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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1월 14일 갑술 2번째기사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문하부 건의로 인재 등용·변정 도감 폐지·둔전 폐지 방안 등을 채택

문하부(門下府) 낭사(郞舍)가 상소(上疏)하였다.

"전월(前月) 26일에 특별히 교서(敎書)를 내리시어, ‘중외(中外)의 신료(臣僚)는 각각 소견(所見)을 개진하여 실봉(實封)해서 조목조목 올리라.’ 하셨으므로, 신 등이 삼가 어리석은 충곡(衷曲)을 가지고 천총(天聰)을 우러러 더럽힙니다.

1. 무릇 종친과 대소 신료(大小臣僚)는 명소(命召)가 없으면 임의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 부름을 받고 들어오는 자와 중관(中官)·내수(內竪), 무릇 궐내(闕內)에 있는 자는 모두 예복(禮服)을 입을 것.

1. 사대부들이 모이어 싫도록 마시고, 드디어 쓸데없는 말을 하여서, 시비를 변란(變亂)하는 자가 혹 있사오니, 이제부터는 헌사(憲司)로 하여금 엄중히 규리(糾理)를 행하게 하여 붕비(朋比)의 폐단을 막을 것.

1. 지난번에 전하께서 특별히 양부(兩府) 백사(百司)로 하여금 각각 아는 사람을 천거토록 하셨으니, 이는 인재(人才)를 빠뜨리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지금 그 천거된 사람들이 모두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령(守令)으로서 정치가 최상인 자[政最者]는 만기가 되면[考滿] 탁용(擢用)하도록 이미 입법하여 놓았사온데, 지금 간혹 까닭 없이 파면을 당합니다. 비옵건대, 상서사(尙瑞司)로 하여금 각사(各司)에서 천거한 사람과 정최(政最)로써 고만(考滿)된 자는 빠짐 없이 서용(敍用)하게 하고, 또 각 고을[郡]의 교수관(敎授官)으로서 교훈(敎訓)에 부지런하여 인재가 성취됨이 있는 자는 수령(守令)의 예(例)에 의하여 조관(朝官)을 제수하여, 권학(勸學)의 뜻을 보이소서.

1. 국가에서 다시 변정 도감(辨定都監)003) 을 설치한 것은 기한을 정해 놓고 처결(處決)해서 쟁단(爭端)을 없애려고 한 것인데, 지금 세월을 끌어서 기한이 지났어도 파하지 않고, 각사(各司)에 나누어, 각사에서 직사(職事)를 폐하고 오로지 청단(聽斷)만 하오니, 끝이 없습니다. 청컨대 도감(都監)을 파하고, 끝내지 못한 일은 모두 도관(都官)004) 에 보내어서, 여러 관원으로 하여금 각각 그 직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1. 주관(周官)에 사구(司寇)는 나라의 금법(禁法)을 맡고 간특(姦慝)한 것을 힐문(詰問)하는 것이온데, 우리 조정의 형조(刑曹)가 곧 그 직책입니다. 지금에는 이미 형조가 있고, 또 순군(巡軍)005) 이 있으니, 이것은 한 직책에 두 관사(官司)가 있는 것입니다. 순군의 소속인 나장(螺匠)006)도부외(都府外)007) 의 그 수효가 거의 1천 5백 명이나 되는데, 모두 경기(京畿) 안의 백성으로 충당하였으므로, 수령들이 차역(差役)을 시킬 수 없어, 그 나머지 민호(民戶)들이 노고(勞苦)를 견디지 못합니다. 지금 형조가 형벌을 맡고 있고, 부병(府兵)이 족히 순작(巡綽)을 할 수 있사오니, 청컨대, 순군을 혁파하고 그 백호(百戶)·영사(令史)·나장(螺匠)을 각사(各司)로 나누어 보내고, 도부외(都府外) 1천여 명은 각각 그 고을에 돌려보내어 호역(戶役)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1. 경기(京畿)는 왕화(王化)가 먼저 미치는 곳이오니, 마땅히 존휼(存恤)을 가하여 민생(民生)을 편안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마초(馬草)·시탄(柴炭) 등 여러가지 잡공(雜貢)이 외방(外方)보다 배나 되오니, 원컨대, 이제부터 마초·시탄을 수량을 감하여 준절(撙節)히 쓰고, 그 나머지 잡공으로서 없앨 만한 것과 외방에 옮길 만한 것을 의정부에 내리어 의논하여 상정(詳定)하게 하소서.

