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부에서 시무 3개 조목을 아뢰다
문하부(門下府)에서 상서(上書)하여 시무(時務)를 진술(陳述)하였다.
"1. 말을 구하고 간(諫)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주(人主)의 요도(要道)이니, 임금이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허물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순(大舜)의 지혜로도 천근(淺近)한 말을 실피기를 좋아하였고, 성탕(成湯)073) 의 성(聖)스러움으로도 간(諫)하는 말을 좇아서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역대 제왕의 다스림이 간함을 좇아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근일에 대간(臺諫)이 상소(上疏)하면, 혹 유윤(兪允)을 내리지 않거나, 궁중에 머물러 두고 비답(批答)하지 않아서, 언로(言路)가 막히고 하정(下情)이 통달하지 못하게 되니, 두렵건대, 선왕(先王)의 천하 국가를 다스리던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대간이 계달(啓達)하는 일은 곧 유윤을 내리시어 언로를 넓히고 하정을 통달하게 하소서.
1. 예전의 성왕(聖王)은 아침에 정사를 듣고, 낮에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저녁에 명령을 닦아서, 일찍이 경각(頃刻) 사이도 정사(政事)에 태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전하가 이미 조종(祖宗)의 업을 이었으니, 진실로 마땅히 숙야(夙夜)로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터인데, 여름부터 가을까지 조회를 보고 정사를 들은 날이 없습니다. 지금 천요(天妖)와 지괴(地怪)가 여러 번 견고(譴告)를 보인 것이, 어찌 정사에 게을리하여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마땅히 하늘의 경계를 삼가시어 조회를 보고 정사를 들어서, 날마다 여러 신하와 치도(治道)를 강론하여 천심(天心)에 보답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찌 귀신과 부처에게 기도하여 재이(災異)의 견책(譴責)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매월(每月) 6아일(六衙日)074) 에 각사로 하여금 맡은 일에 대하여 계본(啓本)을 갖추어 계문(啓聞)케 하여, 친히 스스로 결단하소서.
1. 3년의 상(喪)은 만세의 떳떳한 법이요, 기복(起復)하는 제도는 한때의 변례(變例)입니다. 그러므로 국가가 위태하고 어지러울 때에는 신하로서 재주가 장상(將相)을 겸하고, 그 몸이 국가 안위(安危)에 관계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탈정(奪情) 기복(起復)하여 일을 맡기는 것은 참으로 부득이하여 하는 것입니다. 어찌 치평(治平)한 세상에 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간관(諫官)은 헌체(獻替)075) 를 맡아서 임금을 바르게 하고, 헌사(憲司)는 규찰을 맡아서 백료(百僚)의 잘못을 고치게 하니, 이로 인하여 대간(臺諫)의 관원은 반드시 먼저 자기를 바르게 한 연후에야 임금에게 어려운 일을 책망할 수 있고, 풍속을 규찰하여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최질(衰絰) 중에 있는 사람을 기복(起復)하여 대간의 직임을 주지 마시고, 그 나머지 기복의 제도는 한결같이 《육전(六典)》에 의하소서."
이때에 전백영(全伯英)이 모상(母喪)을 당하여 여묘(廬墓)살이를 하다가 대사헌으로 소환되었기 때문에, 낭사(郞舍)에서 말한 것이다. 임금이 지난 5월부터 이질(痢疾)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계사(啓事)가 있으면 재결하지 않음이 없었고, 근자에는 비록 강복(康復)은 되었으나, 또 장마로 인하여 아일(衙日)에 조회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정사를 듣는 것에 이르러서는 아침 저녁을 불문하고, 안과 밖을 꺼리지 않고, 계달(啓達)하면 문득 들어서 결단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간관이 말하기를, 천변(天變)과 지괴(地怪)가 모두 정사를 게을리 한 소치라고 하니, 임금이 대단히 부끄러워하여 곧 허락하였다. 오직 기복(起復)을 논한 한 조목은 내려 주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54면
- 【분류】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사상-불교(佛敎) / 인사-관리(管理) / 풍속-풍속(風俗) / 과학-지학(地學)
- [註 073]성탕(成湯) : 은(殷)나라 첫 임금. 본명은 이(履) 또는 천공(天工). 하(夏)의 걸왕(桀王)을 쫓아내고 천자(天子)의 자리에 오름. 탕왕(湯王).
- [註 074]
6아일(六衙日) : 매달 여섯 번씩 백관(百官)이 모여 조회(朝會)하여 임금에게 정무(政務)를 아뢰던 일. 고려 때에는 초1일·초5일·11일·15일·21일·25일이었으나, 조선조 때에는 초1일·초6일·11일·16일·21일·26일이었음. 조참일(朝參日).- [註 075]
헌체(獻替) : 가(可)한 것은 들이고 불가(不可)한 것은 버린다는 뜻.○門下府上書陳時務:
一, 求言納諫, 人主之要道, 君不納諫, 則無以知其過。 是故以大舜之智, 好察邇言; 以成湯之聖, 從諫弗咈。 由是觀之, 歷代帝王之治, 莫不從諫而致然。 日者臺諫上疏, 或不賜允, 留中不下, 以致言路塞而下情不達, 恐非先王治天下國家之道也。 願自今, 臺諫所啓之事, 卽賜兪允, 以廣言路, 以達下情。 一, 古之聖王, 朝以聽政, 晝以訪問, 暮以修令, 未嘗頃刻而怠於政事。 殿下旣承祖宗之業, 誠宜夙夜匪懈, 自夏至秋, 未有視朝聽政之日。 今天妖地怪, 屢彰譴告, 豈非怠於政事之致然歟? 殿下當恪謹天戒, 視朝聽政, 日與群臣, 講論治道, 以答天心。 豈可祈禱神佛, 以去災異之譴? 願殿下, 於每月六衙日, 令各司所掌之事, 具本啓聞, 親自裁斷。 一, 三年之喪, 萬世之常經; 起復之制, 一時之變例。 是故當國家危亂之際, 人臣有才兼將相, 身佩安危者, 則必須奪情起復, 以任其事, 誠有所不獲已也。 豈可行於治平之世哉? 況諫官掌獻替, 以正人主; 憲司掌糾察, 以繩百僚。 是以臺諫之官, 必先正己, 然後可以責難於君, 可以糾治風俗。 願自今毋起衰絰之人, 以授臺諫之任, 其餘起復之制, 一依《六典》。
時全伯英丁母憂廬墓, 以大司憲赴召, 故郞舍言及之。 上自五月患痢疾, 然有啓事, 無不裁決, 近雖康復, 又因雨潦, 不視衙朝。 然至於聽政, 不論朝暮, 不忌內外, 啓輒聽斷。 至是, 諫官言天變地怪, 皆怠政所致, 上甚慙赧, 卽許之, 唯論起復一條不下。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54면
- 【분류】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사상-불교(佛敎) / 인사-관리(管理) / 풍속-풍속(風俗) / 과학-지학(地學)
- [註 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