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 등이 사초를 올리려 하자 사관 신개가 불가함을 말하며 올린 상소
감예문춘추관사(監藝文春秋館事) 조준 등이 고려 왕조의 공민왕(恭愍王)으로부터 공양군(恭讓君)065) 때까지는 이미 《실록(實錄)》을 편수(編修)했으므로, 전하(殿下)의 임신년(壬申年)066) 으로부터 그 이후의 사초(史草)를 거두어 임금이 보도록 바치고자 하니, 사관(史官) 신개(申槪) 등이 소(疏)를 올리었다.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옛날에 열국(列國)이 각기 사관을 두고 임금의 언행(言行)·정사(政事)와 신하의 시비 득실(是非得失)을 모두 바른 대로 쓰고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그 시대의 임금과 신하는 그 시대의 역사를 숨겨서 뒷세상에 전하였으므로, 호령(號令)과 언어·행동의 즈음에 이로 인하여 경계로 삼아 감히 그릇된 짓을 하지 못하였으니, 그 사관(史官)을 설치한 뜻이 깊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방현령(房玄齡)에게 이르기를, ‘앞 시대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을 임금에게 보지 못하게 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니 현령이 대답하기를, ‘사관은 거짓으로 칭찬하지 않으며 나쁜 점을 숨기지 않으니, 임금이 이를 보면 반드시 노하게 될 것이므로 감히 임금에게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태종은 이에 현령에게 명하여 순서대로 편찬하여 올리게 하니, 현령이 《실록(實錄)》을 편찬하여 만들어 책이 이루어지매 이를 올렸지마는, 말이 은근히 숨긴 것이 많았습니다. 대저 태종의 현명으로서는 마땅히 바른 대로 쓰는 일에 싫어할 점이 없을 것인데도, 현령 같은 한 세상의 명철한 재상이 오히려 사실을 숨기고 피하여 감히 바른 대로 쓰지 못했는데, 하물며 뒷세상의 군주들은 태종에게 미치지 못하면서도 그 시대의 역사를 보고자 한다면, 아첨하는 신하가 어찌 현령의 사실을 숨기고 피하는 것뿐이겠습니까?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모든 하는 일이 문득 삼대(三代)067) 를 본받는데, 근일에는 특별히 교지(敎旨)를 내려서 이 시대의 역사를 보고자 하므로, 신 등은 교지를 듣고는 삼가하고 두려워합니다. 간절히 생각하옵건대, 당나라 태종도 이를 보고 뒷세상의 비난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곧 태종이 덕망을 잃은 일로써 어찌 전하께서 마땅히 본받을 일이겠습니까?
을해년에 전하께서 또한 이를 관람하고자 하셨다가 마침내 그치고 말았으니, 일대(一代)의 입법(立法)이 엄했으며 만세(萬世)의 공론(公論)이 성취되었는데, 지금 또 이러한 명령이 있게 되니, 신 등은 알지 못하지마는, 그 옳고 그른 것을 보아서 뒷세상의 경계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거짓과 실상을 열람하여 그 이치에 틀린 점을 바루고자 하는 것입니까? 추측하건대, 또한 그 다 기록되지 못한 것을 상고하여 그것을 다 쓰도록 하려는 것입니까? 만약 훗날의 경계로 삼고자 한다면, 마땅히 옛날의 성현(聖賢)의 남긴 글을 보고서 그 치란 흥망(治亂興亡)의 자취를 살펴보면 될 것인데, 어찌 반드시 이 시대의 역사를 보아야만 경계할 줄을 알겠습니까? 그 이치에 틀린 점을 바루고저 한다면, 사신(史臣)된 사람이 진실로 널리 묻고 찾아서 반드시 그 사실을 참으로 알아낸 후에야 이를 쓰게 되는데, 어찌 그 풍문(風聞) 억견(臆見)과 부박(浮薄) 허탄(虛誕)한 일을 기록하여 뒷세상 사람을 속이겠습니까? 사실을 다 쓰도록 하려고 한다면, 나라의 제도에 충원(充員)된 수찬(修撰)으로부터 직관(直館)에 이르기까지 각기 보고 들은 것에 의거하여 사초(史草)를 기록하여 만들게 되니, 그 수십 인의 보고 들은 것이 어찌 모두 빠뜨려져서 기록되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신 등은 알 수 없습니다만, 전하께서 역사를 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일입니까?
