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부 건의로 인재 등용·변정 도감 폐지·둔전 폐지 방안 등을 채택
문하부(門下府) 낭사(郞舍)가 상소(上疏)하였다.
"전월(前月) 26일에 특별히 교서(敎書)를 내리시어, ‘중외(中外)의 신료(臣僚)는 각각 소견(所見)을 개진하여 실봉(實封)해서 조목조목 올리라.’ 하셨으므로, 신 등이 삼가 어리석은 충곡(衷曲)을 가지고 천총(天聰)을 우러러 더럽힙니다.
1. 무릇 종친과 대소 신료(大小臣僚)는 명소(命召)가 없으면 임의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 부름을 받고 들어오는 자와 중관(中官)·내수(內竪), 무릇 궐내(闕內)에 있는 자는 모두 예복(禮服)을 입을 것.
1. 사대부들이 모이어 싫도록 마시고, 드디어 쓸데없는 말을 하여서, 시비를 변란(變亂)하는 자가 혹 있사오니, 이제부터는 헌사(憲司)로 하여금 엄중히 규리(糾理)를 행하게 하여 붕비(朋比)의 폐단을 막을 것.
1. 지난번에 전하께서 특별히 양부(兩府) 백사(百司)로 하여금 각각 아는 사람을 천거토록 하셨으니, 이는 인재(人才)를 빠뜨리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지금 그 천거된 사람들이 모두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령(守令)으로서 정치가 최상인 자[政最者]는 만기가 되면[考滿] 탁용(擢用)하도록 이미 입법하여 놓았사온데, 지금 간혹 까닭 없이 파면을 당합니다. 비옵건대, 상서사(尙瑞司)로 하여금 각사(各司)에서 천거한 사람과 정최(政最)로써 고만(考滿)된 자는 빠짐 없이 서용(敍用)하게 하고, 또 각 고을[郡]의 교수관(敎授官)으로서 교훈(敎訓)에 부지런하여 인재가 성취됨이 있는 자는 수령(守令)의 예(例)에 의하여 조관(朝官)을 제수하여, 권학(勸學)의 뜻을 보이소서.
1. 국가에서 다시 변정 도감(辨定都監)003) 을 설치한 것은 기한을 정해 놓고 처결(處決)해서 쟁단(爭端)을 없애려고 한 것인데, 지금 세월을 끌어서 기한이 지났어도 파하지 않고, 각사(各司)에 나누어, 각사에서 직사(職事)를 폐하고 오로지 청단(聽斷)만 하오니, 끝이 없습니다. 청컨대 도감(都監)을 파하고, 끝내지 못한 일은 모두 도관(都官)004) 에 보내어서, 여러 관원으로 하여금 각각 그 직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1. 주관(周官)에 사구(司寇)는 나라의 금법(禁法)을 맡고 간특(姦慝)한 것을 힐문(詰問)하는 것이온데, 우리 조정의 형조(刑曹)가 곧 그 직책입니다. 지금에는 이미 형조가 있고, 또 순군(巡軍)005) 이 있으니, 이것은 한 직책에 두 관사(官司)가 있는 것입니다. 순군의 소속인 나장(螺匠)006) 과 도부외(都府外)007) 의 그 수효가 거의 1천 5백 명이나 되는데, 모두 경기(京畿) 안의 백성으로 충당하였으므로, 수령들이 차역(差役)을 시킬 수 없어, 그 나머지 민호(民戶)들이 노고(勞苦)를 견디지 못합니다. 지금 형조가 형벌을 맡고 있고, 부병(府兵)이 족히 순작(巡綽)을 할 수 있사오니, 청컨대, 순군을 혁파하고 그 백호(百戶)·영사(令史)·나장(螺匠)을 각사(各司)로 나누어 보내고, 도부외(都府外) 1천여 명은 각각 그 고을에 돌려보내어 호역(戶役)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1. 경기(京畿)는 왕화(王化)가 먼저 미치는 곳이오니, 마땅히 존휼(存恤)을 가하여 민생(民生)을 편안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마초(馬草)·시탄(柴炭) 등 여러가지 잡공(雜貢)이 외방(外方)보다 배나 되오니, 원컨대, 이제부터 마초·시탄을 수량을 감하여 준절(撙節)히 쓰고, 그 나머지 잡공으로서 없앨 만한 것과 외방에 옮길 만한 것을 의정부에 내리어 의논하여 상정(詳定)하게 하소서.
