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등용과 행정원의 하부 이양 등을 건의한 사헌부의 상소문
의정부에 명하여 대간(臺諫)에서 상소(上疏)한 것을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였다. 사헌부(司憲府)의 상소는 이러하였다.
"1. 전(傳)에 말하기를, ‘어진이를 구(求)하는 데 수고하고, 사람을 얻는 데서 편안하다.’ 하였으니, 이는 인주(人主)가 마땅히 체념(體念)해야 할 바입니다. 진실로 어진 인재(人才)를 뽑아서 여러 관직에 포열(布列)하게 하여 그 성공(成功)을 책임지우면, 일이 거행되지 못할 것이 없고, 여러 가지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부서(簿書)·옥송(獄訟) 같은 자질구레한 일에 이르러서는 유사(有司)가 있으니, 인주(人主)가 모두 알 바가 아닙니다. 여러 옥송과 삼가는 일은 문왕(文王)이 감히 알려 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문왕이 성주(成周)의 다스림을 이루게 한 소이(所以)였습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경제육전(經濟六典)》과 본부(本府)의 수판(受判)056) 내(內)에 의하여, 소송자로 하여금 각기 유사(攸司)에 소송하게 하고, 그 대내(大內)에 직접 소지(所志)를 정소(呈訴)하는 것을 일절 금지할 것입니다.
1. 전(傳)에 말하기를, ‘백성은 오로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 나라가 평안하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깊이 구중(九重) 궁궐에 거처하면서 단정히 팔짱을 끼고 옷자락을 드리우시니, 초야(草野)의 증민(蒸民)이 추위나 더위나 비를 빌 때 원망하는 정상(情狀)을 어찌 능히 두루 살피겠습니까? 수령(守令)이란 것은 백성을 가까이 하는 직책이므로, 민간의 이해(利害)를 알지 못하는 바가 없습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수령으로 하여금 민간의 이해를 캐물어 매양 봄·가을에 감사(監司)에게 보고하게 하여, 그 득실(得失)을 고찰하고서, 하나는 대내(大內)에 신문(申聞)하고, 하나는 도당(都堂)에 보고하고, 하나는 헌사(憲司)에 관문(關文)하게 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고찰해서 그 이(利)로운 것은 취하고, 해(害)로운 것은 버리는 것으로 항식(恒式)을 삼으면, 성상의 총명이 넓어져 하정(下情)이 상달(上達)되고, 덕택(德澤)이 흡족하여져 나라의 근본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1. 재내 제군(在內諸君)057) 과 이성 제군(異姓諸君)이 근래 혹은 조회(朝會)하거나 행행(行幸)하는 데에 빠지고, 중국 사신을 영송(迎送)할 때에 이르러서도 호종(扈從)하는 데에 태만합니다. 이제부터 무릇 조회하거나 행행하거나 영송할 때에, 아울러 백관의 예(例)에 따르도록 하는 것으로 성조(盛朝)의 성법(成法)을 삼을 것입니다.
1. 경기(京畿)에서 받드는 바, 사재(司宰)·선공(繕工)·사복(司僕)·유우소(乳牛所)·동서 와요(東西瓦窯) 등의 각사(各司)에 바치는 정탄(正炭)·소목(燒木)·곡초(穀草) 및 모든 수납(輸納)하는 물건을 감사와 수령이 능히 시기에 미치도록 감독해 바치지 못하고서, 농사가 한창 바쁜 때를 당하여 수납하지 못하였다고 칭(稱)하고 엄하게 급히 징수하여 바치므로, 농업을 폐하게 해서 백성들이 자뢰하여 생활하지 못합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정탄(正炭)·소목(燒木)·곡초(穀草) 및 각사에 바치는 공물은 1년 경비의 수(數)를 도합 계산하여, 반드시 추수한 이후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감독해 바치는 것을 끝내도록 하여서, 전의 폐단을 고칠 것입니다.
1.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고금의 공통된 의리입니다. 하물며, 우리 조정은 바닷가 벽지(僻地)에 치우쳐 있어서 어음(語音)이 아주 다르므로, 역관(譯官)으로 인하여 통(通)합니다. 그러므로 사역(司譯)의 직임은 진실로 중요합니다. 근래 사역(司譯)의 학습에 다만 한어(漢語)만을 익혀서 경사(經史)의 학문을 알지 못하여, 중국 사신의 말이 경사(經史)에 미치면, 몽연(懜然)히 알지 못하여 응대하는 데 실수하니, 매우 국가의 수치(羞恥)가 됩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한어를 잘하고 경학에 밝은 자를 선택하여 훈도관(訓導官)을 삼아, 힘써 후진을 깨우쳐 역어(譯語)에 널리 통하게 하고, 경학(經學)에 상명(詳明)하게 하여, 중국 사신의 뜻을 통하게 할 것입니다.
