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경(奔競)을 금하는 하교를 내리다
하교(下敎)하여 분경(奔競)056) 을 금하였다.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옛일을 상고하면, 옛날 순(舜)임금이 용(龍)057) 에게 명하기를 ‘짐(朕)은 참소하는 말이 착한 사람의 일을 중상하여 짐(朕)의 백성들을 놀라게 하는 것을 미워한다.’고 하여, 태평의 정치에 이르게 하였고, 기자(箕子)가 무왕(武王)058) 에게 고하기를, ‘백성은 음란한 붕당이 없고, 벼슬아치는 서로 비부(比附)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하여, 충후(忠厚)한 풍속을 이루었으니, 수천년이 내려와도 모두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려의 말년에 이르러 기강이 해이하여져서 붕당(朋黨)을 서로 만들고, 참소하기를 서로 좋아하여, 군신을 이간시키고 골육을 상잔(傷殘)하여 멸망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공경하여 생각하건대, 우리 태상왕(太上王)께서 천지(天地)·조종(祖宗)의 도움을 힘입어서 조선(朝鮮) 사직의 기업을 창조하시고, 과인에 이르러 어렵고 큰 일을 이어 지키니, 어찌 모두 함께 새로워지는 교화를 도모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남은 풍속이 끊어지지 않아서 사사로이 서로 비부(比附)하여 분경(奔競)을 일삼아, 모여서 남을 참소하고 난(亂)을 선동하는 자가 많도다. 만일 중한 법전을 써서 금령(禁令)을 내리지 않으면, 침윤(浸潤)의 참소와 부수(膚受)의 호소가 마음대로 행하여져, 장차 반드시 우리의 맹호(盟好)를 저해하고, 우리의 종실을 의심하며, 우리의 군신을 이간하는 데 이르고야 말 것이니, 고려 때보다 무엇이 나을 것이 있겠는가! 지금으로부터 종실·공후 대신(宗室公侯大臣)과 개국·정사 공신(開國定社功臣)에서 백료 서사(百僚庶士)에 이르기까지 각기 자기 직책에 이바지하여, 서로 사알(私謁)059) 하지 말고, 만일 원통하고 억울하여 고소할 것이 있거든, 각기 그 아문(衙門)이나 공회처(公會處)에서 뵙고 진고(陳告)하고, 서로 은밀히 참소하고 헐뜯지 말라. 어기는 자는 헌사(憲司)에서 주객(主客)을 규찰하여 모두 먼 지방에 귀양보내어, 종신토록 벼슬길에 나오지 못하게 하리라. 무릇 족친 가운데 삼사촌(三四寸)과 각 절제사(節制使)의 대소 군관(大小軍官)은 이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말을 만들고 일을 일으키는 것이 있으면, 죄가 같을 것이다. 만일 맡은 바 형조의 결사원(決事員)이면, 비록 삼사촌과 소속(所屬) 절제사의 처소에라도 문병과 조상(弔喪)을 제외하고는 또한 사알(私謁)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기는 자는 벌이 같을 것이다. 공신(功臣)의 경조(慶弔)와 영전(迎餞)은 이에서 제외된다. 아아! 백관을 통솔하고 호령을 반포하는 것은 너희 묘당(廟堂)의 직임이니, 나의 지극한 생각을 몸받아서 금령(禁令)을 엄하게 행하여 고려의 풍속을 일변해 고치고, 우(虞)나라·주(周)나라의 정치를 만회하여 조선 억만년의 기업을 영구토록 하라."
이때에 여러 공후가 각각 군사를 가지고 있어 사알(私謁)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어, 서로 참소하고 헐뜯었기 때문에 이러한 교서(敎書)를 내린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3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52면
- 【분류】사법-법제(法制) / 역사-고사(故事)
- [註 056]분경(奔競) : 엽관 운동(獵官運動). 벼슬을 얻기 위하여 권세 있는 집을 분주하게 찾아다니던 일. 조선조 때 와서 분경 금지법(奔競禁止法)을 법제화하였음.
- [註 057]
용(龍) : 순임금 신하.- [註 058]
무왕(武王) : 주(周)나라의 임금. 문왕(文王)의 아들. 이름은 발(發). 여상(呂尙)을 태사(太師)로 삼아 아우 주공단(周公旦)과 더불어 은(殷)의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주(周) 왕조를 창건함.- [註 059]
사알(私謁) : 총애(寵愛)를 받는 신하나 비빈(妃嬪)이 임금에게 사적으로 청탁(請託)을 행하던 일. 청알(請謁).○下敎禁奔競:
王若曰, 若稽古昔, 舜命龍以朕堲讒說殄行, 震驚朕師, 而臻泰和之治; 箕子告武王以民無淫朋, 人無比德, 而成忠厚之風, 數千載之下, 皆可得想也。 至若前朝之季, 紀綱陵夷, 朋黨相結, 讒譖相尙, 離間君臣, 殘傷骨肉, 以至於亡。 恭惟我太上王, 賴天地祖宗之佑, 創朝鮮社稷之基, 至于寡人, 嗣守艱大, 盍圖所以咸與惟新之化哉? 然餘風未殄, 私相比附, 奔競聚會, 譖人扇亂者多矣。 若不用重典, 以示禁令, 浸潤膚受, 得以恣行, 將必至於阻我盟好, 疑我宗室, 間我君臣而後已。 與前朝奚擇哉? 繼自今宗室、公侯、大臣、開國定社功臣, 至于百僚、庶士, 各供乃職, 毋相私謁。 如有冤抑告訴, 許於各其衙門及公會處, 謁見陳告, 毋相隱密讒毁。 違者, 憲司糾察, 主客皆竄遐方, 終身不齒。 凡族中三四寸及各節制使大小軍官, 不在此限, 然有造言生事, 罪同。 若所司刑曹決事員, 則雖於三四寸及所屬節制使處, 除問疾弔喪外, 亦不許私謁, 違者罰同。 功臣慶弔迎餞, 不在此限。 於戲! 摠百官頒號令, 惟爾廟堂之職, 體予至懷, 痛行禁令, 一革前朝之俗, 挽回虞、周之治, 以永朝鮮億萬年之業。
是時, 諸公侯各擁兵衆, 私謁成風, 交相譖毁, 故下此敎。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3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52면
- 【분류】사법-법제(法制) / 역사-고사(故事)
- [註 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