1. 주현(州縣)의 기인(其人)008) 은 실로 전조(前朝)의 폐법(弊法)이온데, 국가에서 그대로 인습하여 고치지 못한 것입니다. 각전(各殿)의 사옹방(司饔房)에 속하여 기명(器皿)을 맡은 자가 혹 잃어버리거나 혹 깨뜨리거나 하면, 독촉하여 충납(充納)하게 하니, 빈한(貧寒)한 외리(外吏)가 많은 돈과 물건을 꾸게 되어 파산(破産)을 하오니, 그 폐단이 작지 않습니다. 궁사(宮司)·창고의 종[奴] 같은 자들은 궐내의 차비(差備)로 채워져 있는 자들이 모두 그 족류(族類)이니, 반드시 서로 의뢰하여, 잃어버리고 깨뜨리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창고·궁사·봉서국(奉書局)의 종[奴]으로 대신하여 오래 된 폐단을 고치고, 기인(其人)은 모두 선공(繕工)에 소속시켜 그 역사에 이바지하게 하고, 창고·궁사·봉서국 제조(提調) 관원(官員)의 추종(騶從)은 한두 사람에 지나지 못하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도록 하소서. 1. 전조의 부병(府兵) 제도는 오로지 시위(侍衛)와 환을 방비[備患]하기 위한 것이온데, 쇠(衰)한 말년에 미치어 그 법이 폐하고 해이하여져서, 중랑장(中郞將)으로부터 대부(隊副)에 이르기까지 직사(職事)에 이바지하지 않고 한갓 녹(祿)만을 소비하였사온데, 우리 국가에서 그 폐단을 완전히 고치었으니, 거의 근사하나, 아직도 예전 것을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상대장군(上大將軍)이 그 오원 십장(五員十將)009) 을 거느려 사사로이 보내어 방목(放牧)시키고, 또 대부(隊副)로써 추종(騶從)을 삼아 부리기를 노예 같이 하니, 군사를 설치하여 환(患)에 방비하는 뜻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모두 다 금단(禁斷)하고 숙위(宿衛)의 임무에만 전념하게 하소서. 또 십사(十司)가 군마(群馬)를 방목하여 화곡(禾穀)을 밟아 결딴내어, 폐해가 작지 않사오니, 청컨대 아울러 파(罷)하여 백성의 생업을 편하게 하소서.
1. 무비(武備)를 미리 하지 않을 수 없사오나, 군기감(軍器監)에서 가까운 고을에다 둔전(屯田)을 두어 여러 공장[衆工]들에게 공억(供億)할 비용으로 삼기 위하여 백성의 밭을 빼앗고, 백성의 소를 빼앗아, 백성들을 모아 경작하고 거두어 들이니, 가까운 고을의 폐해가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이제부터는 밭을 주어 수조(收租)하여서 그 비용에 충당하게 하고, 둔전(屯田)을 파하여 모두 본주(本主)에게 돌려주소서.
1. 전조의 왕씨(王氏)가 삼한(三韓)을 통일하여 인덕(仁德)을 쌓아 5백 년을 내려왔으니, 백성들이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신 등이 엎드려 보건대, 상왕(上王)께서 즉위(卽位)하신 교지(敎旨)에, ‘기자(箕子)와 왕 태조(王太祖)가 모두 동방(東方) 백성들에게 공이 있으니, 토전(土田)을 붙여 주어 때로 제향(祭享)을 드리게 하라.’고 하셨으니, 실로 성조(聖朝)의 충후(忠厚)한 뜻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혹은 부모(父母)의 시체를 선왕(先王)·선후(先后)의 능영(陵塋)에 장사하니, 심히 도리가 아닙니다. 원컨대 이제부터는 왕 태조(王太祖)의 현릉(顯陵)에 속호(屬戶)를 정하여 수호하게 하되, 시지(柴地)를 주고 부역(賦役)을 면제하여 초목(樵牧)을 금하게 하고, 그 나머지 능실(陵室)도 무릇 인신(人臣)으로서 같은 곳에 장사한 자는 모두 다 파내도록 하여, 고금 군신의 의리를 밝히소서.
