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과 고명을 줄 수 없다며 표전의 작성자를 보내라고 한 명나라 자문
계품사(計稟使) 정총(鄭摠) 일행들이 북경에서 왔다.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전하기를,
"본부 상서 문극신(門克新) 등 관원이 상주(上奏)하기를, ‘조선 국왕이 지문하부사 정총(鄭摠)을 보내어 궐내에 나아가 인신(印信)과 고명(誥命)을 청합니다.’ 하였더니, 성지(聖旨)를 받드오니, ‘짐(朕)의 중국의 예전 제왕이 여러 대를 이어오면서 백성들을 애무한 사실은 문적에 밝게 드러나 있고 책에 갖추 실려 있다. 그 군왕으로 봉한 나라는 만약에 영이 한 번 나오면 삼가 따라서 지키며, 약속한 법은 감히 어김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중화(中華)의 안으로 귀화하게 하며 나라를 봉한 제도이다. 그 사린(四隣)의 이적(夷狄)들의 풍속이 각각 달라 추장마다 모두 군왕으로 봉함을 받는 것이 아니며, 옛부터 화외지맹(化外之氓)이라 해서 일찍이 명령으로 지도하고 법제로써 징계하지 않았다. 선대의 제왕들은 안정(安靜)을 힘써 언제나 탐욕하지 않고 백성들을 즐겁게 하였기 때문에 성인이 된 바이다. 천하에 덕을 펴고 벼슬을 9등으로 나누었으니, 안으로 편안하게 하고 외방을 안무해서, 의상을 드리우기만 해도 다스려지는 정치를 행하였다. 9등의 벼슬이란 무엇인가 하면, 〈동북방향으로는〉 후(侯)·전(甸)·남(男)·채(采)·위(衛)·만(蠻)·이(夷)·진(鎭)·번(蕃)이요, 〈서남방향으로는〉 빈(賓)·이(夷)·황(荒) 〈서북방향으로는〉 후(侯)·유(綏)·요(要)·황(荒) 등의 복(服)을 이름이니, 이들의 멀고 가까움을 헤아리고 가볍고 소중한 것을 나누어 안으로 귀화하게 하는 바이며, 그 왕을 끝내 왕으로 하는 것은 사이(四夷)를 화목하게 하는 덕이고 옛 성인의 마음이니, 다시 무엇을 더하겠는가? 이제 조선이 왕국(王國)이 되었고, 천성이 서로 좋아서 오게 했는데, 왕이 간악하고 간사하며 교활하고 사특하며, 그 마음대로 들어서 그 오는 관문(關文)에 인신과 고명을 청한 것은, 경솔하게 줄 수 없다. 조선은 산에 가리우고 바다로 막혀서 하늘이 만들고 땅이 베푼 동이(東夷)의 나라이다. 풍속이 달라서 짐이 만약에 인신과 고명을 주게 되면 저들로 하여금 신첩(臣妾)과 귀신(鬼神)으로 보게 할 것인즉, 너무나 탐욕이 심하지 않겠는가? 상고의 성인에게 비추어 보더라도 약속 일절은 결코 할 수 없다. 짐이 수년 전에 일찍이 그들에게 계칙해서 제도는 본속을 따르고, 법은 옛 제도를 지키며, 명령을 마음대로 하게 하되, 소문과 교화가 좋거든 오게 하고 왕이 노하거든 가는 것을 끊게 하였으니, 역시 하는 대로 듣도록 하라. 너의 예부는 이모(李某)에게 이문(移文)하여 짐의 뜻을 알게 하라.’ 하였습니다."
