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하여 종묘에 천신(薦新)하는 의례를 상정케 하다
김첨(金瞻)에게 명하여 사냥하여 종묘(宗廟)에 천신하는 의례를 상정(詳定)하게 하였다. 임금이 장령(掌令) 이관(李灌)을 불러 말하기를,
"전일에 너희들이 사냥하는 것을 불가하다 하였으니, 그러면 인군(人君)은 사냥을 못하는 것이냐?"
관(灌)이 대답하기를,
"신 등이 불가하다고 한 것은 장차 고묘(告廟)하려고 하면서 사냥을 하였기 때문이지, 인군(人君)이 사냥을 못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러면 종묘(宗廟)를 위하여 사냥하는 것이 예문(禮文)에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천자(天子)가 사냥할 때에는 큰 기[大綏]를 내리고, 제후(諸侯)가 사냥할 때에는 작은기[小綏]를 내린다.’는 것과, ‘상질로 잡은 것[上殺]은 변두(籩豆)에 채우고, 하질로 잡은 것[下殺]은 빈객(賓客)을 대접하는 데에 채운다.’ 한 것은 어째서 한 말인가? 또 나는 구중 궁궐(九重宮闕)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아니다. 비록 대강 시서(詩書)를 익혀서 우연히 유자(儒者)의 이름은 얻었으나, 실상은 무가(武家)의 자손이다. 어려서부터 오로지 말을 달리고 사냥하는 것을 일삼았는데, 지금 왕위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일찍이 경사(經史)를 보았더니, 참으로 재미가 있어서 하루도 책을 놓지 못하였다. 이것은 근신(近臣)들이 다 함께 아는 바이다. 다만 조용하고 편안한 여가에 어찌 놀며 구경하고 싶은 뜻이 없겠는가? 요새 교외에 기러기 떼가 많이 온다는 말을 들었고, 또 때가 매를 놓기에 좋은 때이다. 내가 생각하기를, ‘이것은 의장(儀仗)을 갖추어 행할 수도 없고, 또 수기(數騎)로 낮에 행할 수도 없다.’고 여겨, 새벽에 나가서 매를 놓고 돌아온 것이었다. 너희들과 간원(諫院)이 서로 잇달아 상소하므로, 곧 아뢴 대로 따른 것이다. 대저 내가 사냥을 하는 것은 심심하고 적적한 것을 달래기 위함이다. 너희들은 예전 사람의 글을 읽어서 강구(講究)하기를 반드시 익히 하였을 것이니, 어찌 무일(無逸)075) 의 글을 알지 못하겠는가?"
하고, 드디어 친히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잡고 관(灌)에게 보이며 읽게 하니, 관이 토를 떼지 못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본 지가 오래면 참으로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대의(大意)는 알 수 있다."
하고, ‘유관(遊觀)은 기체(氣體)를 기르는 것이라’는 구절(句節)을 뽑아내어 스스로 읽으며,
"이것이 사냥을 금하는 말인가? 예전 사람도 또한 금하지 않았고, 다만 지나치게 즐기지 말라는 것뿐이다. 내가 지나치게 즐긴 바가 있는가? 있거든 말하여 보라."
하니, 관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늘 말하는 것은 너와 힐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말하는 것이다."
하니, 관이 말하기를,
"신들도 역시 전하께서 사냥하는 것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장차 고묘(告廟)하려 하고, 또 언덕과 웅덩이가 험한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관은 물러가도 좋다."
하고, 이어 말하기를,
"관은 참으로 겁(怯)이 없는 자이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 제왕(帝王)이 사냥하는 예(禮)를 잘 상고하여 아뢰라."