1. 불씨(佛氏)의 교(敎)는 청정 과욕(淸淨寡欲)으로 종지(宗旨)를 삼아서, 부모를 하직하고 애정을 끊고 방외(方外)에 노는 것이온데, 지금의 승도(僧徒)들은 그 스승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이욕에 끌리어, 사사(寺社)를 얻기에 힘써서 부산스럽게 다투고 바라오니, 원컨대, 오교(五敎) 양종(兩宗)을 혁파하고, 그 사사(寺社) 토전(土田)과 노비를 모두 공청(公廳)에 소속시켜, 승니(僧尼)의 이익을 다투는 마음을 막으소서."
소(疏)가 올라오매, 인재(人材)를 쓰고, 변정 도감(辨定都監)을 파하고, 경기(京畿)의 잡공(雜貢)을 옮기고, 기인(其人)을 대신하고, 군기감(軍器監)의 둔전(屯田)을 파하는 등의 일을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91면
- 【분류】농업-전제(田制) / 사상-불교(佛敎) / 의생활(衣生活) /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 / 군사(軍事) / 신분(身分) / 재정(財政)
- [註 003]변정 도감(辨定都監) : 노비 변정 도감(奴婢辨定都監)을 말함이니, 노비의 호적(戶籍)에 따라 시비(是非)를 판정하는 관청.
- [註 004]
도관(都官) : 형조 도관(刑曹都官)을 말함이니, 노비의 부적(付籍)과 소송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으며, 종3품관인 지사(知事)가 주관하였다. 태조 원년(1392년)에 설치하였음.- [註 005]
순군(巡軍) : 순군 만호부(巡軍萬戶府)를 말함이니, 포도(捕盜)·금란(禁亂) 등의 일을 맡아 보는 관청. 고려 충렬왕 때 설치하여 공민왕 18년에 사평 순위부(司平巡衛府)로 고치었다가, 우왕(禑王) 때에 다시 본이름으로 하였다. 조선(朝鮮) 태조 원년에 설치하여 태종 2년에 순위부(巡衛府)로, 동 3년에 의용 순금사(義勇巡禁司)로, 동 14년에 의금부(義禁府)로 고치었다.- [註 006]
나장(螺匠) : 사령(使令). 조선조(朝鮮朝) 때의 칠반 천역(七般賤役)의 하나로, 죄인을 잡아들이거나, 이를 문초할 때 매를 때리는 일을 맡아 보았으며, 귀양가는 죄인을 압송하는 일도 하였다.- [註 007]
도부외(都府外) : 순군부(巡軍府)에 속한 군대(軍隊)의 하나로, 경기의 민호(民戶)로 충당하였음. 금란(禁亂)·포도(捕盜)·순작(巡綽)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註 008]
기인(其人) : 고려 때의 인질(人質) 제도. 고려 초기에 향리(鄕吏)의 자제(子弟)를 뽑아 서울에 데려와서 볼모로 삼는 한편, 그 출신 지방 사정에 관한 고문에 당하게 하던 것으로, 신라 때의 상수리(上守吏)에서 유래한 것이다. 충렬왕·충선왕 때에 이르러서는 궁실(宮室)이나 창고(倉庫)를 짓는 데 동원하는 등 노예 비슷한 지위로 격하되었다. 조선에 들어서도 궁중(宮中)에서 노예와 같이 여러가지 고역(苦役)에 역사(役使)되다가 태종 9년 이후에는 주로 소목(燒木)을 바치는 역(役)을 지게 되었다.- [註 009]
오원 십장(五員十將) : 십위(十衛) 각 영(領)의 산원(散員) 5명을 오원(五員), 낭장(郞將) 5명과 별장(別將) 5명을 십장(十將)이라 함.○門下府郞舍上疏。 疏曰:
