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 3월 6일 병신 2번째기사
1406년 명 영락(永樂) 4년
동맹가첩목아가 건주위 도지휘사에 임명된 사실을 하정사가 아뢰다
하정사(賀正使) 강사덕(姜思德) 등이 북경에서 돌아왔다. 통사 조현(曹顯)이 아뢰었다.
"오도리 만호(吾都里萬戶) 동맹가첩목(童猛哥帖木) 등이 입조(入朝)하니, 황제가 맹가첩목에게 건주위(建州衛)028) 도지휘사(都指揮使)를 제수하고, 인신(印信)과 삽화 금대(鈒花金帶)를 하사하고 그 아내 복탁(幞卓)에게 의복(衣服)·금은(金銀)·기백(綺帛)을 하사하고, 어허출(於虛出) 참정(參政)의 아들 김시가노(金時家奴)를 건주위 지휘사(建州衛指揮使)로 삼아 삽화 금대(鈒花金帶)를 하사하고, 아고거(阿古車)를 모련 등처(毛憐等處)029) 지휘사(指揮使)로 삼아 인신과 삽화 은대(鈒花銀帶)를 하사하고, 아난(阿難)·파아손(把兒遜)을 모련 등처 지휘 첨사(毛憐等處指揮僉事)로 삼아 광은대(廣銀帶)를 하사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51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註 028]건주위(建州衛) : 명(明)에서 남만주 일대의 여진을 초무(招撫)하기 위하여 영락(永樂) 원년(1403)에 설치한 위소(衛所). 올량합(兀良哈)의 추장 아합출(阿合出:어허출(於虛出))이 영도하였으며, 영락 3년(1406)에 알타리(斡朶里)의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가 입조하여 건주위 도지휘사가 되었으나, 그후 건주 좌위(建州左衛)가 설립되었음. 건주 좌위는 동맹가첩목아 사후(死後) 다시 좌우위로 분리되어, 건주위는 건주 본위(建州本衛)와 건주 좌위(建州左衛)·건주 우위(建州右衛)의 3위(衛)로 되었음.
- [註 029]
모련 등처(毛憐等處) : 두만강 유역 일대 두문(豆門:토문(土門))·수주(愁州:종성(鍾城))·아지랑귀(阿之郞貴:국자가(局子街))·동량북(東良北:무산대안(茂山對岸)) 등지를 말함. 옛부터 호마(胡馬)를 생산하여 morin[馬]이라는 명칭이 생겼음. - [註 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