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백 조준을 순군옥에 가두었다가 석방. 무고한 조박과 권진을 귀양보내다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을 순군옥(巡軍獄)에 가두었다가 조금 뒤에 석방하였다. 처음에 경상도 감사(慶尙道監司) 조박(趙璞)이 지합주사(知陜州事) 권진(權軫)에게 말하였었다.
"계림 부윤(雞林府尹) 이거이(李居易)가 내게 얘기하기를, ‘내가 조준의 말을 믿은 것을 후회한다.’ 하였다. ‘무슨 까닭이냐.’ 물으니, 이거이가 말하기를, ‘조준이 사병(私兵)을 혁파할 때를 당하여, 나와 말하기를, 「왕실을 호위하는 데는 군사가 강한 것 같은 것이 없다.」 하였다. 내가 그 말을 믿고서 패기(牌記)를 곧 삼군부(三軍府)에 바치지 않았다가 죄를 얻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권진이 간의 대부(諫議大夫)가 되어서 조박의 말을 사사로이 자기가 더 보태어 좌중(坐中)에 고하였다. 이에 헌신(憲臣) 권근(權近)과 간신(諫臣) 박은(朴訔) 등이 교장(交章)하여 상언(上言)해서 조준·이거이 등의 죄를 말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조준이 어찌 이런 말을 하였겠는가?"
하고, 그 소장을 머물러 두었다. 권근 등이 다시 상서(上書)하여 대궐에 나와 굳이 청하니, 이에 조준을 옥에 가두고,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이서(李舒)·순군 만호(巡軍萬戶) 이직(李稷)·윤저(尹抵)·김승주(金承霔) 등에게 명하여 추국(推鞫)하게 하니, 조준이 강개(慷慨)한 성품이므로 분이 나서,
"신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기만 할 뿐이었다. 지합주사(知陜州事) 전시(田時)는 조준과 이거이가 믿는 사람이었다. 조준 등의 죄를 입증하려고 하여 서리(書吏)를 보내서 잡아 오고, 임금이 조준·이거이·조박을 한 곳에서 빙문(憑問)하게 하려고 하는데, 권근 등은 각곳에 두고 국문(鞫問)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의심하여 노하기를,
"어찌 죄상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형(刑)을 가할 수 있겠는가?"
하고, 대간(臺諫)에게 다시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곧 순군 관리에게 명하여 이거이·조박을 잡아 왔다. 세자가 윤저(尹抵)를 불러 말하기를,
"경은 주상께서 경으로 순군 만호(巡軍萬戶)를 삼은 뜻을 알고 있는가?"
하니, 윤저가 대답하기를,
"신은 본래 혼매하고 어리석어 이사(吏事)를 익히지 못하였는데, 지금 신에게 형관의 임무를 명하시니, 조처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여 밤낮으로 황공하고 송구합니다."
하였다. 세자가 말하기를,
"경은 본래 세족(世族)이며, 작은 절조에 구애하지 않고, 세태(世態)에 아첨하지 않으며, 오직 너그럽고 공평한 것을 힘쓰기 때문에, 형관의 임무를 명한 것이다."
하고, 대간(臺諫)의 소장을 보이면서 말하기를,
"태상왕께서 개국하신 것과 주상께서 대위(大位)를 이으신 것과 불초한 내가 세자가 되어 지금의 아름다움에 이른 것이, 모두 조준의 공이다. 지금 전날의 공을 잊고 허실을 가리지 않고, 다만 유사(攸司)의 소장만 믿고 국문한다면, 황천 상제(皇天上帝)가 심히 두려울 것이다. 조준이 만일 이 말을 하였다면, 크게 죄가 있는 것이다. 경은 가서 조심하라."
하였다. 윤저가 재배하고 나오는데, 우정승 민제(閔霽)가 비밀히 윤저에게 말하기를,
"조준 등이 나와 하윤(河崙)을 해치고, 인연을 맺어 세자에게 미치려고 한다. 지금 잡혀 갇혔으니, 끝까지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대성(臺省)이 모두 대궐 뜰에 나와 다시 위관(委官)086) 을 이거이와 조박의 있는 곳에 보내어 조준의 말한 것을 질문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무릇 질문하는 일은 마땅히 한 곳에 두고 빙문(憑問)하여야 할 것이지, 어찌 사람을 보내어 물을 수 있는가?"