前月二十六日, 特下敎書, 中外臣僚, 各陳所見, 實封條上。 臣等謹以愚衷, 仰瀆天聰。 一, 凡宗親大小臣僚, 非有命召, 不得擅入。 其被召而進者及中官內竪凡在闕內者, 皆着禮服。 一, 士大夫聚會崇飮, 遂構閑話, 變亂是非者, 或有之。 自今令憲司, 痛行糾理, 以杜朋比之弊。 一, 頃者, 殿下特令兩府百司, 各擧所知。 是欲使人才不遺也, 今其所擧, 皆不見用, 守令政最者, 考滿擢用, 已有著令, 今或無故見罷。 乞令尙瑞司, 將各司所擧及政最考滿者, 敍用無遺。 且各郡敎授官勤於敎訓, 人才有成者, 依守令例, 除拜朝官, 以示勸學之意。 一, 國家更設辨定都監, 定限決折, 欲絶爭端。 今淹延歲月, 過限未罷, 分于各司, 各司廢職, 專爲聽斷, 無有紀極。 請罷都監, 將其未畢事, 悉送都官, 使庶官各供其職。 一, 《周官》司寇, 掌邦禁詰姦慝, 我朝刑曹, 卽其職也。 今也旣有刑曹, 又有巡軍, 是一職而二官也。 巡軍所屬螺匠都府外, 其數幾於千五百, 皆以圻甸之民充之, 守令不能差役, 其餘民戶, 不堪勞苦。 今刑曹旣以掌刑, 而府兵足以巡綽, 請革巡軍, 將其百戶令史螺匠, 分送各司, 其都府外千餘人, 各還其州, 以供戶役。 一, 京畿, 王化所先, 宜加存恤, 以安民生。 今馬草柴炭, 多般雜貢, 倍於外方。 願自今馬草柴炭, 量減節用, 其餘雜貢可除者及可移外方者, 下議政府擬議詳定。 一, 州縣其人, 實是前朝之弊法, 國家因循未革。 其屬各殿司饔房, 掌器皿者, 或失或破, 督令充納, 貧寒外吏, 多貸錢物, 因以破産, 其弊不小。 如宮司倉庫之奴, 則充闕內差備者, 皆其族類, 必能相資, 無失破之患矣。 願自今, 以倉庫宮司奉書局奴代之, 以革積年之弊, 其人皆屬繕工, 以供其役, 其倉庫宮司奉書局提調官員騶從, 不過一二, 餘皆除之。 一, 前朝府兵, 專爲侍衛備患, 及其衰季, 其法廢弛, 自中郞將至于隊副, 不供職事, 徒費其祿。 我國家痛革其弊, 庶幾近之, 而猶未復古。 上、大將軍領其五員十將, 私遣放牧, 且以隊副爲騶從, 使之如奴隷, 有乖設兵備患之意。 自今悉皆禁斷, 俾專宿衛之任。 且十司放牧群馬, 踏損禾穀, 弊固不小, 請幷罷之, 以便民業。 一, 武備不可不預, 然軍器監置屯田於近州, 以爲供億衆工之費, 奪民之田, 取民之牛, 聚民而耕穫之, 近州之弊, 莫甚於此。 願自今給田收租, 以充其用, 罷屯田悉還本主。 一, 前朝王氏統一三韓, 積德累仁, 垂五百年, 民受其賜。 臣等伏見上王卽位敎旨, 以箕子、王太祖俱有功於東民, 屬之土田, 以時祭享, 實聖朝忠厚之意也。 今之人, 或以父母之屍, 葬于先王先后陵塋, 甚爲非道。 願自今王太祖 顯陵, 定屬戶以守之, 給柴地復賦役, 使之禁樵牧, 其餘陵室, 凡人臣同穴而葬者, 悉皆拔去, 以明古今君臣之義。 一, 佛氏之敎, 以淸淨寡欲爲宗, 辭親割愛, 遊方之外。 今之僧徒, 背其師敎, 牽於利欲, 務得寺社, 紛紜爭望。 願革五敎兩宗, 各其寺社土田奴婢, 悉屬於公, 以杜僧尼爭利之心。
疏上, 用人材、罷辨定、移京畿雜貢、代其人、罷軍器監屯田等事, 允之。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91면
- 【분류】농업-전제(田制) / 사상-불교(佛敎) / 의생활(衣生活) /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 / 군사(軍事) / 신분(身分) / 재정(財政)
- [註 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