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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4권, 태조 7년 5월 13일 기미 3번째기사 1398년 명 홍무(洪武) 31년

흥천사 감주 상총이 선·교 양종의 영수를 뽑아 사찰을 주관케 할 것 등을 건의한 글

흥천사(興天社)의 감주(監主) 상총(尙聰)이 글을 올리었다.

"선(禪)은 부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의 말씀이오라, 그것이 임금을 장수(長壽)하게 하며, 나라를 복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넓게 생각하건대, 전하(殿下)께서는 전생(前生)의 원력(願力)을 받들어 땅을 보아 도읍을 세워, 모든 관사(官司)가 이미 정돈되고, 여러 직무가 이미 화합(和合)하여졌는데, 다음에 도성(都城)의 안에 절을 처음 세워 흥천(興天)이란 칭호를 내리시고 본사(本社)에서 선(禪)을 닦게 하시니, 그 불조(佛祖)033) 를 공경하고 믿어서 용천(龍天)034) 에게 보답이 있기를 바라는 뜻은 지극히 깊고 간절하셨습니다. 이에 산야승(山野僧)인 상총(尙聰)에게 명하여 주석(主席)으로 삼게 하시니, 신(臣)이 이 마음을 아주 결백하게 하여 정법(正法)을 널리 드날려 복을 축원하는 직책을 다하지 않겠습니까마는, 대저 불사(佛寺)의 문중(門中)에서는 참선(參禪)이 제일이오니, 상성(上性)의 사람이라면 몇 날 걸리지 않아서 성공하여 투철한 지혜를 발명할 수 있고, 그 혹시 그렇지 못하더라도 바르게 화두를 낼 즈음에 불조(佛祖)가 환희(歡喜)하고 용천(龍天)이 경신(敬信)하게 되는 것이오나, 고려 왕조의 말기에는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이 이익과 명예만을 탐내어 유명한 사찰(寺刹)을 다투어 차지하여 그 선(禪)을 닦고 교(敎)를 넓히는 곳은 겨우 한두 개만이 남아 있었으니, 어찌 국가에서 비보 사찰(裨補寺刹)을 창건한 본뜻이겠습니까? 조사(祖師) 진각(眞覺)035) 이 말씀하시기를, ‘선도(禪道)는 국운(國運)을 연장시키고, 《지론(智論)》036) 은 이웃나라의 병란(兵亂)을 진압한다.’ 하였는데, 대체 어찌 증거가 없이 우리를 속이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지금부터 선종과 교종 중에서 도덕과 재행(才行)이 영수(領袖)가 될 만한 사람을 가려서 서울과 지방의 유명한 사찰(寺刹)을 주관하게 하되, 선(禪)을 맡은 사람에게는 선(禪)을 설명하면서 불자(拂子)037) 를 잡게 하고, 교(敎)를 주관한 사람에게는 경(經)을 강(講)하고 율(律)을 설명하게 하여 그 후진(後進)들로 하여금 선종(禪宗)은 《전등록(傳燈錄)》038) 의 염송(拈頌)을, 교종(敎宗)은 경·율(經律)039) 의 논소(論疏)를 절(節)을 따라 강습시켜, 세월이 오래가면 뛰어난 인물과 덕망이 높은 인물이 어느 절에도 없는 데가 없을 것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이미 본사(本社)라 일컬었으니 그 서울과 지방의 유명한 사찰도 마땅히 송광사(松廣寺)040) 의 제도를 모방하여 모두 본사(本社)의 소속으로 삼아서 서로 규찰(糾察)하게 한다면, 그 법을 만들어 복을 기도하는 일에 있어서 비록 점점 쇠퇴(衰頹)하고자 하더라도 되지 않을 것인데, 근래에는 법을 만드는 규정이 모두 중국 중을 받들어 본받고 그 단독의 결정을 얻지 못하게 되니, 이른바 ‘범을 그리려다가 되지 않으매 도리어 강아지를 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송광사의 조사(祖師)인 보조(普照)041) 의 남긴 제도를 강(講)하여 이를 시행하고 기록하여 일정한 법으로 삼고, 또한 중의 무리들로 하여금 조석으로 감화 수련하게 한다면, 위로는 전하께서 불도(佛道)를 세상에 널리 펴게 한 은혜를 보답할 것이오니, 삼가 바라옵건대, 중앙과 지방에 반포(頒布)하여 영구한 세대에 전하게 한다면 어찌 대단히 국가에 이롭지 않겠습니까?"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22면
  • 【분류】
    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註 033]
    불조(佛祖) : 석가모니.
  • [註 034]
    용천(龍天) :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천룡팔부(天龍八部). 천룡팔부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신장(神將)들로서 천(天)·용(龍)·야차(夜叉)·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건달파(乾闥婆)·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迦)임.
  • [註 035]
    진각(眞覺) : 고려 고종(高宗) 때의 중 혜심(慧諶).
  • [註 036]
    《지론(智論)》 : 용수 보살(龍樹菩薩)이 지은 《대지도론(大智度論)》을 말함.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密經)》을 자세히 풀이한 것으로서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하였음.
  • [註 037]
    불자(拂子) : 삼이나 짐승의 털을 묶어서 자루의 한쪽 끝에 매어달은 기구. 선종(禪宗)의 중이 번뇌와 장애를 물리치는 표지로 사용하였음.
  • [註 038]
    《전등록(傳燈錄)》 : 송(宋)나라 진종(眞宗) 경덕 원년(景德元年)에 고승(高僧) 도원(道源)이 저술한 불서(佛書). 석가(釋迦) 이래의 역대 법맥(法脈)과 그 법어(法語)를 수록한 것임.
  • [註 039]
    경·율(經律) : 교리(敎理)를 주로 하는 불타(佛陀)의 설법을 결집(結集)한 경장(經藏)과 교단(敎壇)이 지켜야 할 계율을 결집(結集)한 율장(律藏)임.
  • [註 040]
    송광사(松廣寺) : 전라남도 승주군(昇州郡) 송광면(松廣面)에 있는 절. 신라 말기에 혜린 선사(慧璘禪師)가 창건하고, 고려 명종(明宗) 때 보조 국사(普照國師)가 크게 중창하였음.
  • [註 041]
    보조(普照) : 조계종(曹溪宗)의 개조(開祖)인 지눌(知訥)의 시호(諡號).

