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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4권, 태조 7년 윤5월 11일 병술 2번째기사 1398년 명 홍무(洪武) 31년

간언을 수렴하고 공역을 그만두며 불교 배척할 것 등을 아뢴 이지의 상소

임금이 양부(兩府)에서 올린 글을 열람하니, 모두 토목(土木)의 역사(役事)를 빨리 그만두고 여관(女官)과 환관(宦官)의 관직을 도태 제거할 것이며,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정사를 청단(聽斷)하고, 군자를 친근히 하고 소인을 물리치는 것으로써 말하였는데,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이지(李至)의 말이 더욱 간절하였다. 그 대략은 이러하였다.

"군자를 친근히 하고 소인을 멀리 할 것이니, 《서경(書經)》에 ‘삼공(三公)은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린다.’ 하고, 또 ‘조석으로 가르쳐서 나의 덕을 보좌하라.’ 하였습니다. 옛날의 현명한 군주는 혹은 밤중의 앞자리에서 현명한 선비를 맞이하였으니 그 부지런함이 이와 같았습니다. 지금 전하(殿下)께서 대신(大臣)을 접견하는 날이 적은 까닭으로 경륜(經綸)의 말이 위에 통하지 못하오니, 삼가 바라옵건대, 날마다 현명한 선비와 대신을 접견하여 정치하는 방법을 강론한다면, 폐해는 고쳐지지 않는 것이 없으며, 이익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없어져서, 소인은 저절로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1. 간언(諫言)을 받아들여서 신하로서 임금에게 말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될 것입니다. 《서경》에 ‘나무가 먹줄을 맞으면 바르게 되고, 임금이 간언(諫言)을 따르면 성스럽게 된다.’ 하였는데, 옛날의 현철한 군왕은 성스러움이 스스로가 성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간하는 신하를 좌우에 두고 한 번 움직이는 것과 한 번 정지하는 것도 규간(規諫)을 하게 하여, 이에 따르기를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빨리 순종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간하는 신하가 소외(疎外)되었으므로, 전하의 잘하고 잘못한 일과 민정(民情)의 즐거움과 근심되는 일이 어디로부터 통할 데가 없게 되었으니, 원컨대 간하는 신하로 하여금 차례로 번을 들어 날마다 모시게 하여, 말하는 것은 시행하지 않는 것이 없게 하고 간하는 것은 듣지 않는 것이 없게 한다면, 아랫사람의 사정이 위에 통하여 임금의 총명이 가리워지는 폐단은 없을 것입니다.

1. 궁금(宮禁)의 호위를 엄격하게 할 것입니다. 옛날의 군주는 구중 궁궐 안에 깊숙이 거처하여, 낮에는 반드시 밖에 거처하고 밤에는 반드시 안에 거처하여 천시(天時)에 순응하고 내외(內外)의 한계를 엄하게 하였는데, 지금은 별전(別殿)에 치우치게 거처하면서 병사(兵士)들과 너무 친근하니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정전(正殿)에 팔짱을 끼고 높이 앉아서 천시(天時)에 순응하고 내외(內外)의 한계를 엄하게 하여, 동정(動靜)을 법대로 하고 숙위(宿衛)를 엄하게 할 것입니다.

1. 공역(工役)을 그만두게 할 것입니다. 《논어(論語)》에 ‘우왕(禹王)은 궁실은 낮게 짓고 구혁(溝洫)054) 에 힘을 다하였다.’ 하였으니, 옛날의 군주는 그 궁실을 화려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마는, 다만 그것이 재물을 손상시키고 백성을 해치는 것이 두려워서 감히 공역(工役)을 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지금 농사철에 비가 오지 않아서 백성이 기근(饑饉)을 만나고 재변(災變)이 자주 일어나니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원컨대, 서울 각 곳의 영선(營繕)의 공역은 일체 모두 정지시켰다가 잠정적으로 풍년이 들기를 기다려 그 공역을 마치게 할 것입니다. 혹은 영선(營繕)을 정도에 지나치게 하여 일정한 때없이 백성을 노역(勞役)하는 것으로써 충성을 바치는 사람은 이를 물리칠 것입니다.

