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실록 6권, 정종 2년 11월 13일 계유 2번째기사
1400년 명 건문(建文) 2년
주상을 높여 상왕이라 하고, 상왕의 거처를 공안부, 중궁의 거처를 인녕부라 하다
주상(主上)을 높여 상왕(上王)을 삼고, 부(府)를 세워 ‘공안부(恭安府)’라 하고, 중궁(中宮)의 부(府)를 ‘인녕부(仁寧府)’라 하였다. 민제(閔霽)로 여흥백(驪興伯)을, 김사형(金士衡)으로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를, 이거이(李居易)로 문하(門下) 좌정승을, 조박(趙璞)으로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를, 정구(鄭矩)로 대사헌을, 이백강(李伯剛)으로 청평군(淸平君)을, 김수(金需)로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를, 이내(李來)로 예문 학사(藝文學士)를, 맹사성(孟思誠)으로 좌산기(左散騎)를, 김구덕(金九德)으로 중승(中丞)을 삼았다. 밤 2경에 추동(楸洞)095) 본궁(本宮)으로 돌아왔다.
- 【태백산사고본】 1책 6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8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註 095]추동(楸洞) : 가랫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