하고, 또 자문(咨文)에,
"본부 상서 문극신(門克新)은 삼가 성지(聖旨)를 받드오니, 이르기를, ‘예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소국(小國)이 대국을 섬기는 데 있어 지극히 공경하는 예(禮)의 가장 귀한 것은 사령(辭令)을 닦는 것이었다. 이러므로 예전의 성왕(聖王)들의 제도가 열국의 제후와 구이(九夷)와 팔만(八蠻)에게 조공하게 하고, 왕도 사령을 닦고 문자를 닦고 의사를 닦게 한 것이니, 이로써 보게 되면 위에서 아래를 취하는 것과 아래에서 위를 섬기는 것이 다 사령을 닦는 데에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 여러 나라가 분쟁하기를 마지 않는 것은 어찌된 일이었던가? 모두 의사를 닦고 사령을 닦고 문자를 닦는 것이 함께 이치에 당하지 않아서 분쟁이 그치지 않은 것이었다. 오직 정나라의 어진 재상 자산(子産)이 있어 사명(辭命)을 잘해서 공격과 정벌을 받지 않았으며, 무릇 왕래하고 교제할 때의 문사(文辭)는 비침(裨諶)이 초창(草創)을 하고, 세숙(世叔)이 토론하고, 자우(子羽)가 수식(修飾)하고, 자산(子産)이 윤문(潤文)을 해서 자세히 살피고 정밀하게 하였으므로, 제후들과 교제하는 일에 실패한 일이 적었다. 이제 조선이 명절을 당할 때마다 사람을 보내어 표전(表箋)을 올려 하례하니, 예의가 있는 듯하나, 문사(文辭)에 있어 경박하고 멋대로 능멸히 하여 근일에 인신(印信)과 고명(誥命)을 주청한 장계 안에 주(紂)의 일을 인용했으니 더욱 무례하였다. 혹 국왕의 본의인지, 신하들의 희롱함인지, 아니면 인신(印信)이 없는데도 거리낌 없었으니, 혹 사신이 받들어 가지고 오다가 중도에 바꿔치기 한 것인지도 모두 알 수 없으므로 온 사신을 돌려보내지 않겠다. 만약에 글을 만들고 교정한 인원을 전원 다 내보낸다면 사신들을 돌려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9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90면
- 【분류】외교-명(明)
○計稟使鄭摠一行人, 來自京師, 傳禮部咨, 曰:
本部尙書門克新等官奏: "朝鮮國王遣知門下府事鄭摠, 詣闕請印信誥命。" 奉聖旨: "朕中國上古帝王, 列聖相繼, 撫馭於民, 條章昭著, 具載方冊。 其分茅胙土之邦, 若令一出, 欽遵守之, 約束之法, 至不敢有違, 此華夏化內封疆之制也。 其四隣夷狄, 風殊俗異, 各各酋長, 皆非分茅胙土者也。 古稱化外, 未嘗令以導之, 法以懲之。 先諸聖人務以靜爲, 尙以不貪而樂民, 所以爲聖人也。 德布天下, 爵有九等之分, 安內而撫外, 垂衣裳之治。 爵九等云何? 侯、甸、男、采、衛、蠻、夷、鎭、(蕃)〔藩〕 , 賓、夷、荒、侯、綏、要、荒。 是等度遠近分輕重, 此化內之所爲也。 其王終王, 此睦四夷之德, 先聖人之心, 更何以加哉! 今朝鮮在當王之國, 性相好而來王, 頑嚚狡詐, 聽其自然, 其來文關請印信誥命, 未可輕與。 朝鮮限山隔海, 天造地設, 東夷之邦也, 風殊俗異。 朕若賜與印信誥命, 令彼臣妾, 鬼神監見, 無乃貪之甚歟? 較之上古聖人, 約束一節, 決不可爲。 朕數年前曾勑彼, 儀從本俗, 法守舊章, 令聽其自爲聲敎; 喜則來王, 怒則絶行, 亦聽其自然。 爾禮部移文李某, 使知朕意。"
又咨曰:
本部尙書門克新等官欽奉聖旨: "自古及今, 以小事大, 至敬之禮, 莫貴乎修辭。 是以古先聖王之制, 列國諸侯九夷八蠻, 有不貢不王者, 則修辭修文修意。 以此觀之, 上之取下, 下之事上, 皆在乎修辭。 昔者, 列國紛爭不已, 爲何? 皆爲修意修辭修文, 俱不中理, 所以紛爭不已。 惟鄭有賢相子産, 善於辭命, 不受攻伐。 凡往來交際文辭之間, 裨諶草創, 世叔討論, 子羽修飾, 子産潤色, 詳審精密。 以此應對諸侯, 鮮有敗事。 今朝鮮每遇時節, 遣人進賀表箋, 似乎有禮, 然文辭之間, 輕薄肆侮, 近日奏請印信誥命狀內, 引用紂事, 尤爲無禮。 或國王本意, 或臣下戲侮, 況無印信所拘, 或齎奉使臣中途改換, 皆不可知。 以此來使未可放回。 若將撰寫校正人員, 盡數發來, 使者方回。"
- 【태백산사고본】 2책 9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90면
- 【분류】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