1. 응봉사(應奉司)에서는 한 나라의 문서를 맡으므로 그 학문하는 선비가 모두 다 속(屬)하지만, 한어(漢語) 이문(吏文)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당성(唐誠)058) 만이 맡고 있으니, 만약 하루 아침에 사고라도 있으면, 배우지 못한 사람이 그 직임을 판비(辦備)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문한(文翰)의 선비 가운데 총명하고 박학하며 기예(技藝)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미리 이문(吏文)을 익히도록 하여, 타일(他日)의 쓰임에 대비할 것입니다.
1. 근래 화통군(火㷁軍)을 더하여 정할 때, 노비의 많고 적은 것과 나이의 늙고 어린 것을 고찰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전적(田籍)에 의거하여서 이를 더하였으므로, 마땅히 감해야 할 데 더한 것이 있고, 또한 마땅히 더해야 할 데 감한 것이 있으니, 만약 다시 정하지 않는다면, 그 역(役)을 견디지 못하여 유망(流亡)하는 이가 서로 잇달을 것입니다. 빌건대 각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각사(各司)·각관(各官)의 노비 천적(奴婢賤籍)을 상세히 고찰하게 하여, 15세 이상 50세 이하의 나이와 명수(名數)를 갖추 기록해 정보(呈報)하게 하고, 도당(都堂)에서 다시 상정(詳定)을 더하여 화통(火㷁)의 역(役)을 완전하게 할 것입니다.
1. 침장고(沈藏庫)059) 의 제거(提擧)·별좌(別坐)·향상(向上)·별감(別監)은 맡은 바 임무가 실로 번극(繁劇)하므로, 매양 세말(歲末)을 당할 때마다 모조리 거관(去官)시켜 그 노고에 대해 상을 주니, 진실로 선비를 권장하는 아름다운 뜻입니다. 그러나 그 직임이 다만 1년 내에만 있으니, 이 때문에 생각이 다음해의 임무에 미치지 못하여, 각색 채종(菜種)을 때 맞추어 거두지 아니하고, 밭에 거름을 주거나 소를 키우는 일에도 주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밭갈고 씨뿌리는 때에 미쳐 반드시 채종(菜種)의 값을 하나같이 지급해야 하니, 이 때문에 채종이 다하고 경우(耕牛)가 야위어지며, 밭에 거름주는 데 때를 맞추지 못하여 밭이 기름지지 못합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러한 관직에 있는 자가 이를 준비하는 데 성의가 없는 까닭입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제거·별좌·향상·별감의 각 자리는 1인이 거관(去官)하면 1인은 그대로 둘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관(官)을 비워 두고 직무를 폐하는 잘못은 없을 것입니다. 또 제조(提調)로 하여금 때때로 고찰하여 그 태만한 것을 징치(懲治)하게 할 것입니다. 동서 와요(東西瓦窯)의 판관(判官)도 또한 이 예(例)에 준하여 일시에 거관하지 말게 할 것입니다."
의정부에서 의논하니, 모두 헌부(憲府)에서 신문(申聞)한 것과 같았다.
"1. 《문공가례(文公家禮)》에 이르기를, ‘몸이 주혼(主婚)하는 데 미치는 자는 기복(朞服)이 없는 상(喪)에서는 혼인을 이룰 수 있다.’ 하였으나, 우리 조정의 사대부 집에서는 몸이 주혼(主婚)에 미치는 자가 비록 최질(衰絰) 중에 있더라도, 혹은 혼가(婚嫁)를 허락하고 혼인을 이루는 일이 있으니, 오로지 고례(古禮)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풍속이 경박해지는 것도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사대부 가운데 혼인하는 집은 모두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본받게 하고, 어기는 자는 엄격히 다스릴 것입니다."
의정부에서 의논하여, 부모의 상(喪) 3년 내와 기년(朞年)의 상(喪) 1백 일 내에서는 혼가를 금지하고, 기복이 있는 상에서는 주혼자(主婚者)를 물금(勿禁)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02면
- 【분류】사법(司法) / 인사(人事)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출판(出版)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왕실-종친(宗親) / 왕실-행행(行幸) / 교육-특수교육(特殊敎育) / 풍속(風俗)
- [註 056]수판(受判) : 수교(受敎).
