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 천호가 만산군에 대한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와서 조서 받는 의식을 요구하다
요동(遼東) 천호(千戶) 왕득명(王得名)·백호(百戶) 왕미실첩(王迷失帖) 등이 칙서(勅書)를 받들고 오므로, 임금이 면복(冕服) 차림으로 군신(群臣)을 거느리고 서교(西郊)에 나가서 맞아 대궐에 이르러 개독(開讀)하였다.
"황제는 동녕위(東寧衛)의 도망해 흩어진 관원(官員)과 군민(軍民) 등에게 칙유(勅諭)한다.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동녕위를 개설(開設)하여 호생(好生)의 덕(德)으로 편안하게 길렀으나 너희들이 매양 늦게 왔고, 건문(建文) 연간에 너희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으나 매양 임의로 흩어져 달아나매 어찌할 수 없었다. 지금은 천하가 태평하여졌고, 내가 태조 황제의 법도를 좇아서 너희들을 편안하게 기르니, 모두 돌아와서 동녕위 안에 거주하여, 벼슬하던 사람은 벼슬하고, 군인노릇 하던 사람은 군인노릇 하고, 백성은 백성노릇 하여, 사냥하고 농사지어 생업에 종사하되 편할 대로 하고, 두려워하고 놀래고 의심하지 말라. 만일 끝내 고집하고 흩어져 도망하여 돌아오지 않으면, 오랜 뒤에 뉘우쳐도 때는 늦을 것이다. 그러므로 칙유(勅諭)한다."
임금이 호조 전서(戶曹典書) 설미수(偰眉壽)을 시켜 득명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 나라에 이르[諭]는 글이 아니고, 또 칙유(勅諭)는 개독(開讀)하는 예(禮)가 없다."
하니 사신이 말하기를,
"비록 이 나라에 이르는 글이 아니더라도, 이 나라는 만산군(漫散軍)이 있는 곳이니, 개독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칙서(勅書)이고 조서(詔書)가 아니니, 조서를 맞는 예(禮)로 행할 수는 없다."
하니 사신이 말하기를,
"칙서를 맞는 것과 조서를 맞는 것이 다름이 없으나, 예(禮)는 인정에 맞게 할 뿐이니, 왕은 절충하여 행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사배(四拜)를 행하고 고두(叩頭)는 행하지 않았다. 편전(便殿)에 들어가 면복을 벗고 나와서 사례(私禮)를 행하고, 인하여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고 각각 안마(鞍馬)를 주니, 득명 등이 영조례(迎詔禮)를 행하지 않았다 하여 자못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55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辛卯/遼東千戶王得名、百戶王迷失帖等, 奉勑書至, 上以冕服, 率群臣迎于西郊, 至闕開讀:
皇帝勑諭東寧衛漫散官員軍民人等。 太祖皇帝開設東寧衛, 好生安養, 爾每後來, 建文苦得爾, 每沒奈何。 漫散出去, 如今天下太平了。 我只遵着太祖皇帝的法度安養。 爾每都回來東寧衛裏來住, 官仍舊做官, 軍仍舊做軍, 民仍舊做民, 打圍種田做生理, 聽從所便, 休要害怕驚疑。 若一向執迷, 漫散不來, 恐久後悔時遲了, 故勑。
上使戶曹典書偰眉壽言於得名曰: "此非諭我國之書, 且勑諭無開讀之禮。" 使臣曰: "雖非諭此國之書, 此國乃漫散軍之所在, 不可不開讀。" 上曰: "此乃勑書, 非詔書也。 不可以迎詔之禮行之。" 使臣曰: "迎勑迎詔, 初無異也。 然禮稱人情而已, 王其折衷行之。" 於是, 上行四拜不叩頭, 入便殿釋服, 出行私禮, 仍設宴慰之, 各贈鞍馬。 得名等乃以不行迎詔禮, 頗有不懌之意。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55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