하였다. 대간이 극력 간쟁(諫諍)하니, 임금이 일을 보지 못하도록 명하여 각각 사제(私第)로 돌려보내고, 조박을 순군옥에 가두고 물으니, 조박의 말이 대성(臺省)의 소장의 뜻과 같지 않았다. 또 권진(權軫)을 가두고 물으니, 권진의 말도 또한 소장의 뜻과는 달랐다. 임금이 권근 등을 크게 미워하여, 이거이를 순군옥에 가두고 조박과 빙문(憑問)하니, 이거이가 말하기를,
"나는 조준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하니, 조박이 맞대고 질문하기를,
"그대가 계림(雞林) 동헌(東軒)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하니, 이거이가 말하기를,
"말한 일이 없다. 그대가 나에게 술 두세 잔을 먹였지만, 내 마음은 달랐고 취하지 않았었다. 그대가 기묘년에 이천(利川)으로 폄출(貶出)되었다가 경상도 감사로 나간 것은 우리 부자 때문이었다. 내가 조준과 정사(定社)의 맹세를 바꾸지 않았으니, 조준이 비록 그런 말을 하였더라도 내가 어찌 그대와 얘기하겠는가!"
하였다. 조박이 말하기를,
"내 자식 조신언(趙愼言)이 회안공(懷安公)의 딸에게 장가들 때에, 조준이 안마(鞍馬)를 주었고, 내가 감사(監司)로 나갈 때에 금대(金帶)를 주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내게 향하여 불평이 있었다."
하니, 이거이가 큰 소리로 말하기를,
"조박의 말은 모두 사사 감정이다. 원하건대, 제공(諸公)들은 들어보시오."
하였다. 조박이 크게 부끄러워하는 빛이 있었다. 조준과 이거이를 석방하여 각각 그 집으로 돌려보내고, 조박은 이천(利川)에 폄출(貶出)하고, 권진은 축산도(丑山島)에 귀양보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5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82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군사-특수군(特殊軍)
- [註 086]위관(委官) : 죄인을 추국(推鞫)할 때, 의정 대신(議政大臣) 가운데서 임금이 임시로 뽑아서 임명하던 재판관.
○下平壤伯 趙浚于巡軍獄, 旣而放之。 初, 慶尙道監司趙璞, 言於知陜州事權軫曰: "雞林府尹李居易, 與吾言曰: ‘吾悔信趙浚之言。’ 問曰: ‘何故?’ 居易曰: ‘浚當革私兵之時, 與我言: 「衛王室, 莫若兵强。」 予信之, 乃以不卽納牌記于三軍府, 獲罪, 以至今日。’" 軫拜諫議大夫, 以璞之言, 私自增益, 告于坐中。 於是, 憲臣權近、諫臣朴訔等, 交章上言浚與居易等之罪, 上曰: "浚豈有是言乎?" 留其狀。 近等更上書, 進闕固請, 於是下浚于獄, 命參贊門下府事李舒、巡軍萬戶李稷ㆍ尹抵ㆍ金承霔等推之。 浚以慷慨之性憤發, 但言: "臣無是言。" 涕泣而已。 知陜州事田時, 浚與居易之所信者也。 欲證浚等之罪, 遣吏捕之, 上欲令浚與居易、璞, 一處憑問。 近等請置各處鞫問, 上疑而怒曰: "豈有罪狀未著, 而遽加刑乎?" 令臺諫勿復言之, 卽命巡軍官吏, 執李居易、趙璞以來。 世子召抵曰: "卿知上之以卿爲巡軍萬戶乎?" 抵對曰: "臣本昏愚, 不習吏事。 今命臣以刑官之任, 罔知施措, 夙夜惶懼。" 世子曰: "卿本世族, 不拘小節, 不阿世態, 惟務寬平, 故命以刑官之任。" 以臺諫狀示之曰: "太上開國, 主上嗣位, 予以不肖爲世子, 以至今休, 皆浚之功也。 今忘前日之功, 不核虛實, 但信所司之狀鞫問, 則皇天上帝, 甚可畏也。 浚若有是言, 大有罪焉, 卿其往欽之。" 抵再拜而出。 右政丞閔霽密言於抵曰: "浚等欲謀害吾與崙, 而緣及世子。 今乃見囚, 不可不窮推也。" 臺省咸進闕庭, 更請遣委官于居易、璞之在處, 質問浚之所言, 上曰: "凡質問之事, 當置一處憑問。 豈可遣人以問!" 臺諫極爭, 命不視事, 各歸私第。 囚璞于巡軍問之, 璞之言, 與臺省疏意不同, 又囚軫問之, 軫之言, 亦與疏意異。 上大惡近等, 囚居易于巡軍, 與璞憑問。 居易曰: "吾不聞浚有是言也。" 璞面質曰: "君不言於雞林東軒乎?" 居易曰: "否。 君饋我二三杯, 然我心則異, 不醉也。 君在己卯, 貶于利川, 出爲慶尙道監司者, 以我父子故也。 吾與浚不改定社之盟。 浚雖有是言, 吾豈與君言乎?" 璞曰: "吾子愼言娶懷安公之女, 浚與之鞍馬, 吾出爲監司, 與之金帶。 然其心則向我不平。" 居易大言曰: "璞之言, 皆私恨也。 願諸公聞之。" 璞大有慙色。 放浚與居易, 各還其第, 貶璞于利川, 流軫于丑山島。
- 【태백산사고본】 1책 5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82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군사-특수군(特殊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