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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3권, 태종 2년 4월 5일 정사 1번째기사 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다시 이지직·전가식의 죄를 청하는 사헌부의 상소문

사헌부에서 다시 이지직·전가식의 죄를 청하였다. 상소는 이러하였다.

"이달 초4일에 이지직 등의 죄를 청하였사오나 아직도 윤허를 받지 못하여 신 등의 실망은 매우 깊습니다. 간신(諫臣)이 되어 가지고 임금의 과실을 간함은 그 직분이옵고, 간(諫)함이 적중성을 잃었어도 죄를 가하지 아니함은 임금의 지극한 덕(德)이옵니다. 그러하오나 그가 말하기를, ‘의복과 탈 것이 좋고 아름다워 제도를 따르지 않고, 매와 개를 좋아하며 성색(聲色)을 즐긴다.’고 하였음은 적중성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거짓으로 성상의 과실을 말하여 사책(史冊)에 쓰게까지 하였으니, 후세의 신하로서 어느 누가 ‘임금이 있으며 신하가 있다.’고 하겠나이까? 이 점을 신 등은 마음 아프게 여기고 변정(辯正)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옵니다. 전하께옵서 대의(大義)를 가지고 단안을 내리시어 이지직전가식을 조언죄(造言罪)로 국문하시어 여러 신하의 소망을 시원하게 하소서. 전하께옵서 만약 신 등의 말을 아첨하는 것으로 여기신다면 죄가 신 등에 미쳐도 또한 유감이 없겠나이다."

지신사 박석명에게 명하여 이지 등에게 전지하기를,

"경 등의 청은 옳다. 그러나 간신(諫臣)이 나의 과실을 말하였다 하여 죄를 가하는 것은 불가하다."

하였다. 이지가 또 아뢰기를,

"보통 사람에 있어서도 불가하온데 하물며 임금의 과실을 말함에 있어서 이처럼 속이오니, 죄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이지가 재삼(再三) 청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였다. 이지박석명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라 하고 아뢰기를, ‘이미 죄를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지직 등을 불러 휴가를 청하게 함이 어떨는지요?’ 하시오."

하니, 박석명이 좋다고 하고, 마침내 들어가서 아뢰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하고, 바로 이지직 등을 불러 전지하기를,

"사헌부에서 죄주기를 재삼 청하였으나 간신(諫臣)을 죄줄 수 없는 까닭에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그 간(諫)한 말이 합당한가의 여부는 내 진실로 알 수 없으나, 사헌부에서 청하는 것은 반드시 근거가 있을 것이니 그대들은 출사(出仕)하지 말라."

하였다. 이지(李漬)를 불러 말하기를,

"전일에 내가 간(諫)하는 말을 듣지 않는다 하여 네가 사직(辭職)했었는데, 이제 이지(李至) 등이 다시 청하여 내가 그 의견을 따랐다."

하고, 사표를 돌려주니 이지(李漬)가 기뻐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이지직 등의 상소를 보고 놀라면서 말하기를,

"후세에 나를 보고 임금의 도리가 조금이나마 있다고 말하겠는가?"

하며,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 있었다. 이지(李至) 등이 이 말을 듣자, 곧 이지직 등의 죄를 청했다고 한다. 임금이 대언(代言)들에게 묻기를,

"성랑(省郞)으로서 관교(官敎)013) 를 받은 사람이 먼저 벼슬에 올라 제랑(諸郞)의 고신(告身)014) 을 서출(署出)한 뒤에야 제랑(諸郞)이 출사(出仕)하는가?"

하니, 박석명이,

"그렇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또 성랑(省郞)의 간(諫)한 상소를 보니 나는 위조(僞朝)와 다름이 없다. 나를 보고 매와 개를 좋아하며 성색(聲色)을 즐긴다고 말하니, 비록 위조의 임금이라 하더라도 이 밖에 또 무엇을 하였겠는가? 내가 이미 이와 같으니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비록 하고자 하더라도 어찌 어진 임금이 될 수 있겠는가?"

하였다. 박석명·유기(柳沂)·이응(李膺) 등이 일어나서 사죄하여 말하기를,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두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은 모두 선비이므로 모르는 바가 없을 것이다.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 등의 왕이 있은 이래, 인군(人君)으로서 비록 주색(酒色)에 빠지는 행실이 없는데도 간신(諫臣)이 주색에 빠졌다고 지적하여 간(諫)한 적이 있는가?"

