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빈 민씨를 정비로 봉하는 책문
정빈(貞嬪) 민씨(閔氏)를 봉하여 정비(靜妃)로 삼았다. 임금이 관포(冠袍)를 입고 정전(正殿)에 납시어 태위(太尉)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권근(權近)에게 명하여 책(冊)과 보(寶)를 주었다. 책문(冊文)은 이러하였다.
"왕화(王化)의 기초는 반드시 규문(閨門)의 바른 데에 시작하고, 종사(宗祀)의 계통은 실로 배필(配匹)의 존귀(尊貴)에 관계된다. 이에 이장(彝章)을 거행하여 현책(顯冊)에 칭양(稱揚)한다. 너 정빈 민씨는 유한(幽閑) 정정(貞靜)하고 성일(誠一) 단장(端莊)하여, 결발(結髮)하여 동뢰(同牢)함으로부터 일찍 의가(宜家)의 덕을 나타내었고, 능히 계책을 결단하여 갑옷을 끌어서 종사(宗社)의 공(功)을 도와 이루었도다. 이에 비도(丕圖)를 잇게 된 것이 또한 내조(內助)에 많이 힘입었다. 조강(糟糠)의 옛정을 잊지 못하여 유적(褕翟)의 의식(儀式)으로 높이는도다. 아아, 실가(室家) 만년(萬年)에 승평(昇平)의 복을 넓히고, 본지(本支) 백세에 길이 넉넉함을 물려줄 모유(謀猷)를 전하라."
비자(妃子)가 책(冊)·보(寶)를 받고, 권근 등에게 표리(表裏) 각각 1벌씩을 주었고, 임금이 또한 근(近)에게 말 1필을 주고, 종친(宗親)과 더불어 양청(涼廳)에서 잔치하여 매우 즐기었다. 비자(妃子)도 또한 종실 명부(命婦)들과 더불어 중궁(中宮)에서 잔치하였다. 비(妃)가 무인년의 위급한 때를 당하여 먼저 병장(兵仗)을 갖추어 배치하였으니, 응변(應變)의 계책과 정사(定社)의 공(功)에 내조(內助)가 많았다. 뒤에 태종(太宗)이 《고려사(高麗史)》를 보다가 우리 전하(殿下)에게 이르기를,
"너의 모후(母后)의 공(功)이 유씨(柳氏)002) 의 제갑(提甲)에 비교하면 더욱 중하다."
하였다. 우리 전하가 즉위한 뒤에 조정 신하들이 존호(尊號)를 드리기를 "창덕 소열(彰德昭烈)"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90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변란-정변(政變) / 인물(人物) / 역사(歷史)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02]유씨(柳氏) : 왕건(王建)의 비(妃).
○庚午/封貞嬪 閔氏爲靜妃。 上服冠袍御正殿, 命太尉參贊門下府事權近, 賜冊寶。 冊曰:
王化之基, 必始閨門之正; 宗祀之統, 實關配匹之尊。 爰擧彝章, 載揚顯冊。 惟爾貞嬪 閔氏, 幽閑貞靜, 誠一端莊。 自結髮而同牢, 夙著宜家之德; 能決策而提甲, 弼成宗社之功。 玆獲紹於丕圖, 亦多資於內助。 肆不忘糟糠之舊, 用以崇褕翟之儀。 於戲! 室家萬年, 式衍昇平之祚; 本支百世, 永貽垂裕之謀。
妃子受冊寶, 賜表裏各一於權近等, 上亦賜近馬一匹。 與宗親宴于涼聽極歡, 妃子亦與宗室命婦, 宴于中宮。 妃當戊寅倉卒之際, 先備兵仗布置, 應變之策, 定社之功, 內助居多。 後太宗覽《高麗史》, 謂我殿下曰: "汝母后之功, 比之柳氏提甲, 尤重矣。" 及我殿下卽位, 廷臣獻尊號曰彰德昭烈。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90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변란-정변(政變) / 인물(人物) / 역사(歷史)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