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공신 등이 여러 차례 이거이 부자의 죄를 청하다
다음 날 종친·공신·삼부(三府)·대간(臺諫)·형조가 예궐(詣闕)하여, 이거이의 죄를 다시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 공이 크므로 죄를 가(加)할 수는 없다. 내가 보존하고자 하니, 경 등이 비록 청하더라도 마침내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니, 이화(李和) 등 40인이 다시 청하여 네 차례나 이르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 등이 법대로 이거이의 죄를 다스리고자 하는데, 그렇다면 죽이자는 것인가? 내가 공신을 보전하고자 하는데, 공신들이 내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심히 불가하다."
하니, 이화 등이 다시 청하지 아니하였다. 대간(臺諫)과 형조에서 상소(上疏)하였다.
"난신 적자(亂臣賊子)는 천지(天地)에 용납할 수 없는 것이요, 왕법(王法)에 마땅히 토죄(討罪)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거이가 일찍이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쌓아서 감히 불궤(不軌)한 말을 발(發)하였습니다. 왕실(王室)을 몰래 엿보고, 그 변(變)이 있을 것을 바랐습니다. 영승추부사(領承樞府事) 신(臣) 조영무와 더불어 대질하여 변명할 때 말이 궁한 데 이르렀으니, 간사한 음모가 이미 드러났습니다. 그 흔단(釁端)을 엿보고 참혹한 일을 깊이 꾀한 것은 심히 섬뜩하다 하겠습니다. 이저의 사람됨이 호횡(豪橫)하고 교활하기가 그 아비보다 배(倍)나 되니, 이거이의 음모는 반드시 이저에게 힘입었을 것입니다. 이거이가 조영무와 더불어 오히려 큰 소리를 발하였으니, 그 아들과 더불어 모의한 것을 밝게 알 수 있습니다. 옛날 고제(高帝)가 자기를 살려 준 은혜에 사정(私情)을 쓰지 아니하고 정공(丁公)104) 을 참수(斬首)하여 보여서, 한(漢)나라의 가업(家業)을 4백 년의 대업(大業)에 이르도록 하였습니다. 왕법(王法)은 진실로 인주(人主)가 사정(私情)을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는 오히려 이거이 부자의 전일의 공을 생각하여, 머리를 보전하게 하여 고향에 안치(安置)하고자 하나, 이것은 바로 고식적인 인애(仁愛)요, 종사(宗社) 만세의 계책은 아닙니다.
신 등은 전하를 위하여 깊이 애석하게 여깁니다. 하물며 전하는 공신의 맹세하여 적은 글에, ‘사직(社稷)에 관계되는 죄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법으로 논하는 것이 마땅하며, 내가 감히 거스르지 않겠으니, 오로지 그것은 자취(自取)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이제 이거이 부자의 신하답지 아니한 죄를 용서하면, 특히 왕법(王法)에도 잘못될 뿐만 아니라 그 천지의 신기(神祗)에게 은의를 저버리는 것도 또한 작지 않습니다. 원하건대, 전하는 대의(大義)로 결단하여, 이거이 부자를 극형에 처치하여 중외(中外)에 밝게 보여서, 종사(宗社)를 중히 하고, 왕법(王法)을 엄히 하고, 난적(亂賊)의 조짐을 막으시면, 만세에 다행하겠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진실로 공신을 보전하겠다고 하여 이미 황천(皇天)·후토(后土)에게 맹세하였는데, 만약 이거이 부자를 죽인다면, 나는 마땅히 천년(天年)을 마칠 수 없을 것이다. 무인년의 공은 오로지 이저에게 있고, 경진년의 공은 오로지 이거이와 이저에게 있다. 또 사정(私情)으로 말한다면, 이거이의 아들 이백강(李伯剛)은 나의 사위이다. 청하는 것이 비록 간절하고 지극하나, 내가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법이란 것은 천하 만세에 함께 하는 것이요, 전하가 사사로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특히 이거이의 죄에 관대하시니, 신은 사직(社稷)이 이로부터 위태로와질까 두렵습니다. 《춘추(春秋)》의 법에는 난신 적자(亂臣賊子)는 사람이 벨 수 있고, 또 먼저 처벌하고 뒤에 아뢰는 뜻도 있습니다. 전하가 만약 끝내 들어주지 않으면 신은 마땅히 옛법을 따르겠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이 이러한 말을 발(發)하니, 내 몸도 또한 보전할 수 없겠구려! 이거이를 진주(鎭州)에 유배하겠다."
