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관에 가서 사신 전휴 등에게 잔치를 베풀다
임금이 태평관(太平館)에서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었으니, 전휴(田畦) 등이 장차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사신이 대궐에 이르러 돌아가겠다고 고(告)하려 하니, 임금이 사신의 수고를 염려하여, 대언(代言) 이응(李膺)을 시켜 그만두도록 청하게 하고, 내전(內殿)으로 들어갔는데, 응(膺)이 미처 그만두게 하지 못하여, 사신이 이미 대궐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임금이 나오기도 전에 휴(畦) 등이 동상(東廂)에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임금이 나와서 그 까닭을 말하고 나서 재배(再拜)하여 보내고, 드디어 관(館)에 나가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잔치[宴具]가 매우 간략하였다. 임금이 박석명(朴錫命)에게 물으니, 석명이 대답하기를,
"신이 이문(移文)할 때에 하도 바빠서 약례(略例)라고 잘못 썼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죄는 경에게 있다. 그러나 너무 바쁜 소치(所致)이니 아직은 용서한다. 빨리 고쳐 판비(辦備)하라."
하였다. 석명이 물러나와 내자시(內資寺) 예빈시(禮賓寺)와 더불어 허겁지겁 고쳐 판비하였으나, 해가 기울어도 다 되지 않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자(內資)와 예빈(禮賓)은 일찍이 예(例)를 알면서 어찌하여 다시 묻지 않고 한갓 문자(文字)만 따랐느냐?"
하였다. 잔치가 파하매, 휴(畦) 등이 관문(館門)에서 전송하며 말하기를,
"전하께서 일찍 오셔서 늦게 돌아가시는 것을 우리들은 다 압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집안의 추졸(醜拙)이 사신(使臣)에게 알려졌으니, 내가 매우 부끄럽소. 유사(有司)는 마땅히 면(免)치 못할 것이오."
하였다. 마인(馬麟)이 말하기를,
"중인(中人) 이하는 허물이 없기가 어려우니 죄주지 마옵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이 대체(大體)에 관계되는 일은 아니고, 사신께서 굳이 청하니 말씀대로 하겠소."
하였다. 배정(裵整)이 종매(從妹)가 있는데, 전 단주 만호(端州萬戶) 유용(柳溶)의 집종[家婢]이었다. 정(整)이 용(溶)을 만나보고자 하니, 임금이 단주(端州)에 출사(出使)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정(整)이 부르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리하겠다고 하였다. 정(整)이 돌아가겠다고 고(告)함에 미쳐 말하기를,
"용(溶)이 오는 것이 어찌 이리 늦은가?"
하니, 석명(錫命)이 대답하기를,
"길이 멀기 때문이니 곧 당도할 것입니다."
하였다. 휴(畦)가 옆에 있다가 얼굴빛을 붉히며 말하기를,
"정말 단주(端州)에 있습니까?"
하였다. 석명이 얼굴을 붉히며 말하기를,
"용이 비록 나와서 천사(天使)를 만나더라도 죽이지는 않을 것이고, 또 비록 죽인다 해도 국가에서 무엇이 아까와서 숨기겠습니까? 2,3일만 머물러 기다리시오."
하였다. 석명이 임금께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네가 말을 잘하여 대답하였다. 그러나 정(整)이 용(溶)을 만나보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하니, 대언(代言) 이승상(李升商)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반드시 그 누이가 들어있는 천적(賤籍)을 빼앗으려는 것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7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上宴使臣于太平館。 以田畦等將還也。 初, 使臣欲至闕告還, 上慮使臣動勞, 使代言李膺請止入內。 膺未及止, 而使臣已至闕, 上不及出, 畦等入東廂以候, 上出陳其故, 再拜而送之, 遂詣館設宴。 宴具甚簡, 上問錫命, 錫命對曰: "臣當移文忙甚, 誤書略例。" 上曰: "罪在卿, 然煩劇所致, 姑恕之。 速改備。" 錫命退, 與內資、禮賓, 顚倒改辦, 日昃未就。 上曰: "內資與禮賓, 嘗知其例, 何不更問, 而徒從文字乎?" 宴罷, 畦等送于館門曰: "殿下之早來晩歸, 吾等俱知之。" 上曰: "家醜見知於使臣, 予甚愧汗。 有司當不免。" 馬麟曰: "中人以下, 無過難矣, 請勿罪。" 上曰: "此非關係大體之事, 使臣固請, 惟命。" 裵整有從(姝)〔妹〕 , 乃前端州萬戶柳溶家婢也。 整欲見溶, 上以出使端州對。 整請召之, 上曰: "諾。" 整及告歸曰: "溶來何遲?" 錫命對曰: "路遠故也, 行至矣。" 畦在傍變色曰: "誠在端州乎?" 錫命變色曰: " 溶雖出見, 天使不應殺之。 且雖殺之, 國家何吝而隱之! 但留二三日待之。" 錫命以聞, 上曰: "爾固善辭以對。 然整之欲見溶, 不知何故?" 代言李升商對曰: "是必欲奪其(姝)〔妹〕 所係之賤籍也。"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7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