1. 주현(州縣)의 기인(其人)008) 은 실로 전조(前朝)의 폐법(弊法)이온데, 국가에서 그대로 인습하여 고치지 못한 것입니다. 각전(各殿)의 사옹방(司饔房)에 속하여 기명(器皿)을 맡은 자가 혹 잃어버리거나 혹 깨뜨리거나 하면, 독촉하여 충납(充納)하게 하니, 빈한(貧寒)한 외리(外吏)가 많은 돈과 물건을 꾸게 되어 파산(破産)을 하오니, 그 폐단이 작지 않습니다. 궁사(宮司)·창고의 종[奴] 같은 자들은 궐내의 차비(差備)로 채워져 있는 자들이 모두 그 족류(族類)이니, 반드시 서로 의뢰하여, 잃어버리고 깨뜨리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창고·궁사·봉서국(奉書局)의 종[奴]으로 대신하여 오래 된 폐단을 고치고, 기인(其人)은 모두 선공(繕工)에 소속시켜 그 역사에 이바지하게 하고, 창고·궁사·봉서국 제조(提調) 관원(官員)의 추종(騶從)은 한두 사람에 지나지 못하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도록 하소서. 전조의 부병(府兵) 제도는 오로지 시위(侍衛)와 환을 방비[備患]하기 위한 것이온데, 쇠(衰)한 말년에 미치어 그 법이 폐하고 해이하여져서, 중랑장(中郞將)으로부터 대부(隊副)에 이르기까지 직사(職事)에 이바지하지 않고 한갓 녹(祿)만을 소비하였사온데, 우리 국가에서 그 폐단을 완전히 고치었으니, 거의 근사하나, 아직도 예전 것을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상대장군(上大將軍)이 그 오원 십장(五員十將)009) 을 거느려 사사로이 보내어 방목(放牧)시키고, 또 대부(隊副)로써 추종(騶從)을 삼아 부리기를 노예 같이 하니, 군사를 설치하여 환(患)에 방비하는 뜻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모두 다 금단(禁斷)하고 숙위(宿衛)의 임무에만 전념하게 하소서. 또 십사(十司)가 군마(群馬)를 방목하여 화곡(禾穀)을 밟아 결딴내어, 폐해가 작지 않사오니, 청컨대 아울러 파(罷)하여 백성의 생업을 편하게 하소서.

1. 무비(武備)를 미리 하지 않을 수 없사오나, 군기감(軍器監)에서 가까운 고을에다 둔전(屯田)을 두어 여러 공장[衆工]들에게 공억(供億)할 비용으로 삼기 위하여 백성의 밭을 빼앗고, 백성의 소를 빼앗아, 백성들을 모아 경작하고 거두어 들이니, 가까운 고을의 폐해가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이제부터는 밭을 주어 수조(收租)하여서 그 비용에 충당하게 하고, 둔전(屯田)을 파하여 모두 본주(本主)에게 돌려주소서.

1. 전조의 왕씨(王氏)가 삼한(三韓)을 통일하여 인덕(仁德)을 쌓아 5백 년을 내려왔으니, 백성들이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신 등이 엎드려 보건대, 상왕(上王)께서 즉위(卽位)하신 교지(敎旨)에, ‘기자(箕子)왕 태조(王太祖)가 모두 동방(東方) 백성들에게 공이 있으니, 토전(土田)을 붙여 주어 때로 제향(祭享)을 드리게 하라.’고 하셨으니, 실로 성조(聖朝)의 충후(忠厚)한 뜻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혹은 부모(父母)의 시체를 선왕(先王)·선후(先后)의 능영(陵塋)에 장사하니, 심히 도리가 아닙니다. 원컨대 이제부터는 왕 태조(王太祖)현릉(顯陵)에 속호(屬戶)를 정하여 수호하게 하되, 시지(柴地)를 주고 부역(賦役)을 면제하여 초목(樵牧)을 금하게 하고, 그 나머지 능실(陵室)도 무릇 인신(人臣)으로서 같은 곳에 장사한 자는 모두 다 파내도록 하여, 고금 군신의 의리를 밝히소서.

