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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실록 4권, 정종 2년 4월 6일 신축 10번째기사 1400년 명 건문(建文) 2년

문하 시랑찬성사 하윤에게 명하여 관제를 다시 정하다

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하윤(河崙)에게 명하여 관제(官制)를 다시 정하게 하였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고쳐 의정부(議政府)로 하고, 중추원(中樞院)을 고쳐 삼군부(三軍府)로 하여, 직임이 삼군(三軍)을 맡은 자(者)는 삼군에만 전적으로 나가게 하고, 의정부에는 참예하지 못하게 하고, 좌복야(左僕射)·우복야(右僕射)를 고쳐 좌사(左使)·우사(右使)로 하고, 다시 예문관(藝文館)의 태학사(太學士) 1원(員)·학사(學士) 2원(員)을 두고, 중추원 승지(中樞院承旨)를 고쳐 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로 하고, 도평의사사 녹사(都評議使司錄事)를 고쳐 의정부 녹사(議政府錄事)로 하고, 중추원 당후(中樞院堂後)를 승정원 당후(承政院堂後)로 하였다. 조준(趙浚)으로 평양백(平壤伯)을 삼고, 이화(李和)로 영삼사사(領三司事)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를 삼고, 이거이(李居易)로 판문하부 의정부사(議政府事)를 삼고, 성석린(成石璘)으로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를 삼고, 민제(閔霽)로 판의정부사를 삼고, 성석린의 공신호를 고쳐 동덕 찬화(同德贊化)라 하고, 민제를 동덕 좌명(同德佐命)이라 하고, 아울러 녹군국중사(錄軍國重事)를 가(加)하고, 정탁(鄭擢)으로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 태학사(太學士)를 삼고, 도총제(都摠制) 이하는 의정부사(議政府事)를 겸하지 못하게 하고, 정구(鄭矩)를 승정원(承政院) 도승지(都承旨)로 삼았다.

이보다 앞서 대성(臺省)에서 다시 교장(交章)을 올려 말하였다.

