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부원군 조준이 병중에 있어 육선을 내려 주다
평양 부원군(平壤府院君) 조준(趙浚)에게 육선(肉膳)을 내려 주었다. 임금이 일찍이 김과(金科)를 불러 말하기를,
"평양군(平壤君)은 어진 정승이다. 지금 병이 있고, 게다가 처상(妻喪)을 당하여 더욱 수척하였다. 성인(聖人)의 제도에 비록 부모의 상사라도 늙고 병든 사람은 육즙(肉汁)을 먹이도록 되어 있는데, 하물며 준(浚)은 벼슬이 높고 나이도 많으며, 또 병이 있으니, 육선(肉膳)을 주어 평복(平復)시키려고 한다. 복제(服制)를 마치도록 먹지 않으려고 하지 않을는지?"
하였다. 과(科)가 대답하기를,
"임금이 주시는데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또 조계(朝啓)하는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이씨(李氏)가 개국(開國)한 공(功)은 오로지 조준(趙浚)과 남은(南誾)에게 있다. 정도전(鄭道傳)은 언사(言辭)를 잘하여 공신(功臣)의 열(列)에 있었는데, 그가 공신(功臣)이 된 것은 또한 당연하나, 공(功)으로 논하면 마땅히 5, 6등 사이에 있을 것이다. 이미 간 사람들을 오늘에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남은이 만일 살아 있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부왕(父王) 때에 양정(兩鄭)이라고 일렀으니, 하나는 몽주(夢周)이고, 하나는 도전(道傳)이었다. 몽주는 왕씨(王氏)의 말년 시중(侍中)이 되어 충성을 다하였고, 도전은 부왕(父王)의 은혜에 감격하여 힘을 다하였으니, 두 사람의 도리가 모두 옳은 것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부왕께서 즉위하시던 처음에 용병(勇兵)을 모두 내게 위임하시고, 매양 인견(引見)하고 일을 의논하였는데, 정희계(鄭熙啓)가 매양 나를 부왕께 참소하므로, 뒤에는 입궐하려고 하면 문지기가 힐난하여, 비록 고(告)할 일이 있어도 내가 들어가지 못하였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생각하기를, 틈을 타서 들어가기만 하면 일일이 고하겠다고 하였는데, 마침 하루는 명소(命召)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런 때를 당하여 국가의 이해(利害)를 어째서 고하지 않느냐?’ 하시었다. 내가 대답하기를, ‘비록 들어와 고하려고 하여도, 문지기가 힐난하여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였더니, 태상전(太上殿)께서 무안한 기색이 있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사람을 시켜 앉으라고 하여야 앉느냐?’ 하시었다."
하고, 또 말하기를,
"태상전께서 계룡산(鷄龍山)의 터를 보고 돌아오실 때에 내가 남은의 장막(帳幕)에 들어가니, 은(誾)이 좋아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이제부터 내 장막에 들어오지 마시오.’ 하기에, 내가 드디어 나와서 들어가지 않았었다. 이때에 태상전께서 세자(世子)를 남은에게 부탁하시었다."
하였다. 숙번이 말하기를,
"근자에 남재(南在)를 만났는데, 재(在)가 말하기를, ‘태상전께서 세자를 은에게 부탁하셨으면, 은(誾)의 죽음은 마땅하지마는, 진실로 부탁하신 일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은(誾)은 곧은 사람이어서 나이 어린 후사(後嗣)[六尺之孤]를 부탁할 만하기 때문에 부탁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66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역사-전사(前史)
○賜肉膳于平壤府院君 趙浚。 上嘗召金科曰: "平壤君, 賢相也。 今有疾, 又遭妻喪, 憔悴益甚。 聖人之制, 雖大喪, 老病者, 宜食肉汁。 況浚位極年高, 且有疾! 欲賜肉膳, 庶使平復, 其不亦欲終制而不食乎?" 科對曰: "君賜, 豈敢辭乎?" 至是, 又與朝啓諸臣議之, 因曰: "李氏開國之功, 專在趙浚與南誾耳。 鄭道傳則善於言辭, 而居功臣之列。 其爲功臣亦當矣, 以功而論, 則當在五六間矣。 旣往之人, 今日不得不思也。 南誾若在, 則豈不樂乎? 父王時, 謂之兩鄭, 一夢周, 一道傳。 夢周當王氏衰季, 爲侍中而盡忠; 道傳感父王之恩而竭力, 二人之道, 皆是矣。" 又曰: "父王卽位之初, 以勇兵皆委於我, 而每引見議事。 鄭熙啓每搆我於父王, 後欲入闕, 則閽者難之。 雖有可告之事, 予不得入, 心竊以爲乘間得入, 則一一告之。 會一日命召曰: ‘當此之時, 國家利害, 何爲不告?’ 予對曰: ‘雖欲入告, 閽者難之, 不得入也。’ 太上殿有慙色曰: ‘必使人請坐乎?’" 又曰: "太上殿相雞龍山還駕時, 予入南誾帳幕, 誾不肯曰: "自今毋入我帳幕。" 我遂出不入。 是時, 太上殿以世子托於誾也。" 叔蕃曰: "近見南在, 在曰: ‘太上殿托世子於誾, 則誾之死當矣, 固無付托也。’" 上曰: "誾, 直者也。 可以托六尺之孤者, 故付托也。"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6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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