 등 4,5명에게 미쳤으나, 마침내 그 실정을 밝혀내지 못하였다. 설연(雪然)은 여색(女色)을 간범(干犯)한 죄로써 장(杖) 60대를 때리고 전라도 해남현(海南縣) 달량(達梁)의 수군(水軍)에 충군시키고, 윤제(允濟)는 알고도 자수하지 아니한 죄로 장(杖) 60대를 때리고 경상도 동래현(東萊縣)의 수군에 충군시키고, 혜정(惠正)은 참형(斬刑)에 해당되나 명하여 한 등을 감하고, 장(杖) 1백 대를 때려서 경상도 기장현(機張縣)에 유배시키고, 그 나머지는 모두 석방시켰다.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 송우(宋愚) 등이 상언(上言)하였다.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을 주는 것은 고금(古今)의 떳떳한 법이요, 임금이 사사로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중 혜정(惠正)은 국가에서 전지와 노비를 깎아버린 것에, 도리어 분개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감히 부도한 말을 발하였으니, 불궤(不軌)함이 심하므로, 진실로 그 죄를 바루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 유사(攸司)에 명하여 가벼운 법으로 다스리게 하니, 이는 비록 전하가 흠휼(欽恤)히 여기는 아름다운 뜻이지만, 천하 만세의 법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하건대, 법대로 시행하여 그 죄를 밝게 바루어서 후일의 난역(亂逆)하는 마음을 막으소서."
임금이 장무(掌務)인 헌납(獻納) 곽덕연(郭德淵)을 불러 전지(傳旨)하였다.
"혜정(惠正)을 가볍게 처결한 일은 과인의 뜻이 아니다. 양 정승이 내게 고하기를, ‘지금 이미 5백년 동안 오래 전해 온 사사(寺社)·전민(田民)을 개혁하였는데, 또 이 중들을 죽이면 뒤에 반드시 말이 있을까 두려우니, 혜정을 죽이지 말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이 때문에 내가 순금사에 내려, 죽이지 아니하는 율에 좇아 죄를 결정한 것이다."
하니, 곽덕연이 다시 아뢰기를,
"부도한 말을 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용서하지 아니합니다. 법은 사의(私意)로 가볍게 고칠 수 없습니다. 청하건대, 이 중을 베어서 후래(後來)를 경계하소서."
하니, 임금이 전교(傳敎)하기를,
"너는 우선 물러가 있거라. 내가 다시 의논해서 시행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61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상-불교(佛敎) / 군사-군역(軍役)
- [註 091]전민(田民) : 전지와 노비.
○丁丑/杖流僧雪然、惠正、允濟等。 初, 河崙主議限寺額減田民, 僧徒咸怨之, 且以晋州牧使安魯生, 首發雪然之獄, 復以祛積弊闢異端, 上箋稱賀, 亦共訕之。 雪然逃至京, 義安大君 和等六人, 轉轉舍匿, 事覺, 皆得責。 至是, 臺諫刑曹, 同巡禁司鞫治雪然。 弟子惠正者謂其徒曰: "以予所藏讖書觀之, 僧王立, 國乃太平。" 因曰: "河崙、安魯生死, 則可以當我讖書矣。" 遂謀殺崙及魯生。 僧洪漣聞其謀, 告于柳亮, 命巡禁司逮問, 辭引兩街僧允濟等四五人, 竟不得其情。 以雪然犯干女色, 杖六十, 充全羅道 海南縣 達梁水軍; 允濟以知而不首, 杖六十, 充慶尙道 東萊縣水軍; 惠正當斬, 命減一等, 杖一百, 配慶尙道 機張縣, 餘皆釋之。 左司諫大夫宋愚等上言:
有罪必罰, 古今常典, 非人君所得私也。 今僧惠正, 以國家削去田民, 反懷忿怨, 敢發大言, 不軌之甚, 誠不可不正其罪也, 殿下乃命攸司, 俾從輕典。 此雖殿下欽恤之美意, 於天下萬世之法何? 願殿下依律施行, 明正其罪, 以杜後日亂逆之心。
上召掌務獻納郭德淵, 傳旨曰: "惠正輕決事, 非寡人意。 兩政丞告予曰: ‘今旣革五百年之傳久寺社田民, 又殺此僧, 則恐後必有言矣, 請勿殺惠正。’ 是故予下巡禁司, 從不死律決罪耳。" 德淵更啓云: "發大言語, 古今不赦, 而法不可以私意輕改。 請誅此僧, 以戒後來。" 上傳敎云: "汝姑退。 予更擬議施行。"
-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61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상-불교(佛敎) / 군사-군역(軍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