1. 불교(佛敎)를 배척할 것입니다. 불교에 관한 일은 성인(聖人)이 경계한 바입니다. 그 도(道)는 인륜(人倫)을 끊고 세상 밖에 몸을 두고는 허무·괴탄(怪誕)의 설(說)로써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속여서 혹은 가람(伽藍)이라 일컫기도 하고, 혹은 비보사찰(裨補寺刹)이라 일컫기도 하여, 온갖 방법으로 사찰(寺刹)을 건축하여 승려(僧侶)의 무리가 숲처럼 많아서 하는 일 없이 백성의 힘에 먹게 되고, 혹은 불상(佛像)을 만들기도 하고, 혹은 불서(佛書)를 인쇄하기도 하여 의발(衣鉢)을 만들어 안거(安居)에 제공하고, 원문(願文)을 기술하여 연화(緣化)를 일컫고는 서울과 지방에 마음대로 다니면서 어리석은 백성을 속이게 되며, 심한 것은 위협해 따르게 하여 한정이 있는 재산을 소비하여 한이 없는 욕심을 채우게 되니 국가의 큰 근심입니다. 어찌 죄지은 사람이 부처에게 뇌물을 바치고서 면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원컨대, 그 원문(願文)을 회수하고 그 연화(緣化)를 금하게 하며, 혹은 내탕(內帑)으로써 절에 뇌물을 바치고, 혹은 내전(內殿)에서 기도하여 재앙을 물리치게 하는 등의 일도 또한 모두 금단(禁斷)시키고, 조심하고 삼가며 두려워하고 반성한다면, 모든 복이 다 이르게 될 것이니, 어찌 불교에 힘입겠습니까? 그 혹시 재상(宰相)·사대부(士大夫)·환관(宦官)의 무리들도 감히 사찰(寺刹)을 건축하는 일로써 말을 올리는 사람은 엄격히 징계하여 내쫓게 할 것입니다.

1. 군사의 정원(定員)을 마련(磨鍊)할 것입니다. 외방(外方)의 수군(水軍)은 처음에는 군사의 정원을 정하여 아버지가 좌령(左領)이 되면 아들은 우령(右領)이 되고, 형이 좌령이 되면 아우는 우령이 되게 하였으며, 또한 장정(壯丁)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 여정(餘丁)을 삼게 한 까닭으로 백성이 심히 이를 괴롭게 여겼으며, 혹은 왜적(倭賊)에게 사로잡히기도 하고 혹은 조운(漕運)하는 데 배가 부서지기도 하고 혹은 장기간 번(番)을 들어 배 타는 일로 인하여, 그 노역을 감내하지 못해서 도망하는 사람이 서로 잇따르게 되어, 군사의 정원이 날로 줄어들므로, 그 주군(州郡)으로 하여금 기일에 맞추어 수효를 채우게 하여, 온갖 방법으로 침해하여 소요를 일으키니, 주군(州郡)이 떠들썩하옵니다. 원컨대, 주군에 명령하여 그 정원 수효 내의 시립군(時立軍)과 관군(官軍)의 신접인(新接人) 등에서 그 정원 수효를 충당하여 군적(軍籍)을 고쳐 마련(磨鍊)하고, 그 고을에서 정원을 다 충당하지 못하는 것은 그 원 수효를 줄이게 하며, 또 1호(戶) 내에 그 장정(壯丁)이 2, 3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으면 군사 1명만 세우게 하고, 그 장정이 4, 5명이나 되는 사람은 2명을 자유롭게 정하여 차례대로 상정(詳定)하되, 비록 남은 장정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하게 한다면 백성의 힘을 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쓸데없는 관원(官員)을 도태(淘汰)시킬 것입니다. 충신(忠信)으로 대우하고 봉록(俸祿)을 후하게 해 줌은 관인(官人)을 권려(勸勵)하는 것인데, 지금은 봉록(俸祿)을 먹는 사람이 난잡하게 많으니 도태시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검교(檢校)와 옹주(翁主)·택주(宅主)055) ·여관(女官) 등의 관직은 일체 도태 제거할 것입니다. 또 지금의 외방(外方)에서 녹전(祿田)을 더 정하매 운반하는 일이 더욱 어렵게 되니, 모두 이를 제거하게 한다면 충신(忠信)에 후하게 되어 백성이 근심과 탄식이 없어질 것입니다."

임금이 명하여 도당(都堂)에 내리어 궁궐 조성 도감(宮闕造成都監)을 폐하고 그 사무를 선공감(繕工監)에 귀속(歸屬)시키게 하며, 서울과 지방의 공장(工匠)을 놓아 보내고 검교(檢校)의 각 품관(品官)과 궁주(宮主)·옹주(翁主)·택주(宅主)·여관(女官)은 녹(祿)을 정지하게 하되, 다만 개국 공신(開國功臣)의 처(妻)·모(母)인 옹주(翁主)에게는 특별히 녹(祿)을 주도록 하였다. 또 도승지 이문화로 하여금 사사(使司)에 묻기를,

"경 등의 말한 것이 비록 간절하지마는, 그러나 그 사실을 바로 쓰지 않고 그 사람을 바로 가리키지 않고는 은근히 풍자(諷刺)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고, 또 말하였다.