興天寺監主尙聰上書曰:

禪是佛心, 敎是佛語, 其所以壽君福國安民則一。 洪惟殿下承宿願力, 相地建都, 百司旣修, 庶職已和。 次於都城之內, 創立佛寺, 賜號興天, 修禪本社, 其敬信佛祖, 望報龍天之意, 至深切矣。 爰命山野僧尙聰主席, 臣敢不精白此心, 弘揚正法, 以盡祝釐之職哉! 夫佛寺門中, 參禪爲最。 若上根之人, 不日成功, 發明大智。 其或未然, 正擧話頭之際, 佛祖歡喜, 龍天敬信。 前朝之季, 禪與敎, 利名是饕, 爭占名刹, 其修禪衍敎處, 僅存一二, 豈國家創立裨補之本意乎? 祖師眞覺有言曰: "禪道延國祚, 智論鎭隣兵。" 夫豈無徵而欺我哉? 願殿下繼今, 於禪敎之中, 擇有道德才行可爲領袖者, 主諸中外名刹, 而使宗禪者說禪秉拂, 主敎者講經談律, 令其後進, 禪則《傳燈》拈頌, 敎則經律論疏, 追節講習, 積以年月, 宏才碩德, 無寺無之。 雖然旣稱本社, 則其中外名刹, 宜倣松廣之制, 皆爲本社之屬, 互相糾察, 則其於作法祝釐, 雖欲陵夷, 不可得已。 比來作法之規, 皆慕僧而不得其專, 所謂畫虎不成, 反類狗者也。 臣謹按松廣祖師普照遺制, 講而行之, 著爲常法, 且使僧徒熏修朝夕, 庶幾上報殿下弘道之恩。 伏望頒布中外, 垂於不朽, 則豈不萬萬利於國家也哉!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22면
  • 【분류】
    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