1. 불씨(佛氏)의 교(敎)는 청정 과욕(淸淨寡欲)으로 종지(宗旨)를 삼아서, 부모를 하직하고 애정을 끊고 방외(方外)에 노는 것이온데, 지금의 승도(僧徒)들은 그 스승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이욕에 끌리어, 사사(寺社)를 얻기에 힘써서 부산스럽게 다투고 바라오니, 원컨대, 오교(五敎) 양종(兩宗)을 혁파하고, 그 사사(寺社) 토전(土田)과 노비를 모두 공청(公廳)에 소속시켜, 승니(僧尼)의 이익을 다투는 마음을 막으소서."

소(疏)가 올라오매, 인재(人材)를 쓰고, 변정 도감(辨定都監)을 파하고, 경기(京畿)의 잡공(雜貢)을 옮기고, 기인(其人)을 대신하고, 군기감(軍器監)의 둔전(屯田)을 파하는 등의 일을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91면
  • 【분류】
    농업-전제(田制) / 사상-불교(佛敎) / 의생활(衣生活) /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 / 군사(軍事) / 신분(身分) / 재정(財政)

  • [註 003]
    변정 도감(辨定都監) : 노비 변정 도감(奴婢辨定都監)을 말함이니, 노비의 호적(戶籍)에 따라 시비(是非)를 판정하는 관청.
  • [註 004]
    도관(都官) : 형조 도관(刑曹都官)을 말함이니, 노비의 부적(付籍)과 소송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으며, 종3품관인 지사(知事)가 주관하였다. 태조 원년(1392년)에 설치하였음.
  • [註 005]
    순군(巡軍) : 순군 만호부(巡軍萬戶府)를 말함이니, 포도(捕盜)·금란(禁亂) 등의 일을 맡아 보는 관청. 고려 충렬왕 때 설치하여 공민왕 18년에 사평 순위부(司平巡衛府)로 고치었다가, 우왕(禑王) 때에 다시 본이름으로 하였다. 조선(朝鮮) 태조 원년에 설치하여 태종 2년에 순위부(巡衛府)로, 동 3년에 의용 순금사(義勇巡禁司)로, 동 14년에 의금부(義禁府)로 고치었다.
  • [註 006]
    나장(螺匠) : 사령(使令). 조선조(朝鮮朝) 때의 칠반 천역(七般賤役)의 하나로, 죄인을 잡아들이거나, 이를 문초할 때 매를 때리는 일을 맡아 보았으며, 귀양가는 죄인을 압송하는 일도 하였다.
  • [註 007]
    도부외(都府外) : 순군부(巡軍府)에 속한 군대(軍隊)의 하나로, 경기의 민호(民戶)로 충당하였음. 금란(禁亂)·포도(捕盜)·순작(巡綽)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 [註 008]
    기인(其人) : 고려 때의 인질(人質) 제도. 고려 초기에 향리(鄕吏)의 자제(子弟)를 뽑아 서울에 데려와서 볼모로 삼는 한편, 그 출신 지방 사정에 관한 고문에 당하게 하던 것으로, 신라 때의 상수리(上守吏)에서 유래한 것이다. 충렬왕·충선왕 때에 이르러서는 궁실(宮室)이나 창고(倉庫)를 짓는 데 동원하는 등 노예 비슷한 지위로 격하되었다. 조선에 들어서도 궁중(宮中)에서 노예와 같이 여러가지 고역(苦役)에 역사(役使)되다가 태종 9년 이후에는 주로 소목(燒木)을 바치는 역(役)을 지게 되었다.
  • [註 009]
    오원 십장(五員十將) : 십위(十衛) 각 영(領)의 산원(散員) 5명을 오원(五員), 낭장(郞將) 5명과 별장(別將) 5명을 십장(十將)이라 함.

