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저를 의정부 찬성사에 임명하는 등 관리들에게 관직을 임명하다
이저(李佇)로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이빈(李彬)으로 사평부 좌사(司平府左使)를, 강회백(姜淮伯)으로 참판승추부사(參判承樞府事)·경상도 도관찰출척사(慶尙道都觀察黜陟使)를, 이첨(李詹)으로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김희선(金希善)으로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서북면 도순문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理使)를, 임정(林整)으로 참지승추부사(參知承樞府事)·충청 전라 경상도 도제찰사(都體察使)를, 유창(劉敞)으로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을, 이내(李來)로 첨서승추부사(簽書承樞府事)를, 여칭(呂稱)으로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강원도 도관찰출척사(江原道都觀察黜陟使)를, 장자충(張子忠)으로 우군 총제·풍해도 도관찰출척사(豊海道都觀察黜陟使)를, 이문화(李文和)로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를, 박신(朴信)으로 사헌부 대사헌을, 조용(趙庸)·권담(權湛)으로 좌·우사간 대부(左右司諫大夫)를, 장덕량(張德良)으로 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을 삼았다. 임금이 단주(端州) 청주(靑州)의 인물이 다른 도와 같지 못하여 근심하였는데, 도관 정랑(都官正郞) 정복주(鄭復周)가 이무(李茂)에게 말하기를,
"내가 만일 한다면 며칠이 안되어 다른 도와 같을 것이다."
하였다. 무(茂)가 그의 말대로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복주는 나의 동년(同年)077) 이다. 젊어서부터 안다."
하였다. 박석명(朴錫命)이 말하기를,
"부지런하고 검소하여 부릴 만한 자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시험하여 보자. 만일 직위가 높다면 찰리사(察理使)를 시키겠지만, 지금 직위가 낮으니, 마땅히 중훈(中訓)을 가하여 지경성군사(知鏡城郡事) 겸 지병마방어사(兼知兵馬防禦事)를 삼는다."
하였다. 강회백이 아비의 상(喪)을 마치지 못하였으므로 전(箋)을 올려 기복(起復)을 사양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4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註 077]동년(同年) : 같은 해에 등과(登科)한 사람.
○癸卯/以李佇爲議政府贊成事, 李彬司平府左使, 姜淮伯參判承樞府事、慶尙道都觀察黜陟使, 李詹藝文館大提學, 金希善參知議政府事、西北面都巡問察理使, 林整參知承樞府事、忠淸ㆍ全羅ㆍ慶尙道都體察使, 劉敞藝文館提學, 李來簽書承樞府事, 呂稱右軍同知摠制、江原道都觀察黜陟使, 張子忠右軍摠制、豐海道都觀察黜陟使, 李文和參贊議政府事, 朴信司憲府大司憲, 趙庸、權湛左右司諫大夫, 張德良 成均大司成。 上以端ㆍ靑州人物, 不如他道爲憂。 都官正郞鄭復周言於李茂曰: "予若爲之則不日如他道矣。" 茂以啓, 上曰: "復周, 予之同年也。 自少知之。" 朴錫命曰: "勤儉可使者也。" 上曰: "試可乃已。 若職高則可爲察理使, 今職卑, 宜加中訓, 知鏡城郡事兼知兵馬防禦事。" 淮伯, 以未終父喪, 上箋辭起復, 不允。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4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