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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5권, 태종 3년 4월 21일 정묘 1번째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우정승 성석린을 사례사로 경사에 보내고 건문이 준 고명과 인장을 환납하다

우정승 성석린(成石璘)·승추부 제학(承樞府提學) 이원(李原)·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이정견(李廷堅)을 보내어 경사(京師)에 가게 하였으니, 석린(石璘)원(原)은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준 것에 대해 사례하기 위한 것이다. 건문(建文)이 준 고명과 인장을 환납하였다. 사표(謝表)에 이르기를,

"윤언(綸言)026) 으로 훈계하니 밝게 권하고 징계하는 바를 보였고, 보명(寶命)027) 이 새로워졌으니, 감격하고 부끄러움이 더할 뿐입니다. 보답하여 선양(宣揚)하기를 오직 조심스럽게 하여, 분골 쇄신(粉骨碎身)이 되어도 갚기가 어렵습니다. 외람하게 용렬한 자질(資質)로 멀리 황복(荒服)028) 에 거(居)하여 기쁘게 밝은 시대를 만났으니, 바야흐로 집양(執壤)029) 의 의례(儀禮)를 닦고 크게 덕음(德音)을 내리었으니, 이에 분모(分茅)030) 의 영광을 주시었습니다. 하물며 회유(誨諭)하심을 입었으니, 항상 마음에 새겨 잊지 않기를 더욱 간절히 하겠습니다. 도량(度量)은 넓게 용납하시고, 어짊[仁]은 똑같이 사랑함을 베풀었습니다. 제후(諸侯)를 세우는 것은 희역(羲易)에서 몸받고, 서옥(瑞玉)을 반사(頒賜)하는 것은 우서(虞書)에 상고하였습니다. 드디어 어리석고 용렬한 자질로 하여금 나라를 보전하고 다스리는 부탁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아름답게 부로(父老)들과 성수(聖壽)가 하늘과 가지런하기를 빌고, 맹세코 자손에 이르도록 후도(侯度)를 길이길이 부지런히 하겠습니다."

하였다. 석린에게 구마(廐馬) 한 필을 내려 주었다. 정견(廷堅)은 중궁(中宮)의 책봉을 하례하기 위함이었다. 조거임(趙居任)석린 등과 함께 가려고 하다가, 임금이 만류하여 그만두었다. 이튿날 거임이 운암사(雲巖寺)에 가서 놀다가 돌아오니, 임금이 태평관에 가서 잔치를 베풀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63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註 026]
    윤언(綸言) : 황제가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말.
  • [註 027]
    보명(寶命) : 천자(天子)의 명령.
  • [註 028]
    황복(荒服) : 천자의 감화가 미치지 않는 먼 나라.
  • [註 029]
    집양(執壤) : 지방에서 나는 방물(方物)로 드리는 예물(禮物).
  • [註 030]
    분모(分茅) : 제후(諸侯)로 봉하는 것.

○丁卯/遣右政丞成石璘、承樞府提學李原、藝文館提學李廷堅如京師。 石璘謝賜誥命印章也。 繳納建文所錫誥命印章。 謝表曰:

綸言是訓, 明示勸懲。 寶命惟新, 祗增感愧。 對揚惟謹, 糜粉難酬。 猥以庸資, 邈居荒服。 欣逢昭代, 方修執壤之儀; 誕降德音, 爰錫分茅之寵。 矧蒙誨諭, 冞切佩銘。 度擴兼容, 仁推一視。 體建侯於《羲易》, 稽頒瑞於《虞書》。 遂令瑣末之資, 獲守保釐之寄。 嘉與父老, 祝聖壽於齊天; 誓至子孫, 勤侯度於永世。

石璘廐馬一匹。 廷堅, 賀冊封中宮也。 趙居任欲與石璘等偕行, 上留之, 乃止。 翌日, 居任雲巖寺而還, 上如太平館設宴。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63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