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암사로 가서 태상왕을 문안하다
임금이 회암사(檜巖寺)로 가서 태상왕을 조알(朝謁)하였다. 처음에 태상왕이 왕사(王師) 자초(自超)의 계(戒)를 받아 육선(肉膳)을 들지 아니하여, 날로 파리하고 야위어졌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환관(宦官)을 시켜 자초에게 말하기를,
"내가 태상전(太上殿)에 나가서 헌수(獻壽)하고자 하는데, 만일 태상왕께서 육선(肉膳)을 자시지 않는다면, 내가 장차 왕사(王師)에게 허물을 돌리겠다."
하였다. 자초가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회암사를 사양하고 작은 암자에 나가 있었다. 임금이 이른다는 말을 듣고 회암사 주지(住持) 조선(祖禪)과 더불어 태상왕께 고하기를,
"상(上)께서 육선(肉膳)을 드시지 아니하여, 안색이 파리하고 야위어지십니다. 우리들이 오로지 상위(上位)께서 부처를 좋아하시는 은혜를 입어서 미천한 생(生)을 편안히 지내는데, 지금 상(上)의 안색이 파리하고 야위신 것을 보니, 우리들의 생이 오래지 않은 것을 알겠습니다."
하였다. 태상왕이 말하기를,
"국왕이 만일 나처럼 부처를 숭상한다면, 내가 마땅히 고기를 먹겠다."
하였다. 임금이 들어가 술잔을 올리니, 태상왕이 허락하고 얼굴빛이 안화(安和)해졌다. 임금이 기뻐하여 삼현(三絃)을 들여와 연주하도록 명하고, 소선(素膳)을 올리었으니, 태상왕의 뜻을 거스를까 두려워함이었다. 태상왕이 조용히 임금에게 말씀하기를,
"왕사의 말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 후생에 반드시 머리 없는 벌레가 된다’고 하기에,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였다. 임금이 말 네 필을 태상전에 바치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4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사상-불교(佛敎)
○上朝太上王于檜巖寺。 初, 太上王受王師自超戒, 不御肉膳, 日漸消瘦。 上聞之, 使宦官言于自超曰: "予欲詣太上殿獻壽。 若太上王不御肉膳, 予將歸咎於王師矣。" 超憂懼, 辭檜巖出居小菴, 聞上至, 與檜巖住持祖禪告太上王曰: "上不御肉膳, 顔色消瘦。 吾輩專蒙上位好佛之恩, 以安微生。 今覩上之顔色消瘦, 知吾輩之生不久也。" 太上王曰: "國王若能如予之崇佛, 則予當食肉矣。" 上入進杯, 太上王許之, 顔色安和。 上喜, 命三絃入奏, 進以素膳, 恐忤太上之意也。 太上王從容語上曰: "王師曰: ‘飮酒食肉, 則後生必爲無首蟲。’ 故予不食肉也。" 上進馬四匹于太上殿。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4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