하니, 과(科)가 대답하기를,
"전하께서 종묘(宗廟)에 일이 있는데도, 마침내 행하지 않은 것은 대간(臺諫)들이 간(諫)한 잘못 때문이오나, 그러나 바깥 사람[外人]들이 모두 말하기를, ‘전하께서 반드시 사냥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신들을 시켜 사냥하는 예(禮)를 강명(講明)하게 하시니, 신은 불가하게 생각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전일에 한양(漢陽)에 갈 때에, 내가 만일 재계(齋戒)하는 7일 안에 매[鷹]를 놓았다면, 대간(臺諫)의 말이 옳지마는, 내 마음을 알지 못하고 간하였다. 그러나 임금의 과실을 말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직책이고, 또 그 마음이 어찌 함부로 간한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내버려두고 논(論)하지 않았다. 지금 너희들을 시켜 사냥하는 예(禮)를 강명(講明)·상고(詳考)하게 하는 것은, 전일에 대간(臺諫)이 나더러 그르다고 하였기 때문에, 내가 그 예(禮)를 알고자 하는 것뿐이다. 네가 어째서 거슬러 탐지[逆探]하여 말하는가."
하고, 첨(瞻)에게 묻기를,
"너희들은 예제(禮制)를 상정(詳定)하는 일을 맡았는데, 사냥하여 종묘에 천신하는 의례는 어째서 상정하지 않는가?"
하니, 첨(瞻)이 대답하기를,
"사시제(四時祭)에는 모두 마땅히 미리 사냥하여 제사에 쓰지마는, 어찌 바야흐로 제사지내려 하면서 사냥할 수 있습니까?"
하매, 임금이 말하였다.
"네가 상정(詳定)하라."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79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註 075]무일(無逸) : 서경(書經)의 편명(篇名).
○乙巳朔/命金瞻詳定蒐狩薦廟之儀。 上召掌令李灌言曰: "前日, 爾等以田獵爲不可。 然則人君不可以田獵乎?" 灌對曰: "臣等所以爲不可者, 以將告廟而行耳, 非謂人君不可田狩也。" 上曰: "然則爲宗廟而田狩, 非禮文之所載乎? 天子下大綏, 諸侯下小綏, 上殺充籩豆, 下殺充賓客, 何爲而言也? 且予非生於九重者也。 雖粗習詩書, 偶得儒者之名, 實武家之子孫也。 自幼專事馳騁田獵, 及今居是位, 無事可爲。 嘗覽經史, 誠有味也, 未嘗一日釋卷, 此近臣之所共知。 但其宴安之暇, 豈無遊觀之志乎? 日者聞郊外鴻雁多至, 時宜放鷹。 予謂此不可備儀仗而行, 亦不可以數騎晝行, 乃曉出放鷹而還。 爾等與諫院相繼上疏, 卽依所申。 大抵予之田狩, 慰幽寂耳。 爾等讀古人之書, 講之必熟, 豈不知《無逸》之書乎?" 遂親執《大學衍義》示灌, 俾讀之。 灌不能句讀, 上曰: "久不覽則誠未易讀, 然大意可解也。" 乃拈出遊觀所以養其氣體之節, 自讀之曰: "此固禁其田獵之辭? 古人亦且不禁, 特不可過逸耳。 予有過逸乎哉? 有則第言之。" 灌不能對。 上曰: "今日之言, 非與爾詰, 乃言志也。" 灌曰: "臣等亦非止殿下之田也。 以將告廟, 亦畏陵坎之崎嶇也。" 上曰: "然。 灌退可矣。" 上曰: "灌也, 誠非怯者也。" 乃命金瞻、金科等曰: "明考《文獻通考》帝王蒐狩之禮以聞。" 科對曰: "殿下將有事于宗廟, 而卒不果者, 以臺諫進諫之失, 然外人皆謂殿下必有田獵之心。 今使臣等, 講明蒐狩之禮, 臣以爲不可。" 上曰: "前日南幸之時, 予若放鷹於齋戒七日之內, 則臺諫之言是矣, 乃不知予心而諫之。 然言君之失, 乃其職也, 且其心豈以爲妄諫哉! 故予置而不論。 今使汝等講考蒐狩之禮者, 前日臺諫以予爲非, 故予欲知其禮而已, 汝何逆探而言乎!" 問瞻曰: "爾等掌詳定禮制矣, 至於蒐狩薦廟之儀, 何不詳定乎?" 瞻對曰: "四時之祭, 皆當豫獵以薦, 豈可方祭而獵乎?" 上曰: "爾其詳定。"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79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