"내가 지난날에 아침 일찍 조정에 나가서 정사를 보지 않은 것은 질병이 있어 능히 일찍 일어나지 못한 까닭이었으니, 지금부터는 내가 마땅히 병을 견디어 조회를 보도록 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24면
  • 【분류】
    정론(政論) / 사상(思想) / 건설-건축(建築) / 왕실-국왕(國王) / 군사(軍事) / 행정(行政)

  • [註 054]
    구혁(溝洫) : 전답(田畓)사이에 있는 도랑.
  • [註 055]
    택주(宅主) : 정2품의 정헌 제군(正憲諸君)과 종2품의 가정 제군(嘉靖諸君)의 처(妻)의 작호(爵號).

○上閱兩府所上書, 皆以亟罷土木之役, 汰去女官宦官之職, 早朝聽政, 親君子退小人爲言, 知中樞院事李至之言尤切。 其略曰:

親君子遠小人。 《書》曰: "三公論道經邦。" 又曰: "朝夕納誨, 以輔台德。" 古之賢君, 或夜半前席, 以迎賢士, 其勤如此。 今殿下接見大臣之日少, 故經綸之言, 不得上達。 伏望日接賢士大臣, 講論治道, 則弊無不革, 利無不興, 而小人自退矣。 一, 納諫諍開言路。 《書》曰: "木從繩則正, 后從諫則聖。" 古先哲王, 聖不自聖, 置諫臣於左右, 一動一靜, 莫不規諫, 而從之也如流。 今也諫臣疎外, 殿下之得失、民情之休戚, 無自而得達。 願使諫臣輪番日侍, 言無不行, 諫無不聽, 則下情上達, 無雍蔽之患矣。 一, 嚴禁衛。 古之人君, 深居九重之內, 晝必居外, 夜必居內, 以順天時, 以嚴內外。 今也偏居別殿, 與戎士暱近, 甚可慮也。 願殿下, 高拱法宮, 順天時嚴內外, 動靜以法, 宿衛有嚴。 一, 罷工役。 《語》曰: "卑宮室, 而盡力乎溝洫。" 古之人君, 非不欲美其宮室也, 惟恐其傷財害民, 不敢輕役。 今農月不雨, 而民罹饑饉, 災變屢興, 甚可畏也。 願京都各處營繕之役, 一皆停罷, 姑待歲稔, 使畢其功。 或以營繕過度、無時役民爲納忠者, 斥之。 一, 斥浮屠。 浮屠事, 聖人所戒。 其爲道也, 滅絶人倫, 置身物外, 以虛無怪誕之說, 誑人耳目, 或稱(茄)〔伽〕 藍, 或稱裨補, 營繕百端。 緇衣之流, 總如林木, 坐食民力, 或造佛像, 或印佛書, 作衣鉢供安居, 述願文稱緣化, 橫行中外, 誑誘愚民, 甚者刼從之, 糜有限之産, 塡無窮之欲, 國家之深患也。 安有作罪者, 賄賂於佛而可免乎? 願收其願文, 禁其緣化, 或以內帑納賂於寺, 或內殿祈禳等事, 亦皆禁斷, 小心翼翼, 恐懼修省, 則諸福畢至, 何賴乎浮屠? 其或宰相士大夫宦官之類, 敢以營繕浮屠之事進言者, 痛懲放斥。 一, 鍊軍額。 外方水軍, 初定軍額, 父爲左領, 子爲右領, 兄爲左領, 弟爲右領, 又有一丁則給他人爲餘丁, 故民甚苦之。 或被擄於賊, 或敗船於漕轉, 或因長番騎船, 不堪其役, 逃潰相續, 軍額日減。 令其州郡, 剋期充數, 侵擾百端, 州郡騷然。 願令州縣, 其額數內, 時立軍及官軍新接人等, 充其額數, 改鍊軍籍, 其州未盡充額者, 減其元數。 又一戶內, 有二三其丁者, 立軍一名; 四五其丁者, 左右二名, 以次詳定, 雖有餘丁, 莫給他人, 則庶可寬民力矣。 一, 汰冗官。 忠信重祿, 所以勸士也, 今也食祿煩冗, 不可不汰。 其檢校、翁主、宅主、女官等職, 一行汰去。 且今之外方, 加定祿田, 轉輸之功尤難, 皆令除之, 則可以厚於忠信, 而民無愁歎矣。

上命下都堂, 罷宮闕造成都監, 以其事務歸于繕工監, 放京外工匠。檢校各品與宮主、翁主、宅主、女官停祿, 唯開國功臣妻·母翁主, 特許頒祿。 又使都承旨李文和, 問于使司曰: "卿等所言雖切, 然不直書其事、直指其人, 而以微諷, 何也?" 又曰: "予於往日, 不視朝衙者, 以有疾病, 不能早起故也。 自今吾當力疾視朝矣。"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24면
  • 【분류】
    정론(政論) / 사상(思想) / 건설-건축(建築) / 왕실-국왕(國王) / 군사(軍事) / 행정(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