○門下府郞舍上疏。 疏曰:

前月二十六日, 特下敎書, 中外臣僚, 各陳所見, 實封條上。 臣等謹以愚衷, 仰瀆天聰。 一, 凡宗親大小臣僚, 非有命召, 不得擅入。 其被召而進者及中官內竪凡在闕內者, 皆着禮服。 一, 士大夫聚會崇飮, 遂構閑話, 變亂是非者, 或有之。 自今令憲司, 痛行糾理, 以杜朋比之弊。 一, 頃者, 殿下特令兩府百司, 各擧所知。 是欲使人才不遺也, 今其所擧, 皆不見用, 守令政最者, 考滿擢用, 已有著令, 今或無故見罷。 乞令尙瑞司, 將各司所擧及政最考滿者, 敍用無遺。 且各郡敎授官勤於敎訓, 人才有成者, 依守令例, 除拜朝官, 以示勸學之意。 一, 國家更設辨定都監, 定限決折, 欲絶爭端。 今淹延歲月, 過限未罷, 分于各司, 各司廢職, 專爲聽斷, 無有紀極。 請罷都監, 將其未畢事, 悉送都官, 使庶官各供其職。 一, 《周官》司寇, 掌邦禁詰姦慝, 我朝刑曹, 卽其職也。 今也旣有刑曹, 又有巡軍, 是一職而二官也。 巡軍所屬螺匠都府外, 其數幾於千五百, 皆以圻甸之民充之, 守令不能差役, 其餘民戶, 不堪勞苦。 今刑曹旣以掌刑, 而府兵足以巡綽, 請革巡軍, 將其百戶令史螺匠, 分送各司, 其都府外千餘人, 各還其州, 以供戶役。 一, 京畿, 王化所先, 宜加存恤, 以安民生。 今馬草柴炭, 多般雜貢, 倍於外方。 願自今馬草柴炭, 量減節用, 其餘雜貢可除者及可移外方者, 下議政府擬議詳定。 一, 州縣其人, 實是前朝之弊法, 國家因循未革。 其屬各殿司饔房, 掌器皿者, 或失或破, 督令充納, 貧寒外吏, 多貸錢物, 因以破産, 其弊不小。 如宮司倉庫之奴, 則充闕內差備者, 皆其族類, 必能相資, 無失破之患矣。 願自今, 以倉庫宮司奉書局奴代之, 以革積年之弊, 其人皆屬繕工, 以供其役, 其倉庫宮司奉書局提調官員騶從, 不過一二, 餘皆除之。 一, 前朝府兵, 專爲侍衛備患, 及其衰季, 其法廢弛, 自中郞將至于隊副, 不供職事, 徒費其祿。 我國家痛革其弊, 庶幾近之, 而猶未復古。 上、大將軍領其五員十將, 私遣放牧, 且以隊副爲騶從, 使之如奴隷, 有乖設兵備患之意。 自今悉皆禁斷, 俾專宿衛之任。 且十司放牧群馬, 踏損禾穀, 弊固不小, 請幷罷之, 以便民業。 一, 武備不可不預, 然軍器監置屯田於近州, 以爲供億衆工之費, 奪民之田, 取民之牛, 聚民而耕穫之, 近州之弊, 莫甚於此。 願自今給田收租, 以充其用, 罷屯田悉還本主。 一, 前朝王氏統一三韓, 積德累仁, 垂五百年, 民受其賜。 臣等伏見上王卽位敎旨, 以箕子王太祖俱有功於東民, 屬之土田, 以時祭享, 實聖朝忠厚之意也。 今之人, 或以父母之屍, 葬于先王先后陵塋, 甚爲非道。 願自今王太祖 顯陵, 定屬戶以守之, 給柴地復賦役, 使之禁樵牧, 其餘陵室, 凡人臣同穴而葬者, 悉皆拔去, 以明古今君臣之義。 一, 佛氏之敎, 以淸淨寡欲爲宗, 辭親割愛, 遊方之外。 今之僧徒, 背其師敎, 牽於利欲, 務得寺社, 紛紜爭望。 願革五敎兩宗, 各其寺社土田奴婢, 悉屬於公, 以杜僧尼爭利之心。

疏上, 用人材、罷辨定、移京畿雜貢、代其人、罷軍器監屯田等事, 允之。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91면
  • 【분류】
    농업-전제(田制) / 사상-불교(佛敎) / 의생활(衣生活) /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 / 군사(軍事) / 신분(身分)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