하니, 유양이 말하기를,
"이러한 무리는 베는 것이 옳은데, 어찌 동시에 내보내는 것을 아까워하십니까?"
하니, 임금이 부득이하여 이거이 부자로 하여금 진주(鎭州)에 돌아가게 하고, 대언(代言) 노한(盧閈)을 시켜 이거이를 중로(中路)에서 위로하게 하고, 대언(代言) 김과(金科)를 시켜 이저를 위로하게 하였다. 유양이 듣고 대궐 뜰에서 큰 소리로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어찌 그리 영광스럽습니까? 또 대언(代言) 등은 모두 왕(王)의 신하인데, 난신 적자(亂臣賊子)에게 사신 보내는 것이 옳습니까? 〈대언 등은〉 어찌 다시 청하지 아니하였고, 또 신 등과 더불어 의논하고 난 뒤에 가지 않았습니까?"
하니, 박석명이 말하였다.
"다시 청하지 아니한 것은 아닙니다. 주상이 강제하신 까닭으로, 부득이하여 어명(御命)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10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 변란(變亂)
- [註 104]정공(丁公) : 초(楚)나라 항우(項羽)의 장수.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일찍이 싸움터에서 크게 패배하여 쫓기게 되었는데, 그 형세가 자못 위급하게 되니, 유방이 그를 바짝 뒤쫓는 정공(丁公)에게 애걸하여 목숨을 구했음. 그후 한(漢)나라가 초(楚)나라를 멸망한 뒤에, 정공(丁公)이 고조(高祖)를 뵙자, 고조는 말하기를, "후세(後世)에 남의 신하가 된 사람들로 하여금 정공(丁公)을 본받지 말도록 하라." 하고, 정공을 베었음.
○翼日, 宗親功臣三府臺諫刑曹詣闕, 復請居易之罪, 上曰: "其功大, 不可加罪。 予欲保全, 卿等雖請, 終不可從。" 和等四十人復請至四, 上曰: "卿等欲以法治居易之罪, 然則欲殺之耶? 予欲保全功臣, 而功臣等不從予言, 甚爲不可。" 和等不復請。 臺諫、刑曹上疏曰:
亂臣賊子, 天地所不容, 王法所當討。 今居易, 曾畜無君之心, 敢發不軌之言, 睥睨王室, 冀其有變, 至與領承樞府事臣趙英茂, 對辨辭窮, 奸謀已著。 其窺伺釁端, 沈謀慘酷, 甚可寒心。 佇之爲人, 豪橫狡猾, 倍於其父, 居易之謀, 必資於佇。 居易與英茂, 猶發大言, 其與子謀, 昭然可見。 昔高帝不私活己之恩, 斬示丁公, 以致漢家四百年之業。 王法固非人主所得而私也。 殿下尙念居易父子前日之功, 使全首領, 欲安于鄕, 是乃姑息之仁, 非宗社萬世之計也。 臣等深爲殿下惜之。 況殿下於功臣盟載之書, 有"犯關係社稷者, 當以法論。 非予敢違, 惟其自取。" 今宥居易父子不臣之罪, 非特失於王法, 其負於(天地神祗)〔天地神祇〕 者, 亦不細矣。 願殿下, 斷以大義, 將居易父子, 置之極刑, 昭示中外, 以重宗社, 以嚴王法, 以杜亂賊之漸, 以幸萬世。
上曰: "予固謂保全功臣, 已盟于皇天后土矣。 若殺居易父子, 我當不得終天年矣。 戊寅之功, 專在佇, 庚辰之功, 專在居易與佇。 且以私情言之, 則居易之子伯剛, 予之壻也。 請雖切至, 予不聽也。" 亮使錫命告于上曰: "法者, 天下萬世之所共, 非殿下所得而私也。 今特寬居易之罪, 臣恐社稷從此而危矣。 《春秋》之法, 亂臣賊子, 人得而誅之, 且有先發後聞之義。 殿下若終不聽, 臣當從古法。" 上曰: "卿發此言, 予身亦未可保。 流居易于鎭州。" 亮曰: "此輩誅之可矣, 何惜同時出之!" 上不得已令父子歸于鎭州, 使代言盧閈慰居易於中路, 代言金科慰佇。 亮聞之, 大言於闕庭曰: "此人歸鄕, 何其榮矣! 且代言等, 皆爲王臣, 而使於亂臣賊子可乎? 何不復請, 且與臣等議而後去乎?" 錫命曰: "非不復請, 上强之, 故不得已而承命耳。"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10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