하니, 박석명 등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직 한(漢)나라 때 급암(汲黯)015)무제(武帝)에게 간(諫)하기를, ‘폐하께서는 속으로는 욕심이 많으시나 겉으로는 인(仁)과 의(義)를 베푸십니다.’ 하니, 진서산(眞西山)016) 이 이것을 자세하게 말하였다. 경들은 들으라. 정권(政權)이 대간(臺諫)에게 돌아가면 명현(明賢)과 대상(大相)들을 모두 토죄(討罪)하겠는가? 이사(李斯)017) ·이임보(李林甫)018) 같은 사람은 토죄함이 옳지만, 소망지(蕭望之)019) ·이응(李膺)020) 같은 무리들도 토죄함이 옳겠는가? 오늘날 온 나라 사람들이 대간(臺諫)을 보고 말 잘한다 하고, 나를 가리켜 간언(諫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여기는 까닭에 간관(諫官)의 직책을 빼앗았다. 내 벌써 간(諫)하는 말을 거부한다는 이름을 얻었으니, 이제부터는 맹세코 간(諫)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하니, 유기가 말하기를,

"한 사람의 신하가 상소한 잘못을 가지고 전하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말씀을 하십니까?"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대성(臺省)을 재상(宰相)으로서 영솔하게 함은 옳지 못한가?"

하니, 유기가 말하기를,

"우리 조정에서는 재상으로 이를 영솔하게 하지 아니함이 오래입니다."

하고, 박석명은 말하기를,

"사헌부는 좌정승이 영솔하게 하십시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정승이 논사(論事)에 참여하는가?"

박석명이 말하기를,

"참여하지 않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무슨 까닭인가?"

하니, 유기가 말하기를,

"그 유래가 오래 되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 이같을 수 있겠는가? 재상이 논사(論事)에 참여하게 되면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니, 박석명이 대답하기를,

"재상은 간쟁(諫諍)의 임무가 없습니다."

하고, 이응이 말하기를,

"직책이 작고 지위가 낮은 자는 광망(狂妄)하여 간쟁의 임무에 가당(可當)하기 때문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광망이라 말하는가? 인군(人君)으로 상등은 요(堯)·순(舜)이 되고, 하등은 광포(狂暴)가 된다. 이제 나는 위로는 ·을 따라가지 못하고, 아래로는 광포 가운데도 들지 아니하여 쓸데가 없는 까닭에 간관(諫官)의 말이 이와 같은 것이다. 간관이 조금이라도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광망함이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비록 간관이라 하더라도 진실로 죄가 있으면 죽이는 것이 가하다. 지난번에 사간(司諫) 진의귀(陳義貴)·헌납(獻納) 김여지(金汝知)의 죄는 마땅히 엄형(嚴刑)에 처했어야 옳았으나, 내 곧 가벼운 법으로 다스렸다."

하매, 박석명 등이 말없이 물러갔다. 임금이 말하기를,

"단의(單衣)는 열새[十升]에 지나지 아니하고, 초립(草笠)은 간혹 다른 색(色)으로 속을 넣는데 쉽게 떨어지니 이익이 없다. 이 뒤로는 순색(純色)을 씀이 옳겠다."

하니, 박석명이 대답하기를,

"열새로만 하면 너무 거칩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였다.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오랫동안 입어서 그 편함을 안다. 그 전에 화혜(靴鞋) 등을 많이 궁중(宮中)으로 들여왔는데 모두 환관(宦官)과 시녀(侍女)의 사용(私用)으로 쓰이고 말았다. 지금 착용한 것 이외에는 모두 금하고 떨어지기를 기다려서 바꾸려고 한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30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 / 의생활-관복(官服) / 역사-고사(故事)

  • [註 013]
    관교(官敎) : 4품 이상을 임명할 때 주는 직첩(職牒).
  • [註 014]
    고신(告身) : 직첩(職牒).
  • [註 015]
    급암(汲黯) : 전한(前漢)의 명신(名臣). 자(字)는 장유(長孺), 복양(濮陽)사람. 노장학(老莊學)을 즐김. 무제(武帝) 때에 회양(淮陽)의 태수(太守)가 되었음.
  • [註 016]
    진서산(眞西山) : 송(宋)나라 진덕수(眞德秀)를 말함. 자는 경원(景元), 뒤에 경희(景希)로 고쳤음. 경원(慶元)에 진사(進士)가 되어 벼슬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음. 세칭 서산선생(西山先生)이라하며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 [註 017]
    이사(李斯) : 진(秦)의 정치가. 시황제(始皇帝)의 천하통일(天下統一)후 승상(丞相)이 됨. 순자(荀子)에게 배우고 한비자(韓非子)의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실행하였으며 또 분서갱유(焚序坑儒)에 의하여 사상통일(思想統一)을 강행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하고 문자를 통일하여 소전(小篆)을 제정하는 등 진(秦)의 패업과 그 정치는 그의 정책에 기인한 바 많았음.
  • [註 018]
    이임보(李林甫) : 당 현종(唐玄宗) 때 재상(宰相). 자(字)는 가노(哥奴), 호(號)는 월당(月堂). 교묘하게 환관(宦官)과 비빈(妃嬪)을 조정하여 황제의 동정(動靜)을 살펴 영합하고 재조(在朝) 19년에 정사(政事)를 마음대로 하여 마침내 안사(安史)의 난(亂)을 빚어내었음.
  • [註 019]
    소망지(蕭望之) : 한(漢)나라 난릉(蘭陵)사람. 자는 장천(長倩), 벼슬은 태자 태부(太子太傅). 선제(宣帝) 때 유조(遺詔)를 받아 정사(政事)를 돕고 상서(尙書)의 일을 보았으며 원제(元帝)가 즉위하자 사부(師傅)로서 광정(匡正)한 일이 많았음.
  • [註 020]
    이응(李膺) : 후한(後漢)의 양성(襄城)사람. 자(字)는 원례(元禮). 벼슬은 환제(桓帝) 때 사례 교위(司隷校慰). 그 때에 조정은 날로 어지러워져서 기강(紀綱)이 퇴폐하였다. 응(膺)이 홀로 풍재(風裁)를 잡아 성명(聲名)이 자연히 높아져서 선비로서 그의 용접(容接)을 받는 자를 이름하여 등용문(登龍門)이라 하였다. 뒤에 당화(黨禍)에 걸려 영제(靈帝) 때 환관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丁巳/司憲府復請之直可植等罪。 疏曰:

