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 기사관이 편전에 입시하기를 청했으나 허락치 않다
춘추관(春秋館) 기사관(記事官) 등이 상서(上書)하여 편전(便殿)에 입시(入侍)하기를 청하니, 윤허(允許)하지 아니하였다. 상서(上書)는 이러하였다.
"예전에 열국(列國)에서는 각기 사관(史官)이 있어서, 무릇 군상(君上)의 일이라면 크게는 언행(言行)과 정사(政事)를, 작게는 동정(動靜)과 언동(言動)을 상세히 기록하여 후세에 보이지 않은 것이 없었으로, 권계(勸戒)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선왕(先王)이 관직(官職)을 설치한 뜻입니다. 그러므로 전(傳)에 이르기를, ‘움직이면 좌사(左史)가 이를 쓰고, 말하면 우사(右史)가 이를 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임금의 행동거지는 반드시 적는다.’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옛 선철왕(先哲王)은 좌우를 두어 그 견문(見聞)을 밝게 하고, 기주(記注)를 상세히 하고자 아니함이 없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천종(天縱)의 학문으로 고금(古今)에 두루 통하고, 천조(踐祚)하신 이래, 무릇 시행하시는 바는 움직이면 옛 선철왕(先哲王)을 본받으십니다. 그 정전(正殿)에 임어(臨御)하여 대신을 접견하시고, 만기(萬機)를 청단(聽斷)하실 때에는 반드시 신 등으로 하여금 전(殿)의 섬돌에 입시(入侍)하게 하여, 신 등이 천일(天日)의 광명(光明)과 가언(嘉言)·선행(善行)의 선포(宣布)와 대신·대간(臺諫)의 계사(啓事)를 몸소 보고, 모두 견문할 수 있게 하여, 신 등의 직책을 덜 막으신다면, 옛 선철왕(先哲王)의 사관(史官)을 대우한 것이 어찌 이에 지났겠습니까? 그러나 전하께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청화정(淸和亭)에 임어하기도 하고, 혹은 편전(便殿)에 임어하기도 하여, 만기(萬機)를 청단(聽斷)하고 대신을 예(禮)로 접견하면서도, 신 등으로 하여금 입시(入侍)하게 하지 못하도록 하니, 그 사이에 언어(言語)와 정사(政事)가 가히 본받을 만하고, 가히 권계(勸戒)할 만한 것이 많을 터인데, 신 등이 바깥에 있으므로, 비록 일의 전말과 사유를 기록하고자 하더라도 그만입니다.
신 등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오로지 성시(盛時)의 한 가지 흠일 뿐만 아니라, 우러러 후대의 사군(嗣君)이 이를 또한 본받아 드디어 사신(史臣)의 입시(入侍)를 폐지하게 된다면, 작은 실수가 아닙니다. 하물며 지금 전하께서는 특별히 삼부(三府) 대신으로 하여금 매일 입시(入侍)하여 치도(治道)를 돕게 하시니, 이는 진실로 세상에 드문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부주(敷奏)하고 문답하는 것도 또한 의당 신 등이 갖추 기록하여 후세에 보이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만기(萬機)를 청단(聽斷)하고 대신을 예(禮)로 접견할 때이면, 비록 청화정이나 편전(便殿)에서라도 반드시 신 등에게 명하여 입시(入侍)하도록 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06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역사-편사(編史)
○甲寅/春秋館記事官等, 上書請入侍便殿, 不允。 書曰:
古者, 列國各有史官, 凡君上之事, 大而言行政事, 微而動靜云爲, 無不詳錄, 以示後世, 有所勸戒, 此先王設官之義也。 故《傳》曰: "動則左史書之, 言則右史書之。" 又曰: "君擧必書。" 是以古先哲王, 莫不置諸左右, 欲其聞見明而記注詳也。 殿下以天縱之學, 博通古今, 自踐祚以來, 凡所施爲, 動法古先。 其御正殿而接大臣聽萬機, 則必令臣等入侍殿陛, 而臣等親瞻天日之光, 嘉言善行之宣布, 大臣臺諫之啓事, 皆得見聞, 而少塞臣等之職也。 雖古先哲王之待史官, 何以過哉? 然殿下自春至秋, 或御淸和亭, 或御便殿, 聽斷萬機, 禮接大臣, 而不令臣等入侍。 其間言語政事可法可戒者多矣, 臣等居外, 雖欲記之, 末由也已。 臣等竊謂, 非唯盛時之一虧, 抑亦後之嗣君效之, 而遂廢史臣之入, 則非少失也。 況今殿下, 特令三府大臣每日入侍, 以贊治道, 此誠希世之美法, 而其間敷奏問答, 亦宜臣等所當備記, 以示後世者也。 願自今, 聽斷萬機, 禮接大臣之時, 則雖於淸和亭、便殿, 必命臣等入侍。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06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