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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5권, 태조 7년 12월 17일 기미 1번째기사 1398년 명 홍무(洪武) 31년

조준 조박 하윤 등이 《사서절요》를 찬술하여 바치며 올린 전문. 사냥의 법도에 대하여 논하다

좌정승 조준·겸 대사헌(大司憲) 조박(趙璞)·정당 문학(政堂文學) 하윤·중추원 학사(中樞院學士) 이첨(李詹)·좌간의 대부(左諫議大夫) 조용(趙庸)·봉상 소경(奉常少卿) 정이오(鄭以吾) 등이 《사서절요(四書切要)》를 찬술(撰述)하여 바쳤다. 바친 전문(箋文)은 이러하였다.

"군주의 정치는 심학(心學)에 매여 있으니, 마땅히 마음이 정밀하고 전일하여 중용(中庸)의 도(道)를 꼭 잡아 쥐고서, 함양(涵養)하고 확충(擴充)하여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근본을 삼아야 될 것이니, 성현(聖賢)의 글을 두루 뽑아 보건대,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대학(大學) 》에서 대개 이를 다 말하였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하늘이 주신 성학(聖學)으로 계속하여 밝히고 공경하셨는데, 당초에 왕위에 오르실 때부터 사서(四書)를 관람하여 공자(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의 학문을 밝히고자 하였으나, 다만 제왕의 정치를 보살피는 여가에 두루 관람하고 다 궁구(窮究)하기가 용이(容易)하지 않은 까닭으로, 신 등에게 명하여 그 절요(節要)한 말을 찬술(撰述)하여 바치게 하셨습니다.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성현(聖賢)의 말씀은 지극한 도(道)와 정밀한 뜻이 있지 아니한 것이 없지마는, 그러나 그 의논을 세움이 혹 사건에 따라 나오고, 혹은 묻는 사람의 공부의 높고 낮음으로 인하여 얕고 깊음과 상세하고 소략한 같지 않음이 있게 되니, 그 군주의 학문에 있어서 진실로 마땅히 먼저 하고 뒤에 해야 할 바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삼가 그것이 학술(學術)에 간절하고 치도(治道)에 관계되는 것을 주워모아 정서(淨書) 장정(粧幀)하여 바치오니, 삼가 바라옵건대 연회(燕會)하는 사이에 때때로 관람하여 심학(心學)을 바르게 하고, 간략(簡略)한 데로부터 해박(該博)한 데로 들어가서 《사서(四書)》의 대지(大旨)를 다 알아내어,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알고, 학문이 날마다 나아가고 달마다 진보된다면, 장차 시종(始終)이 흡족하고 덕업(德業)이 높아져서, 성현(聖賢)의 도(道)가 다시 밝아지고 태평의 정치가 이루게 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임금이 이를 옳게 여겨 들었다. 이날에 임금이 경연(經筵)에 앉아서 강론(講論)으로 인하여 황녕(荒寧)의 뜻을 유관(柳觀)에게 물으니, 유관이 대답하였다.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여색(女色)에 미치[色荒]고 사냥에 미치게 된[禽荒]다.’ 하였으니, 미치[荒]게 된다는 것은 군주의 마땅히 경계해야 될 바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사냥하는 일은 반드시 할 수 없단 말인가?"

유관이 대답하였다.

"봄에 사냥[春蒐]하고, 여름에 사냥[夏苗]하고, 가을에 사냥[秋獮]하고, 겨울에 사냥[冬狩]하는 것은 옛날의 제도이오나, 다만 종묘(宗廟)의 제공(祭供)을 위한 때문이며, 사냥을 좋아한 것은 아닙니다. 뒷세상의 군주들은 그 정욕(情欲)을 방자히 하여, 그 사냥을 마음대로 하면서 각처로 돌아다니며 놀기를 절도(節度)가 없게 되니, 매우 옳지 못한 일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그렇다."

이서(李舒)가 나아가 말하였다.

"군주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 일에 즐겨해서는 안 되니, 만약 물건을 가지고 노는 일에 치우치게 된다면 소중한 자기의 본심(本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경연(經筵)을 열어 유신(儒臣)을 나아오게 하여 성현(聖賢)의 도(道)를 강론해 밝히는 것은 바로 이제(二帝)·삼왕(三王)의 정치를 따르고자 하는 것인데, 옛사람의 글귀를 따서 풍월(風月)을 읊조리는 것은 소중한 자기의 본심(本心)을 잃게 되는 것으로, 군주의 정치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임금이 이 말을 옳게 여기었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5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41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사상-유학(儒學) / 왕실-경연(經筵)

○己未/左政丞趙浚、兼大司憲趙璞、政堂文學河崙、中樞院學士李詹、左諫議大夫趙庸、奉常少卿鄭以吾等, 撰《四書切要〔四書節要〕以進。 箋曰:

人主之治, 係於心學, 當精一執中, 涵養擴充, 以爲修齊治平之本。 歷選聖賢之書, 《語》《孟》《庸》《學》, 蓋盡之矣。 恭惟殿下, 天縱聖學, 緝熙敬止, 當初卽位, 欲覽四書, 以明之學, 第萬機之暇, 未易周覽而盡究者, 故命臣等, 撰其節要之言以進。 臣等竊惟, 聖賢之言, 莫非妙道精義之所在, 然其立言, 或因事而發, 或因問者之高下, 而有淺深詳略之不同, 其於人主之學問, 誠宜有所先後。 謹掇其切於學術, 關於治道者, 繕寫粧䌙以獻。 伏望淸讌之間, 時賜睿覽, 以正心學, 由約而博, 以盡四書之大旨, 溫故而知新, 日就而月將, 則將見終始浹洽, 德業隆崇, 聖賢之道復明, 雍熙之治可致矣。

上嘉納之。 是日, 上坐經筵, 因講問荒寧之義於柳觀, 對曰: "古人云: ‘色荒禽荒。’ 夫荒者, 人君所當戒也。" 上曰: "然則田狩之事, 必不爲乎?" 對曰: "春蒐夏苗秋獮冬狩, 古之制也。 但爲宗廟之供, 非好田弋耳。 後世之君, 恣其情欲, 縱其畋獵, 以至盤遊無度, 甚不可也。" 上曰: "然。" 李舒進曰: "人君不可樂於玩物也。 若偏於玩物, 則喪其心志矣。 開經筵而進儒臣, 講明聖賢之道, 直欲追二帝三王之治耳。 尋章摘句, 弄詠風月, 適足以喪志, 非人君致治之道也。" 上然之。


  • 【태백산사고본】 3책 15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41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사상-유학(儒學) /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