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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1월 14일 갑술 1번째기사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청성백 심덕부의 졸기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가 죽었다. 덕부의 자(字)는 득지(得之)이니, 청부현(靑鳧縣) 사람이며, 전리 정랑(典理正郞) 심용(沈龍)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처음에 좌우위 녹사(左右衛錄事) 참군(參軍)이 되고, 여러 번 옮기어 소부윤(少府尹)이 되었다. 공민왕(恭愍王) 13년 갑진에 나가서 수원 부사(水原府使)가 되었을 때, 안렴사(按廉使)가 부(府)에 이르매, 덕부가 알현(謁見)하러 갔다가, 안렴사가 옷을 갖추지 않은 것을 보고 그대로 물러왔다. 안렴사가 아전을 시켜 꾸짖으니,

"옷이 법도와 같지 않다."

고 대답하였다. 안렴사가 불민(不敏)함을 사과하였다. 그 단정(端正)하고 개결(介潔)함이 이와 같았다. 병오년에 어머니 상사를 당하여 매우 애통한 나머지, 몸이 수척해져서 소문이 났었다. 위주(僞主) 원년(元年) 을묘에 예의 판서(禮儀判書)로 강계도 만호(江界都萬戶)가 되었는데, 재주가 장수(將帥)의 책임을 감당할 만하여 명성이 더욱 드러나서, 발탁되어 밀직 부사(密直副使) 의주 부원수(義州副元帥)가 되었다. 정사년에 서해도 부원수(西海道副元帥)가 되었고, 무오년에 밀직사(密直使)로 제수되어,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전대(專對)함이 재치있고 빨랐다. 경신년에 왜적이 우리 남쪽 변방을 도둑질하여, 그 형세가 심히 성(盛)하였었다. 덕부가 누선(樓船) 40척을 거느리고 가서 이를 쳤는데, 도적들이 다시는 날뛰지 못했다. 을축년에 동북면(東北面)에 도적의 위급함이 있었으므로, 덕부에게 절월(節鉞)을 주어 토벌하게 하였다. 병인년에 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로 명나라 서울에 조회하고 돌아왔으므로, 청성 부원군(靑城府院君)을 봉하였다. 무진년에 우리 태상왕(太上王)을 따라 위화도(威化島)에 이르렀다가 창의(唱義)하여 회군(回軍)하였고, 공양왕(恭讓王) 원년 기사년에 문하 좌시중(門下左侍中), 경기 좌우도 평양도 도통사(京畿左右道平壤道都統使)가 되었다. 경오년에 비어(飛語)의 중상을 받아 토산현(兎山縣)에 귀양갔다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소환되었다. 신미년에 다시 좌시중(左侍中)이 되어, 공양왕의 세자(世子) 석(奭)을 따라 명나라 서울에 조회하였다. 임신년에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로 옮겼고, 우리 태상왕(太上王)이 즉위한 뒤에 회군(回軍)한 공을 추록(追錄)하여 제일(第一)이 되어,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상왕(上王) 원년 기묘에 다시 좌정승(左政丞)이 되었고, 경진년에 이를 사면하고 청성백(靑城伯)으로서 사제(私第)에 나갔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으로 죽으니, 나이 74세였다. 부음(訃音)이 들리매, 조회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중사(中使)를 보내어 치제(致祭)하고, 부의(賻儀)로 쌀·콩 각각 1백 석을 내려 주고, 시호(諡號)를 "정안(定安)"이라 주었다. 덕부가 온량(溫良)하고, 청렴하고, 공근(恭謹)하고, 충성하고, 부지런하여, 착한 일을 많이 하였으므로, 죽으매 나라 사람들이 아깝게 여기었다. 아들이 일곱 있으니, 심인봉(沈仁鳳)·심의귀(沈義龜)·심도생(沈道生)·심징(沈澄)·심온(沈溫)·심종(沈淙)·심정(沈泟)인데, 종(淙)은 태상왕(太上王)의 둘째 딸 경선 공주(慶善公主)에게 장가들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90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歷史) / 외교-명(明) / 외교-왜(倭)

○甲戌/靑城伯 沈德符卒。 德符得之, 靑鳧縣人, 典理正郞之子也。 以門蔭, 始受左右衛錄事參軍, 累遷少府尹。 恭愍王十三年甲辰, 出守水原府, 廉使至府, 德符納謁, 見使不裩便退, 使命吏讓之, 對以服不如儀, 使謝不敏。 其端介如此。 丙午, 丁母憂, 以哀毁聞。 僞主元年乙卯, 以禮儀判書, 充江界都萬戶。 才堪將帥, 名聲益彰, 擢爲密直副使、義州副元帥。 丁巳, 爲西海道副元帥, 戊午, 除密直使, 奉使如京, 專對敏給。 庚申, 寇我南鄙, 其勢甚張。 德符將樓船四十艘往討之, 不復跳梁。 乙丑, 東北面有寇警, 授德符節鉞討之。 丙寅, 以門下贊成事朝京師, 旣還, 封靑城府院君。 戊辰, 從我太上王至威化島, 唱義旋旆。 恭讓君元年己巳, 陞爲門下左侍中、京畿左右道平壤道都統使。 庚午, 中飛語, 謫兔山縣, 未幾徵還。 辛未, 復拜左侍中, 從恭讓君世子朝京師。 壬申, 遷判門下府事。 及我太上王踐祚, 追錄回軍功爲第一, 封靑城伯, 上王元年己卯, 復拜左政丞。 庚辰辭, 以靑城伯就第, 至是病卒, 年七十四。 訃聞, 輟朝三日, 遣中使致祭, 賜賻米豆各百石, 贈諡定安德符溫良廉謹, 忠勤積善, 及卒, 國人惜之。 有子七人: 仁鳳義龜道生尙太上王第二女慶善公主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90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歷史)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