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과 고명에 관한 명 혜제의 칙지 및 예부의 자문
판삼사사(判三司事) 우인렬(禹仁烈)·첨서의흥삼군부사(簽書義興三軍府事) 이문화(李文和) 등이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싸 가지고 명나라 서울에서 돌아왔다. 자문은 이러하였다.
"건문(建文) 3년 정월 초8일에 흠봉(欽奉)한 칙지(勅旨)에, ‘짐(朕)은 생각건대, 천지의 상도(常道)는 정성에 불과하고, 인군(人君)의 다스림은 신의(信義)에 불과하다. 혹시 아랫사람이 된 자가 신의에 부족한 바가 있더라도, 인군이 또한 어찌 불신으로 대접할 수 있겠는가? 근자에 너희 예부(禮部)에서 아뢰기를, 「조선의 권지 국사(權知國事) 이 【이경(李曔).】 이 그의 아우인 이 【이방원(李芳遠).】 으로 그 뒤를 잇고자 하고, 또 고명(誥命)·인신(印信)과 책력(冊曆)을 청한다.」고 하였다. 짐이 그 사신을 보니, 온 뜻이 간절하기에, 곧 그 청(請)을 들어 주어, 사신을 보내어 인신(印信)과 고명(誥命)을 싸 가지고 가서 그 이름[名]을 바르게 하고, 또 그 아우로 후사(後嗣)를 삼을 것을 허락하였다. 사자(使者)가 간 지 열흘이 못되어서 홀연히 요동(遼東)에서 아뢰기를, 「 【이경.】 이 또 보고하기를, 홀연히 풍질(風疾)을 얻어 보고 듣는 것이 어둡다고 하였다.」 하여, 이미 건문 2년 11월 11일에 그 아우로 하여금 대신 국사(國事)를 맡게 하였다. 짐이 심히 이상하게 여긴다. 슬프다! 이 【이경.】 이 병으로 아우에게 사양한 것이 과연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인가? 문득 그 아비 이 【이단(李旦).】 이 작은 아들을 총애하여 왕위를 바꾼 것인가? 그 아우가 가만히 불의(不義)한 일을 한 것이 아닌가? 혹시 조정(朝廷)을 시험하여 얕보고 희롱하는 뜻인가? 혹시 나라 안에 내란이 있어 그러한 것인가? 공자(孔子)는 나를 속이리라고 거슬러 생각하지도 아니하고, 나를 믿지 않으리라고 억측도 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선각(先覺)하는 것으로써 현명한 것을 삼았다. 이미 뒤쫓아 사자(使者)를 보내고 다시 생각하니, 기다리고 바라는 것이 이미 오래였을 것이다. 짐이 비록 정성과 신의로 사람을 대접하나, 인신과 고명은 위(位)에 설 자가 정하여지지 않았으니, 경솔히 부여(付與)할 수 없다. 전자에 보낸 사신이 이미 그 나라에 이르렀을 것이니, 돌아오는 날을 기다려서 다시 구처(區處)하겠다. 너 예부는 사자를 보내어 돌아가서 짐의 뜻을 일러서 칙지와 같이 봉행(奉行)하라.’ 하였는데, 이것을 준행(遵行)한 외에 지금 흠봉(欽奉)한 지의(旨意)를 갖추 써서 이자(移咨)합니다. 그리 아십시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98면
- 【분류】외교-명(明) / 변란-정변(政變)
○乙丑/判三司事禹仁烈、簽書義興三軍府事李文和等, 齎禮部咨文, 回自京師。 咨曰:
建文三年正月初八日, 欽奉勑旨: "朕惟天地之常道, 不過乎誠; 人君之爲治, 不過乎信。 苟爲下者, 於信有所不足, 人君亦豈可以不信待之哉! 近爾禮部奏: ‘朝鮮權知國事李曔, 欲以其弟李 【芳遠。】 , 繼其後及, 請誥印曆日。’ 朕見其使, 來意懇切, 卽可其請, 遣使齎印誥, 往正其名, 且許以其弟爲嗣。 使者去不旬日, 忽遼東奏至: ‘李曔又報忽得風疾, 眩於視聽, 已於建文二年十一月十一日, 令其弟代知國事。’ 朕甚異焉。 噫! 李曔之以疾讓弟, 果出於誠心與? 抑其父李旦, 寵其少子而易之位與? 無乃其弟陰爲不義與? 或者嘗試朝廷, 而有侮玩之意與? 豈其國中有內難而然與? 孔子不逆詐, 不億不信。 然而以先覺者爲賢, 已令追使者還, 復念其佇望已久。 朕雖以誠信待人, 然印誥則立者未定, 未可輕付。 前者所遣使臣, 想已至其國, 待其回日, 更爲區處。 爾禮部可遣其使, 回諭以朕意, 如勑奉行。" 欽此, 除欽遵外, 今將欽奉旨意, 備書前去, 合行移咨知會。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98면
- 【분류】외교-명(明)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