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 6월 6일 갑자 2번째기사
1406년 명 영락(永樂) 4년
일식의 예측을 잘못한 서운관 부정 박염을 동래로 귀양보내다
서운 부정(書雲副正) 박염(朴恬)을 동래(東萊)로 유배시켰다. 사간원에서 상소하였다.
"정전(政典)에 이르기를, ‘때에 앞서는 자도 죽이고 용서하지 않으며, 때에 미치지 못하는 자도 죽이고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왕(先王)이 하늘의 경계를 삼가하는 까닭이었습니다. 지금 서운 부정(書雲副正) 박염(朴恬)이 일식(日蝕)의 변(邊)을 추보(推步)하여 시일(時日)과 분도(分度)를 정하였으나, 일식하는 것이 정한 분도(分度)를 지났고, 때도 정한 때에 어긋났으니, 이미 그 직임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해[日]란 것은 모든 양기(陽氣)의 으뜸인데, 덮히거나 먹히는 것이 있으면, 천변(天變)의 큰 것이므로, 마땅히 중외(中外)에 포고(布告)하는 바는 구식(救食)079) 하는 전례(典禮)를 거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박염은 이에 천상(天象)에 어두워서 구식(救食)하는 일을 폐(廢)하도록 하였으니, 바라건대, 유사(攸司)에 내려 법대로 시행하소서."
임금이 다만 외방에 유배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60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과학-천기(天氣)
- [註 079]구식(救食) : 일식(日食)이나 월식(月食)이 있을 때, 임금이 각사(各司)의 당상관(堂上官)과 낭관(郞官)을 거느리고 기도를 드리던 일. 해나 달이 다시 완전해질 때까지 월대(月臺)에서 기도하였는데, 이때 천담복(淺淡服)을 입으며, 좌우에 악기(樂器)를 벌려 놓으나 연주하지는 아니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