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寺田)을 환급한다고 하니 태상왕이 다시 육선을 들다.
태상왕이 다시 육선(肉膳)을 들었다. 임금이 태상왕께 헌수(獻壽)하고 육선을 올리려고, 앞에 나아가서 엎드리고 말하기를,
"신(臣)이 예전 사람의 글을 보고 강관(講官)의 말을 들어보면, ‘70에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 하였는데, 지금 부왕께서 왕사의 말을 들으시고 육선을 끊으시어, 안색이 평일과 같지 않으시니, 신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하고, 인하여 눈물을 흘리니, 태상왕이 말하기를,
"내가 왕사에게 말하기를, ‘내가 사(師)를 좇은 지가 이미 7년이 되었는데, 어째서 한마디 말로 나를 가르침이 없는가?’하니, 사(師)가 말하기를, ‘왕께서 지금부터 술과 고기를 끊으소서.’ 하였다. 내가 이를 행하고자 하나, 술은 병이 있으니 끊을 수 없고, 다만 고기만 먹지 않는 것이다. 네가 만일 불법(佛法)을 숭신(崇信)한다면, 비록 밀기(密記)에 붙이지 않은 사사(寺社)라 할지라도 그 토전(土田)을 모두 환급(還給)하고, 또 승니(僧尼)의 도첩(度牒)을 추문(推問)하지 말고, 부녀자들이 절에 올라오는 것을 금하지 말며, 또 부처를 만들고 탑을 세워 내 뜻을 잇는다면, 내가 비록 파계(破戒)하고 청(請)을 좇는다 하더라도 거의 사(師)의 가르침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대개 불법은 전조(前朝)의 성시(盛時)에도 오히려 폐하지 아니하고 오늘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소사(所司)로 하여금 헐지 말게 하라."
하였다. 임금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신이 죽는 것도 감히 사양치 못하거늘, 하물며 이 일이겠습니까?"
하고, 곧 지신사(知申事) 박석명(朴錫命)에게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에 전지(傳旨)하되, 한결같이 태상왕의 말씀대로 하였다. 태상왕이 말하기를,
"국왕의 정성이 이와 같고, 대소 신료(大小臣僚)들이 또한 모두 간청하니, 내 감히 좇지 않겠는가?"
하고, 곧 육선(肉膳)을 드니, 임금이 일어나 사례하고, 정승 이무(李茂)가 대간(臺諫)들을 거느리고 배사(拜謝)하였다. 태상왕이 사람을 시켜 무(茂)에게 이르기를,
"국왕이 사사(寺社)의 전지(田地)를 환급(還給)하도록 이미 정했으니, 내가 매우 기쁘다. 경 등은 다시 이를 폐지하지 말라."
하였다. 태상왕이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창녕 부원군(昌寧府院君) 성석린(成石璘)·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치사(致仕)한 이서(李舒)를 불러 시연(侍宴)하게 하니, 임금이 기뻐서 성악(盛樂)을 연주하도록 명하고, 일어나서 춤을 추며 헌수(獻壽)하였다. 태상왕이 술이 취하매, 명하여 피리[笛]와 요고(腰鼓)를 그치게 하고, 기생을 시켜 삼현(三絃)을 가지고 앞에서 연주하게 하였다. 석린 등에게 명하여 연구(聯句)를 지어 부르게 하고, 이에 화답하며 극진히 즐기니, 석린 등이 번갈아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 태상왕이 박석명을 앞으로 나오게 하고 말하기를,
"사사의 전지를 환급하도록 한 일들을 이미 내리었느냐?"
하니, 석명이 대답하기를,
"이미 내리었습니다."
하였다. 태상왕이 말하기를,
"이미 내린 초문(草文)을 보고 싶다."
하였다. 석명이 곧 올리니, 태상왕이 보고 나서 내수(內竪)에게 주어 간직하게 하고, 일어나서 읍(揖)하여 사례하고 들어갔다. 임금이 매우 기뻐하여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참 즐겁다. 내가 친히 이 당(堂)에서 풍악을 연주하겠다."
