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릉과 경안백 능실의 화려함을 사사로이 비난한 전시를 귀양보내고 박수기·황희 등을 폄직시키다
전시(田時)를 갑주(甲州)로 귀양보내었다. 처음에 공조 전서(工曹典書) 유한우(劉旱雨)가 동북면으로부터 돌아와서 전시의 집에 이르니, 전시가 동북면의 일을 묻는지라 한우(旱雨)가 대답하였다.
"순릉(純陵)076) 을 옮겨 장사하는데 석양(石羊)·석호(石虎)·석실(石室)의 난간이 매우 사치하고 화려합니다."
전시가 말하였다.
"국군(國君)의 능실(陵室)이면 될 수 있겠지마는, 순릉(純陵)이 이와 같음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한우가 말하였다.
"경안백(敬安伯)의 능실(陵室)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전시가 말하였다.
"순릉(純陵)도 또한 오히려 옳지 못한 일인데, 하물며 경안(敬安)의 무덤이 어찌 능침(陵寢)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한우가 또 준원전(濬源殿)을 창립한 일을 말하니, 전시가 말하였다.
"장생전(長生殿)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준원전(濬源殿)은 지을 필요가 없는데, 전서(典書)가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우가 전시의 말로써 위에 아뢰니, 임금이 노하여 전시를 형문(刑問)하게 하고, 또 서로 더불어 논설(論說)한 사람을 국문(鞫問)하게 하니, 전시가 말하였다.
"나의 의사로써 한우에게 물었을 뿐이고 더불어 논설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에 중한 형벌을 가하게 하니, 그제야 말하였다.
"황희(黃喜)와 박수기(朴竪基)입니다."
또 물으니 말하였다.
"처부(妻父) 유원정(柳爰廷)·숙부 전유(田宥)와 조화(趙和)·신효창(申孝昌)·윤신달(尹莘達) 등 10인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전시가 언관(言官)으로 있으니, 무릇 없애기 어려운 폐해(弊害)가 있으면 의리상 마땅히 진청(陳請)해야 될 것인데도, 일찍이 한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에 잡인(雜人)과 더불어 사적으로 서로 나를 비방했으니, 죄가 이보다 큰 것이 없다. 그러나 우선 이를 사유(赦宥)하여 다만 외방(外方)에 귀양보내게 하고, 박수기와 황희는 직책이 언관(言官)에 있으면서 그 직책을 충실히 하지 않고 사적으로 나라 일을 의논했으니 마땅히 모두 외방(外方)으로 내쫓아야 되겠다."
이에 전시를 갑주(甲州)로 귀양보내고, 박수기는 경성 교수관(鏡城敎授官)으로, 황희는 경원 교수관(慶源敎授官)으로 폄직(貶職)시켰으며, 유원정(柳爰廷)은 개국 공신(開國功臣)이며, 윤신달(尹莘達)은 원종 공신(原從功臣)인 이유로써 모두 논죄(論罪)하지 말게 하고, 그 나머지 사람은 모두 죄를 면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29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사(宗社) / 정론(政論)
- [註 076]순릉(純陵) : 도조(度祖)의 비(妃) 순경 왕후(順敬王后) 박씨의 능.
○戊寅/流田時于甲州。 初工曹典書劉旱雨, 回自東北面, 至時家, 時問東北面事, 旱雨答曰: "純陵遷葬, 石羊石虎石室欄干, 極爲侈麗。" 時曰: "若國君陵室則可矣, 純陵如此, 無乃過乎?" 旱雨曰: "敬安伯陵室亦如此。" 時曰: "純陵且猶不可。 況敬安之墓, 豈可同於陵寢哉?" 旱雨又以濬源殿創立之事言之, 時曰: "長生殿已成矣, 濬源殿不必作也。 典書不得辭其責矣。" 旱雨以時之言聞, 上怒, 命刑問時, 且鞫相與論說者, 時曰: "予以意問旱雨耳, 無與論說者。" 及加重刑, 乃曰: "黃喜、朴竪基。" 又問之, 曰: "妻父柳爰廷、叔父田宥及趙和、申孝昌、尹莘達等十餘人。" 上曰: "時在言官, 凡有弊瘼, 義當陳請。 曾不一言, 乃與雜人, 私相謗訕, 罪孰大焉? 然且宥之, 只令流外。 朴竪基、黃喜職在言官, 不供其職, 私議國事, 宜皆斥于外。" 流時于甲州, 貶竪基 鏡城敎授官, 黃喜 慶源敎授官。 以柳爰廷開國功臣, 尹莘達原從功臣, 俱勿論, 餘皆得免。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29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사(宗社)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