月初四日, 請之直等罪, 未蒙兪允, 臣等之缺望至深。 爲諫臣而諫君之過, 職也; 諫諍失中而不加罪, 君之至德也。 然其曰服御巧麗, 不循制度, 鷹犬之好、聲色之娛, 是非特失中也。 誣言上過, 書諸史冊, 後世之臣, 其誰曰有君有臣! 此臣等所痛心而不得不辨也。 伏望殿下, 斷以大義, 鞫問之直可植等造言之罪, 以快群下之望。 殿下若以臣等之言爲阿諛諂佞, 則罪及臣等, 亦且無憾。

命知申事朴錫命, 傳旨李至等曰: "卿等之請然矣。 然諫臣言予過失, 不可加罪。" 又啓云: "於常人猶且不可, 況言君上之過失若是之誣乎? 不可不罪。" 不允。 再三申請, 又不允。 錫命曰: "以子之言, 啓云, 旣不加罪, 則請召之直等, 請暇若何?" 錫命曰: "諾。" 遂入啓。 上曰: "然。" 乃召之直等, 傳旨曰: "憲府請罪再三, 以不可罪諫臣, 故不允矣。 若其諫辭之當否, 予固不識, 然憲司之請, 必有所據, 爾等毋得出仕。" 召李漬曰: "汝前日, 以予不從諫而辭, 今等更請, 予乃從之矣。" 還其辭狀, 喜。 初, 上見之直等疏, 驚曰: "後世其以予爲小有人君之道乎?" 色若不豫然。 等聞之, 乃請之直等罪云。 上問於代言等曰: "省郞受官敎者, 先上官出諸郞告身, 然後諸郞仕乎?" 錫命曰: "然。" 上曰: "予復觀省郞諫疏, 予與僞朝無異也。 以予爲流於鷹犬聲色, 雖僞朝之主, 此外復何爲哉! 予已如此, 何能有爲哉! 雖欲爲之, 豈能爲賢主乎?" 錫命柳沂李膺等起而謝曰: "殿下何以此介懷乎?" 上曰: "卿輩皆儒, 無所不知。 自以來, 人君雖無荒淫之行, 諫臣乃指爲荒淫而諫之乎?" 錫命等不能對。 上曰: "唯汲黯武帝曰: ‘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 眞西山詳言之矣, 卿等聽之。 政權歸於臺諫, 則明賢大相, 皆劾而誅之。 若李斯李林甫則誅之可也, 如蕭望之李膺之輩, 誅之可乎? 今國人必以臺員爲佞, 而以予爲不納諫, 故奪諫官之職。 予今已得拒諫之名, 自今誓不納諫矣。" 柳沂曰: "以一臣上疏之誤, 殿下何有如此之言乎?" 上曰: "臺省以宰相領之, 不可乎?" 曰: "我朝不以宰相領之, 其來久矣。" 錫命曰: "憲司則左政丞領之。" 上曰: "政丞與於論事乎?" 錫命曰: "不與焉。" 上曰: "何故?" 曰: "其來久矣。" 上曰: "何可如此乎? 宰相參與論事, 則必不如此。" 錫命曰: "宰相無諫諍之任。" 李膺曰: "職小位卑者狂妄, 可當諫諍之任故也。" 上曰: "何以言狂妄乎? 人君上則爲, 下則爲狂暴。 今予上不及, 下不在狂暴, 中而無用, 故諫官之言如此也。 諫官小有敬畏之心, 則何敢狂妄如此乎? 雖諫官, 苟有罪, 則殺之可也。 向者司諫陳義貴、獻納金汝知, 罪宜嚴刑, 予乃加以輕典。" 錫命等無言而退。 上曰: "單衣之布, 不過十升, 草笠或以異色爲裏, 易破而無益, 今後宜用純色。" 錫命對曰: "十升則大麤。" 上曰: "不然。 予在潛邸, 服之已久, 知其便也。 昔者靴鞋等物, 多入宮中, 皆爲宦官侍女私用, 今者所著外, 餘皆禁之, 且待破毁, 而後改之。"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30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 / 의생활-관복(官服)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