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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3월 27일 갑진 1번째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사관을 다시 입시하게 하다

사관(史官)에게 명하여 입시(入侍)하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임금이 사사로 김과(金科)에게 이르기를,

"지난번에 두세 종친(宗親)과 더불어 청화정(淸和亭)에서 과녁을 쏘았는데, 간원(諫院)에서 상소하여 말하기를, ‘날마다 무신(武臣)과 더불어 과녁을 쏜다.’ 하였으니, 종친이 들으면 어찌 마음에 불쾌함이 없겠는가? 그렇게 되면 문무(文武) 사이에 혐의와 틈이 생길 것이다. 내가 이러한 뜻으로 인하여 사관의 입시를 금한 것이다. 이것은 유생(儒生)을 무마하고 혐의와 틈을 방지하자는 것이지, 사관을 꺼려서가 아니다."

하고, 또 우대언(右代言) 이응(李膺)에게 말하였다.

"이색(李穡)은 동방(東方)의 대유(大儒)이나, 대장경(大藏經)을 보기를 좋아하여 여러 선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지금 불사(佛事)를 행하지 않는 자는 오직 하윤(河崙)일 뿐이요, 그 나머지 유자(儒者)는 몰래 불사를 행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불씨(佛氏)의 보응(報應)의 설(說)이 모두 명명(冥冥)한 가운데에 있어서 명백한 증험이 없으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59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상-불교(佛敎)

○甲辰/命史官入侍如故。 上私謂金科曰: "向者, 與二三宗親, (射候)〔射侯〕淸和亭, 諫院上疏以爲: ‘日與武臣射侯。’ 宗親聞之, 豈不有歉於心哉? 然則文武之間, 嫌隙生矣。 予以此意, 禁史官入侍, 是所以撫儒生而防嫌隙, 非憚史官也。" 又謂右代言李膺曰: "李穡, 東方鉅儒也。 然好覽《大藏經》, 爲諸儒所笑。 今之不作佛事者, 其惟河崙乎! 其他儒者, 不無陰作佛者也。 佛氏報應之說, 皆在冥冥之中, 未有明驗, 豈可信哉?"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59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