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태종실록 10권, 태종 5년 10월 19일 신사 1번째기사 1405년 명 영락(永樂) 3년

도관찰사·수령·차사원 등이 지응할 때 어가를 따르는 대간을 찾아 인사하는 예를 없애다

각도(各道) 도관찰사(都觀察使)의 수령관(首領官)과 차사원(差使員) 등이 호가(扈駕)하는 대간(臺諫)에게 알현(謁見)하는 예(禮)를 없애라고 명하였다. 처음에 사헌부(司憲府)에서 상소하기를,

"관찰사(觀察使)의 수령관(首領官)과 지응 차사원(支應差使員) 등이 호가(扈駕)하는 대간(臺諫)에게 알현(謁見)하는 것이 예(禮)인데, 이달 초8일 거가(車駕)가 장단(長湍)에 머물렀을 때에, 수령관과 차사원 등이 이 예(禮)를 행하지 않았고, 초9일 거가가 소요기(逍遙岐)에 머물렀을 때에, 본부(本府)에서 서리(書吏)와 소유(所由)140) 를 발(發)하여 범람(汎濫)한 자를 살피는데, 차사원 적성 감무(積城監務)가 막(幕) 가운데에 술을 감추어 두었으므로, 소유(所由)를 보내어 수령관 곽존중(郭存中)의 아전을 불러 그 까닭을 말하려고 하였더니, 존중이 명문(明文)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관찰사에게 관문(關文)을 보냈더니, 또한 보내지 않고 말하기를, ‘적성 감무가 술을 감추어 둔 것은 장차 이튿날 공상(供上)하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자세히 물어보았더니, 이튿날의 지응 차사원(支應差使員)은 양주 부사(楊州府使)이지 적성 감무가 아니었습니다. 관찰사 함부림(咸傅霖)이 ‘서리(書吏)와 소유(所由)가 임의로 진상(進士)할 술그릇을 열었다.’고 의정부(議政府)에 보고하였고, 본부(本府)에서 존중(存中)이 아전을 보내지 않은 까닭을 핵문(劾問)하였더니, 존중이 회피하여 받지 아니하고, 대가(大駕)가 입경(入京)하는 날에 임의로 유후사(留後司)로 돌아갔사오니, 조강(朝綱)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사(所司)를 업신여김이 이와 같습니다. 바라옵건대, 주상께서 재가(裁可)하시어 시행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부림(傅霖)은 죄가 없다."

하고, 일을 보라고 명하였는데, 이튿날 부림이 병(病)을 핑계하여 사양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사헌부(司憲府)에 하교(下敎)하였다.

"행재소(行在所)에 있는 관찰사의 수령관과 지응 차사원 등은 의정부(議政府) 외에는 참현(參見)하지 말도록 하고, 사헌부(司憲府)는 소유(所由)를 보내어 관찰사와 차사원의 의막(依幕)을 수색하지 말되, 이를 항식(恒式)으로 삼으라."


  •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40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註 140]
    소유(所由) : 사헌부의 이속(吏屬).

○辛巳/命除各道都觀察使首領官及差使員, 謁見扈駕臺諫之禮。 初, 司憲府上疏:

觀察使首領官及支應差使員等, 謁見扈駕臺諫, 禮也, 月初八日, 駕次長湍, 首領官及差使員等, 不行此禮。 初九日駕次逍遙岐, 府發書吏所由, 察汎濫者, 差使員積城監務, 藏酒幕中。 遣所由呼首領官郭存中之吏, 欲言其故, 存中以爲無明文。 故移關于觀察使, 亦不送之, 乃曰: "積城監務藏酒, 將以爲翼日供上也。" 細問之, 翼日支應差使員, 乃楊州府使, 非積城監務也。 觀察使咸傅霖, 妄以書吏所由, 擅開進上酒器, 報議政府。 本府劾存中以不送吏之故, 存中回避不受, 乃於大駕入京之日, 任然還于留後司。 其不畏朝綱, 而埋沒所司, 至於如此, 伏望上裁施行。

上曰: "傅霖無罪。" 命視事。 翌日, 傅霖辭以疾。 至是, 敎司憲府曰: "行在所, 觀察使首領官ㆍ支應差使員等、議政府外, 毋得參見。 司憲府毋遣所由搜觀察使及差使員依幕, 以爲恒式。"


  •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40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