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태종실록 2권, 태종 1년 8월 2일 무오 1번째기사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남쪽 지방의 조세는 육지 운송 대신에 모두 배로 운반하도록 하다

남계(南界)의 부세(賦稅)를 모두 수운(水運)하라고 명령하였다. 검교 한성 윤(檢校漢城尹) 박돈지(朴惇之)가 상소하기를,

"공부(貢賦)의 수운(輸運)은 삼한(三韓) 이래로 모두 해도(海道)로 하여, 남방 백성들이 배[舟揖]에 익어서 폐단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왜구의 난(亂)이 있을 때부터 육지로 운반하는 방책을 정하였는데, 사람과 짐승이 지고 싣는 데에 지치어 길에서 죽는 것이 매우 많으니, 그 폐단이 심히 컸습니다. 개국한 이후에 왜구가 조금 잠잠하여 다시 해로로 수운하게 하였는데, 공부가 들어오는 것이 배나 되었습니다. 기묘년 가을에 여러 번 풍파를 만나 인명이 많이 상하였으므로 불편하다고 의논하는 사람이 있어, 남계의 공부를 다시 육로로 운반하게 하였는데, 두어 해가 못되어 그 폐단이 수로로 수운하는 것보다 많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다시 수로로 수운[漕轉]하는 의논을 거행하게 하소서."

하였다. 의정부에 내리니, 삼부(三府)가 함께 의논하여 상소하기를,

"수로로 수운[漕運]하는 것은 고금을 통하여 이익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진언(陳言)한 바가 실로 마땅합니다. 하물며, 금년의 공부(貢賦)는 쌀로 수납하니, 육지로 운반하는 것이 더욱 미편합니다. 경상도 상도(上道)의 주현(州縣)의 전부터 육로로 운반하던 것 외에는 모두 바다로 수운하게 하고, 그 배는 각각 그 관(官)에서 만들게 하며, 사공(沙工)과 격인(格人)은 해로에 익숙한 사람을 소모(召募)하여, 사선(私船)의 예(例)에 의하여 세가(稅價)를 주어 실어 보내게 하고, 각도의 병선(兵船)으로 호송하게 하소서."

하여, 유윤(兪允)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11면
  • 【분류】
    교통(交通) / 역사-전사(前史) / 외교-왜(倭) / 재정(財政)

○戊午/命南界之賦, 皆令水運。 檢校漢城朴惇之上疏曰:

貢賦之輸, 自三韓以來, 皆由海道, 南民便習(舟揖)〔舟楫〕 , 不知其弊。 自倭寇之亂, 乃定陸轉之策, 人畜疲於負載, 道死頗多, 其弊甚鉅。 開國以後, 倭寇稍息, 復令海運, 貢賦之入倍焉。 己卯秋, 有議屢値風波, 人多殞命爲不便, 南界之賦, 復爲陸轉, 不數年間, 其弊有甚於水運。 伏望復擧漕轉之議。

下議政府。 三府同議上疏曰:

漕運, 古今通謂之利也, 陳言實當。 況今年貢賦, 以米收納, 陸轉尤爲未便。 慶尙道上道州縣, 在前陸轉外, 皆令海運。 其(舟揖)〔舟楫〕 , 各令其官造作, 沙工格人, 召募海路慣習之人, 以私船例給稅價載送, 以各道兵船護送。

兪允。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11면
  • 【분류】
    교통(交通) / 역사-전사(前史) / 외교-왜(倭)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