"병권은 흩어서 통속이 없게 할 수 없고, 또한 치우쳐서 혼자 전장(專掌)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흩어져서 통속이 없으면 그 위엄이 나누어지고, 치우쳐서 혼자 전장하면 그 권세가 옮겨지니, 위엄이 사람에게 나뉘어지거나 권세가 아래에 옮겨지면, 난(亂)을 일으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신 등이 전일에 글장을 올려 사병(私兵)을 혁파해서 삼군부(三軍府)에 붙여 위엄이 나뉘어지는 폐단을 막기를 청하였는데, 곧 유윤(兪允)을 받았으므로 여러 사람이 마음으로 기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군사를 한 부(府)에 돌린다면, 치우쳐서 맡게 하거나 권세가 옮겨지는 근심을 미리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 등이 삼가 상고하건대, 예전에 병법의 설치에는 명령을 발하고 군사를 발하고 군사를 맡는 차등이 있었습니다. 명령을 발하는 자는 재상이요, 군사를 발하는 자는 중간에 있는 총제(摠制)이요, 군사를 맡는 자는 명령을 받아서 행하는 자였습니다. 재상은 임금의 명령을 품(稟)한 것이 아니면 명령을 발하지 못하고, 총제는 재상의 명령이 있는 때가 아니면 군사를 발하지 못하고, 군사를 맡은 자는 총제의 명령이 있는 때가 아니면 행(行)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하(上下)가 서로 유지(維持)하여 체통이 문란하지 않았으므로, 비록 변을 꾸미고자 하더라도 능히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정해진 법이었습니다. 고려의 옛 제도는 당(唐)나라·송(宋)나라를 본받았는데, 성재(省宰)는 나라의 정치와 군국(軍國)의 일을 맡아서 통속하지 않은 바가 없었으므로 곧 명령을 발하는 자이요, 중추(中樞)는 군기(軍機)를 맡았으므로 곧 총제(摠制)하여 군사를 발하는 자이요, 여러 위(衛)의 상장군(上將軍)·대장군(大將軍) 이하는 부병(府兵)을 전장(專掌)하여 숙위(宿衛)를 맡아서, 변이 있을 때 작으면 낭중(郞中)·낭장(郞將)을 보내고, 크면 장군(將軍) 이상을 보내어 적(敵)에 대응케 해서 일찍이 패배한 적이 없었으니, 이것이 군사를 맡는 자입니다. 원(元)나라를 섬긴 이후로 국가에 일이 많아서 성재(省宰)와 중추(中樞)가 모여 일을 의논하였는데, 이것을 양부 합좌(兩府合坐)044) 라 하였고, 인하여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두었습니다. 충렬왕(忠烈王) 이후에 부병(府兵)이 점점 무너져서, 비로소 재상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적에 대응하였으니, 옛 제도가 아닙니다. 우리 태조(太祖)께서 개국한 처음에 양부 합좌하는 것을 인습하여 고치지 않고서, 의흥 삼군부(義興三軍府)를 두어 군무(軍務)를 전장(專掌)하게 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재상은 군정(軍政)을 듣지 못하고, 중추(中樞)는 군기(軍機)를 맡지 못하니, 옛 법에 어그러지는 것입니다. 중추(中樞)의 벼슬이 실상 허직(虛職)이 되어, 인원은 많고 위계(位階)는 높아서 한갖 녹봉만 받을 뿐입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중추(中樞)를 혁파하고 삼군부(三軍府)로 녹관(祿官)을 삼아서, 성재(省宰) 이상으로서 겸직할 수 있는 자는 곧 절제(節制)를 겸직하고, 녹관은 중추(中樞)의 예에 의하여 지삼군(知三軍)·동지 삼군(同知三軍)·첨서(簽書)·학사(學士) 각각 1원(員)으로 하되, 모두 문관이나 혹은 무관 중에서 잘 모획(謀畫)하고 능하게 판단하는 자로 시켜서, 사사(使司)의 직함을 띠고 합좌(合坐)하여 군국(軍國)의 정사를 더불어 의논하게 할 것입니다. 무릇 군(軍)에 관한 일이 있으면 사사(使司)에서 임금의 명령을 품(稟)하여 받아서 삼군부(三軍府)에 옮겨, 재상이 명령을 발하는 법에 응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 절제사(節制使)는 성재(省宰)가 겸직하는 것을 제외하고, 삼군(三軍)에 각각 1인을 녹관(祿官)으로 하여, 비록 중추(中樞)를 지내어 위차(位次)가 지(知)·동지(同知)의 위에 있더라도 다만 1군(軍)만 절제(節制)하게 하고, 삼군(三軍)을 통솔할 만한 정도는 아니오니, 사사(使司)의 직함을 띠는 것을 허락하지 말고, 직접 본부(本府)에 앉아 서울과 외방의 군무(軍務)를 다스리게 하여, 총제(摠制)의 직책을 존중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 위(衛)의 상장군(上將軍)·대장군(大將軍)은 합하여 삼군부(三軍府)에 붙이어 그 일에 이바지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 절제사와 상장군·대장군 이하는 번(番)을 나누어 숙위(宿衛)하여 불우(不虞)의 변에 대비하고, 군사를 맡는 직임에 이바지하게 하되, 변이 있으면 절제(節制) 이하가 명령을 받아서 나가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미 통속이 있어서 위엄이 나뉘어지지 않고, 또한 혼자 전장(專掌)하기 어려워져서 권세가 옮겨지지 않으므로, 이름과 실상이 서로 부합하고, 체통(體統)이 존엄하여져서, 실로 자손 만대의 아름다운 법이 될 것입니다."