가만히 삼가 생각하옵건대, 창업(創業)한 군주는 자손들의 모범이온데, 전하께서 이미 이 당시의 역사를 관람하시면 대를 이은 임금이 구실을 삼아 반드시, ‘우리 선고(先考)께서 한 일이며 우리 조고(祖考)께서 한 일이라.’ 하면서, 다시 서로 계술(繼述)하여 습관화되어 떳떳한 일로 삼는다면, 사신(史臣)이 누가 감히 사실대로 기록하는 붓을 잡겠습니까? 사관(史官)이 사실대로 기록하는 필법(筆法)이 없어지므로서 아름다운 일과 나쁜 일을 보여서 권장하고 경계하는 뜻이 어둡게 된다면, 한 시대의 임금과 신하가 무엇을 꺼리고 두려워해서 자기의 몸을 반성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날에 역사를 관람하는 일은 아마 자손들에게 좋은 계책을 전해 주는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태평한 시대를 당하여 현명한 군주와 충량(忠良)한 신하가 서로 만나서 정교(政敎)와 호령(號令)이 더할나위 없이 좋고 아름다워서 모두가 모범할 만하여 간책(簡策)에 빛나게 되었는데, 진실로 전하께서 이를 한 번 보시고 난다면, 아마 뒷세상의 사람들이 반드시, ‘그때 임금이 친히 보신 것이니 그 사신(史臣)이 어찌 즐거이 사실대로 쓰겠는가?’ 할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전하의 성대한 덕망과 업적(業績)으로 하여금 도리어 거짓 글이 되어 신용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니, 어찌 태평한 시대의 성대한 전례(典禮)에 누(累)가 있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특별히 뛰어나신 생각을 두어 윤허한다는 교지(敎旨)를 내리어, 역사를 보시려는 명령을 정지시키시면 공도(公道)에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임금이 윤허하지 않고서 즉시 명령하였다.
"지금 친히 관람하고자 하는 것은 착하고 악한 행실의 자취를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년의 왕위에 오를 때에 임금과 신하 사이의 몰래 서로 이야기한 말을 대부분 사신(史臣)이 알지 못한 것이 많다. 이행(李行)이 일찍이 지신사(知申事)가 되었을 때에 그 사실을 기록한 것이 또한 바르지 못했으니, 그 외의 사신이 어찌 능히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이야기한 말을 다 알겠는가? 고려 왕조 공민왕으로부터 그 이후로는 이미 편수한 역사와 임신년 이후의 사초(史草)를 가려 내어서 바치게 하라."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27면
- 【분류】정론(政論) / 역사-편사(編史)
- [註 065]
○丙辰/監藝文春秋館事趙浚等欲以前朝恭愍王至恭讓君已修實錄及自殿下壬申年以來史草收納, 監進史官申槪等上疏曰:
竊惟古者列國, 各有史官, 君上之言行政事, 臣僚之是非得失, 皆直書不諱。 故當代君臣, 秘其時史, 以遺後世, 而於號令言動之際, 因以爲戒, 而莫敢爲非, 其置史之意深矣。 昔唐 太宗謂房玄齡曰: "前世史官所記, 不令人主見之, 何也?" 玄齡對曰: "史官不虛美不隱惡, 人主見之必怒, 故不敢獻也。" 太宗乃命玄齡, 撰次以進, 玄齡編爲實錄, 書成上之, 而語多微隱。 夫以太宗之賢, 宜無嫌於直書, 玄齡一代之明相, 猶且隱避, 不敢直書。 況後世之君, 或不及太宗, 而欲見時史, 則佞諛之臣, 豈啻玄齡之隱避乎? 恭惟殿下, 凡所施爲, 動法三代, 而近日特下敎旨, 欲觀時史, 臣等聞敎祗懼。 竊謂唐 太宗見之, 而不免後世之譏。 此乃太宗之失德, 豈殿下之所當法乎? 歲在乙亥, 殿下亦欲觀覽而遂止, 一代之立法嚴矣, 萬世之公論得矣。 今又有是命, 臣等未知欲觀其是非, 以爲後世之戒乎? 欲閱虛實, 以正其訛謬乎? 抑亦考其未盡記者, 而使之悉書乎? 若以爲後日之戒, 則宜觀古昔聖賢之遺書, 以鑑其治亂興亡之迹。 何必覽時史, 然後知戒乎? 欲正其訛謬, 則爲史臣者, 固當廣詢博訪, 必眞知其實, 然後書之。 豈錄其風聞臆見浮誕之事, 以欺後世哉? 以爲使之悉書, 則國制自充修撰, 以至直館, 各據見聞, 錄爲史草。 其數十人之見聞, 豈皆遺失而不錄哉? 臣等未知殿下之覽史, 欲何爲也? 竊伏惟念, 創業之君, 子孫之所儀刑也。 殿下旣覽時史, 則繼世之君藉口, 必曰: "我考之所爲也, 我祖之所爲也。" 更相繼述, 習以爲常, 則史臣誰敢秉直筆乎? 史無直筆, 而示美惡垂勸戒之意晦矣, 則一時君臣, 何所忌憚而修省乎? (則)今日覽史之擧, 殆非貽厥孫謀之道也。 且當聖代, 明良相遇, 政敎號令, 盡善盡美, 皆可師法, 輝映簡策。 苟殿下一覽之, 恐後世之人必將曰: "時君所親覽也, 其史臣豈肯直書乎", 則使殿下盛德大業, 反爲虛文, 而無以取信矣。 豈非有累於明時之盛典乎? 伏望特留神念, 下兪允之旨, 停覽史之命, 公道幸甚。
上不允, 卽命曰: "今所以親覽者, 非欲觀善惡之迹。 壬申卽位之時, 君臣之間, 潛相言語, 率多史臣之所不知也。 李行嘗爲知申事, 其記事亦不直, 其他史臣, 焉能盡知君臣之言語乎? 前朝恭愍王已來已修之史及壬申年以來史草, 擇出以進。"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27면
- 【분류】정론(政論)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