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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4월 21일 정묘 2번째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검교 좌정승 우인렬의 졸기

검교 좌정승(檢校左政丞) 우인렬(禹仁烈)이 죽었다. 인렬단양(丹陽)사람인데, 도평의 녹사(都評議錄事)로 출신(出身)하였다. 기해년에 홍건적(紅巾賊)이 와서 침공하니, 한방신(韓方信)으로 원수(元帥)를 삼고, 인렬로 장무(掌務)를 삼았다. 하루는 원수(元帥)가 종사 군관(從事軍官)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는데, 인렬이 받기를 청하였다. 원수가 말하기를,

"장무(掌務)는 부서(簿書)를 맡을 뿐이지, 군사는 받아 무엇하는가?"

하였다. 굳이 청하니, 원수가 허락하고 마음속으로 기이하게 여겼다. 접전(接戰)함에 이르러 몸소 사졸(士卒)에 앞장서서 여러 번 공을 세웠다. 드디어 조정에 천거되어 감찰 어사(監察御史)를 제수받고, 여러 벼슬을 거쳐 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다. 임신년에 우리 태상왕(太上王)께서 원종 공신(原從功臣)의 녹권(錄券)을 주었고, 기묘년에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제수되고, 계미년에 검교 좌정승(檢校左政丞)에 승진되었는데, 병으로 집에서 죽으니, 나이가 67세였다. 부음이 들리매 조회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치제(致祭)하였으며, 시호를 정평(靖平)이라 하였다. 인렬은 관후(寬厚)하고 충직(忠直)하여, 일찍이 합포 원수(合浦元帥)가 되어 역전(力戰)하여 적을 물리쳤고, 전후(前後)로 경사(京師)에 입조(入朝)한 것이 무릇 다섯 번이었다. 아들이 두 사람이니, 우양선(禹良善)·우양수(禹良壽)이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63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의식(儀式) / 인사-관리(管理)

○檢校左政丞禹仁烈卒。 仁烈, 丹陽人, 出身都評議錄事。 歲己亥, 紅賊來寇, 以韓邦信爲元帥, 仁烈爲掌務。 一日, 元帥分兵于從事軍官, 仁烈請受之, 元帥曰: "掌務, 任簿書耳。 何受兵爲!" 固請, 元帥許之, 心以爲奇, 及其接刃, 身先士卒, 屢致成功。 遂薦于朝, 拜監察御史, 歷官至門下贊成事。 壬申, 我太上賜原從功臣之券, 己卯, 除判三司事, 癸未, 陞檢校左政丞, 以疾卒于第, 年六十七。 訃聞, 輟朝三日, 賜祭, 諡靖平仁烈寬厚忠直。 嘗爲合浦元帥, 力戰却賊, 前後朝京師者凡五。 子二人, 良善良壽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63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의식(儀式)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