하였다. 악차(幄次)로 돌아오는데 대가(大駕) 앞에서 피리[笛]를 불도록 명하니, 밤은 이미 야반(夜半)이 되었다. 총제(摠制) 이숙번(李叔蕃)에게 명하여 활을 잘 쏘는 군사들을 뽑아서 새를 사냥하여 태상전(太上殿)에 드리었다. 태상왕이 말하기를,
"왕은 빨리 서울에 돌아가는 것이 가하다."
하니, 임금이 하직하였다. 박석명에게 명하기를,
"비록 밀기(密記)에 붙인 밖의 사사(寺社)라 하더라도 그 전지(田地)를 모두 환속(還屬)시키고, 패망한 사사의 전지는 성중(成衆) 작법처(作法處)에 이속(移屬)시켰다가, 다시 창건하기를 기다려서 환속시키도록 하고, 금후로는 삭발하는 자가 있으면 그 소원대로 하도록 허락하되, 도첩(度牒)에 구애하지 말고, 부녀(婦女)가 부모를 추천(追薦)하기 위하여 백일 안에 절[寺]에 오르는 것을 금하지 말라. 전조(前朝)의 성시(盛時)에도 불법(佛法)을 폐하지 아니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이제부터는 비록 소사(所司)라 하더라도 비방하지 말고 헐뜯지 말라."
하였다. 이때에 가을걷이가 다 되지 아니하여 화곡(禾穀)이 들에 가득하였다. 임금이 이를 짓밟아 손실될까 두려워하여 매[鷹]와 개[犬]를 금하고, 사람 5, 6명을 명하여 순찰하게 하니, 왕래하는 길 옆의 곡식이 하나도 손상된 것이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4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상-불교(佛敎) / 사법-법제(法制)
○乙卯/太上王復進肉膳。 上獻壽于太上王, 欲進肉膳, 進伏于前曰: "臣觀古人之書, 聞講官之言, 七十非肉不飽。 今父王聽王師之言, 絶肉膳, 顔色不如平日, 臣安敢不悲!" 因涕泣, 太上王曰: "予告王師曰: ‘我之從師, 已七年矣。 何無一言誨我!’ 師曰: ‘王自今斷酒肉焉。’ 予欲行之, 酒則病矣, 不可止, 但不食肉。 爾若崇信佛法, 雖密記不付寺社, 其土田皆還給之。 又勿推僧尼度牒, 不禁婦女上寺, 又造佛造塔, 以繼我志, 則予雖破戒而從請, 庶無愧於師敎也。 蓋佛法, 前朝盛時, 尙且不廢, 以至今日, 宜令所司毋毁。" 上叩頭曰: "臣死且不敢辭, 況此事乎!" 卽命知申事朴錫命, 傳旨議政府, 一遵太上王之敎。 太上王曰: "國王之誠如此, 大小臣僚亦皆懇請, 予敢不從!" 卽進肉膳, 上起謝。 政丞李茂率臺諫拜謝, 太上王使人謂茂曰: "予悅國王寺社田地還給。 事已定之矣, 卿等毋更廢閣。" 太上王召義安大君 和、昌寧府院君 成石璘、領議政府事致仕李舒入侍宴。 上喜, 命奏盛樂, 起舞獻壽。 太上王酒酣, 命除笛與腰鼓, 令妓持三絃奏于前, 命石璘等聯句唱和, 極懽, 石璘等迭起而舞。 太上王進朴錫命曰: "寺社田地還給等事已下乎?" 錫命對曰: "已下矣。" 太上王曰: "欲見已下草文。" 錫命卽進之, 太上王覽之, 授內竪藏之, 起揖謝之而入。 上喜甚, 顧謂左右曰: "樂哉今日之事! 予可親自奏樂于此堂矣。" 還幄次, 命吹笛於駕前, 夜已半矣。 命摠制李叔蕃, 選善射軍士獵禽, 獻于太上殿, 太上王曰: "王速還京可矣。" 上辭。 命朴錫命曰: "雖密記付外寺社, 其田地皆還屬, 敗亡寺社田地, 移屬成衆作法處, 待重創還屬之。 今後有削髮者, 許從其願, 毋拘度牒, 毋禁婦女父母追薦百日內上寺。 前朝盛時, 尙且不廢佛法以至今, 自今雖所司, 毋得謗毁。" 時, 秋未穫, 禾穀蔽野, 上恐有蹂損, 禁鷹犬, 命人五六巡察之, 往來道傍之穀, 一無所損。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4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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