- [註 057]
재내 제군(在內諸君) : 임금의 적비(嫡妃)의 아들인 대군(大君), 빈잉(嬪媵)의 아들인 군(君), 친형제인 대군(大君), 친형제의 적실(嫡室)의 맏아들인 군(君) 등을 말함.- [註 058]
당성(唐誠) : 귀화한 중국인. 밀양 당씨(密陽唐氏)의 시조. 고려 말에 귀화하여 사대 이문(事大吏文)을 전장(專掌)하였으며, 조선조에 들어와 호조·예조·공조 전서(典書)와 공안부 윤(恭安府尹)을 지냈음.- [註 059]
침장고(沈藏庫) : 김장을 담그는 일을 맡은 관아.○己丑/命議政府, 議臺諫上疏以聞。 司憲府上疏:
一, 《傳》曰: "勞於求賢, 逸於得人。" 此人主之所當體念也。 苟選賢才, 而列于庶官, 責其成功, 則事無不擧, 而庶績其凝, 至如簿書獄訟瑣屑之事, 則有司存焉, 非人主之所悉知也。 庶獄庶愼, 文王罔敢知于玆, 此文王之所以致成周之治也。 願自今, 依《經濟六典》本府受判內, 令訟者各訟攸司; 其於大內, 直呈所志者, 一切禁止。 一, 《傳》曰: "民惟邦本, 本固邦寧。" 殿下深居九重, 端拱垂衣, 其草野蒸民, (祈)〔祁〕 寒暑雨, 怨咨之情, 豈能徧察! 守令者, 近民之職, 民間利害, 無不知之。 願自今, 俾守令採訪民間利害, 每於春秋, 以報監司, 考其得失, 一申大內, 一報都堂, 一關憲司, 因而考察, 其利者取之, 害者去之, 以爲恒式, 則聰明廣而下情達, 德澤洽而邦本寧。 一, 在內諸君、異姓諸君, 近來或闕於朝會行幸, 以至朝廷使臣迎送之際, 怠於扈從。 自今凡朝會行幸迎送, 竝從百官之例, 以爲盛朝之成憲。 一, 京畿所仰司宰、繕工、司僕、乳牛所、東西瓦窰等各司納正炭、燒木、穀草及凡輸納之物, 監司守令, 未能及時督納, 乃當正農之時, 稱爲未收, 嚴急徵納, 以廢農業, 民不聊生。 願自今, 正炭、燒木、穀草及各司納貢物, 都計一年經費之數, 須當秋收以後農業未興之前, 督令畢納, 以革前弊。 一, 以小事大, 古今之通義也。 況我朝僻處海陬, 語音殊異, 因譯以達, 故司譯之任, 誠爲重矣。 近來司譯之學, 但習漢語, 而不知經史之學, 朝廷使臣, 有語及經史, 則懜然不知, 失於應對, 深爲國家之所羞。 願自今, 擇善於漢語而明經學者, 爲(訓道)〔訓導〕 官, 敦諭後進, 博通譯語, 詳明經學, 以達朝廷使臣之意。 一, 應奉司, 掌一國文書, 其學文之士, 悉皆屬焉, 至於漢吏之文, 獨唐誠掌之。 若一朝有故, 則不學之人, 難辦其任。 願自今, 擇文翰之士聰明博學果藝者, 預習吏文, 以備他日之用。 一, 近來火㷁軍加定之時, 不考奴婢多少、年歲老弱, 唯據田籍而加之, 故有宜減而加者, 亦有宜加而減者。 若不更定, 則不勝其役, 而流亡相繼矣。 乞令各道觀察使, 詳考各司各官奴婢賤籍, 十五以上五十以下, 年歲名數, 具錄呈報, 都堂更加詳定, 俾完火㷁之役。 一, 沈藏庫提擧、別坐、向上、別監所掌之務, 實爲繁劇, 每當歲末, 悉令去官, 以償其勞, 誠勸士之美意也。 然其職任, 只在一年之內。 是以慮不及來歲之務, 各色菜種, 不以時收, 糞田養牛, 亦不經意, 及其耕種之時, 必公給菜種之價。 是以菜種匱而耕牛瘠, 糞田不時而田不肥。 此無他, 居是官者, 備之無素故也。 願自今提擧別坐向上別監各位, 一人去官, 一人仍舊。 如是則無曠官廢職之失矣。 又令提調時時考察, 以懲其慢; 東西瓦窰判官, 亦準此例, 毋得一時去官。
議政府議: "竝如憲府所申。"
一, 《文公家禮》云: "身及主婚者, 無期以上喪, 乃可成婚。" 我朝士大夫之家, 身及主婚者, 雖在衰絰之中, 乃或有許嫁成婚, 非獨違於古禮, 風俗澆漓, 莫甚於此。 願自今, 士大夫婚姻之家, 皆法《文公家禮》, 違者痛治。
議政府議: "父母喪三年內及期年喪百日內, 禁婚嫁; 有期以上喪, 主婚者勿禁。"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02면
- 【분류】사법(司法) / 인사(人事)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출판(出版)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왕실-종친(宗親) / 왕실-행행(行幸) / 교육-특수교육(特殊敎育) / 풍속(風俗)
- [註 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