임금이 가납(嘉納)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4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70면
  • 【분류】
    정론(政論) / 군사(軍事) / 인사(人事) / 역사(歷史)

  • [註 044]
    양부 합좌(兩府合坐) : 고려 때 삼성(三省)의 문관(文官)과 중추원(中樞院)의 무관(武官)이 같이 모여 나라의 중대한 일을 의논하던 일. 후일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로 되었음.

○命門下侍郞贊成事河崙, 更定官制。 改都評議使司爲議政府, 改中樞院爲三軍府。 職掌三軍者, 專仕三軍, 不得坐議政府。 改左右僕射爲左右使, 復(致)〔置〕 藝文館太學士一員、學士二員。 改中樞院承旨爲承政院承旨, 改都評議使司錄事爲議政府錄事, 中樞院堂後爲承政院堂後。 以趙浚平壤伯, 李和領三司事判議政府事, 李居易判門下府議政府事, 成石璘判議政府事, 閔霽判議政府事。 改石璘功臣號爲同德贊化, 同德佐命, 竝加錄軍國重事。 鄭擢藝文春秋館太學士。 都摠制以下, 不得兼議政府事。 鄭矩承政院都承旨。 先是, 臺省復上交章曰:

兵權不可散而無統, 亦不可偏而獨專。 散而無統, 則其威分, 偏而獨專, 則其權移。 威分於人, 權移於下, 其生亂一也。 臣等前日上章, 請罷私兵, 屬三軍府, 以防威分之弊, 卽蒙兪允, 衆心欣慶。 然以重兵歸之一府, 則偏專權移之患, 不可不預爲之防也。 臣等謹按, 古者兵法之設, 有發命發兵掌兵之差。 發命者, 宰相也; 發兵者, 居中摠制也; 掌兵者, 受命以行者也。 宰相非稟君上之命, 不得發命; 摠制非有宰相之命, 不得發遣; 掌兵者非有摠制之命, 不得以行。 上下相維, 體統不亂, 雖欲爲變, 莫能自動, 此定法也。 前朝舊制, 取法, 省宰掌邦治, 軍國之事, 無所不統, 卽發命者也; 中樞掌軍機, 卽摠制發兵者也; 諸衛上、大將軍已下, 專掌府兵, 以當宿衛, 有變小則遣郞中郞將, 大則遣將軍已上, 出而應敵, 未嘗敗衄, 此則掌兵者也。 事以後, 國家多務, 省宰中樞, 會而議事, 謂之兩府合坐, 因置都評議使司。 忠烈已後, 府兵漸毁, 始遣宰相, 領兵應敵, 非古制也。 惟我太祖開國之初, 兩府合坐, 沿襲不革, 置義興三軍府, 專掌軍務。 由是宰相, 不得聞軍政, 中樞不得掌軍機, 有乖古法。 中樞之官, 實爲虛器, 員多位高, 徒受祿俸而已。 願自今罷中樞, 以三軍府爲祿官, 省宰已上可兼者, 卽兼節制, 其祿官則依中樞例, 知三軍、同知三軍、簽書、學士各一員, 皆以或文或武, 善謀能斷者爲之, 帶使司銜合坐, 與議軍國之政。 凡有軍事, 使司承稟上命, 移三軍府, 以應宰相發命之法。 諸節制使, 除省宰兼外, 三軍各一爲祿官。 雖曾經中樞, 位在知同知之上, 然只爲一軍節制, 非統三軍之比, 不許帶使司銜, 直坐本府, 以治京外軍務, 以尊摠制之職。 諸衛上、大將軍, 合屬三軍府, 以供其事; 諸節制使與上、大將軍以下, 分番宿衛, 以備不虞, 以供掌兵之任, 有變則節制以下, 受命而行。 如此則旣有統屬而威不分, 亦難獨專而權不移, 名實相孚, 體統尊嚴, 實可爲子孫萬世之令典也。

嘉納之。


  • 【태백산사고본】 1책 4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70면
  • 【분류】
    정론(政論) / 군사(軍事) / 인사(人事)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