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노비에 따로 도감을 두고 노비 문제를 변정하게 하다
형조 도관(刑曹都官) 박신(朴信) 등이 상언(上言)하였다.
"신 등은 듣자오니, 치세(治世)를 이어받은 자는 그 방법을 전과 같이 해야 하고, 난세(亂世)를 이어받은 자는 그 방법을 고쳐야 한다 하옵니다. 이것은 삼대(三代)의 성왕(聖王)도 능히 폐단을 없이 하려는 정치가 없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고려 시대의 토지 제도가 문란한 것을 민망하게 여기시고 사전(私田)을 혁파해서 경계(經界)를 바루시고, 공사(公私)의 전적(田籍)을 다 불살라 버리고 다시 법제(法制)를 정하여 각각 공문(公文)을 주어, 전지가 일정한 한도가 있고, 나라에는 성법(成法)이 있으므로, 호강(豪强)들이 토지를 겸병(兼倂)할 뜻이 없어지고, 친척들은 쟁송(爭訟)의 원통함이 없어져서, 공사(公私)가 모두 넉넉해지고 상하(上下)가 서로 편안하게 되었으니, 실로 만세(萬世)의 양법(良法)이며 아름다운 뜻이로되, 오직 노비(奴婢)의 한 가지 일만이 아직도 옛 제도대로 따르고 있어, 쟁송(爭訟)이 더욱 번잡하고 간위(奸僞)가 날로 더하여져서, 골육지친(骨肉至親)이 입을 비죽거리고 서로 힐난하며, 문중(門中)이 갈라지고 집안이 나뉘어져서, 원망이 원수와 같을 뿐 아니라, 더구나 그 외에 빼앗고 몰래 취하는 것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각기 이기기를 힘써서 백 가지로 위조하고 가식하여 참과 거짓이 뒤섞이기 때문에, 세월만 지체되고, 혹 간사하고 교활한 자가 있어 남의 비밀을 찾아내고, 혹 탐욕을 내는 자가 있어 뒤에 날짜를 고쳐서, 문계(文契)가 한만(汗漫)하고 언사(言辭)가 반복(反復)되어, 듣는 자로 하여금 체결하는 데에 현란(眩亂)하게 하여, 송사를 판결하기가 가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당해 관리가 고심초사(苦心焦思)하여 비록 공정하게 판결하였어도, 비방하는 자가 다투어 일어나고, 판결한 사람이 갈리게 되면 또 다시 송사를 올려서 끝장이 없으니, 폐해의 큰 것이 이와 같은 것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전일(前日)에 이러한 것을 싫어하시어 판결을 얻은 자에게 주도록 허락하시고 그 폐해를 고쳤으나, 일찍이 송사해서 결정지은 외에 또 쟁단(爭端)이 있는 것이 하나뿐이 아니므로, 송사하는 자가 전과 같아서, 성조(盛朝)의 누(累)가 되오니, 법을 경신(更新)하지 않고 어찌 이 폐해를 다 고치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 천의(天意)에 응하고 민의(民意)에 순종하여 왕업을 세우시고, 통서(統緖)를 자손에게 전하려 하시오니, 무릇 자손 만대를 위해서 염려하시는 바가 지극히 상세하고, 또 구비하셨사온데, 무엇을 꺼리어서 이 폐단만을 남겨 두시어, 풍속을 해치고 인심을 상하게 하는 단서가 되게 하십니까?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예감(睿鑑)을 드리우시와 과단성 있는 결정을 내리시고, 굽어 신 등의 어리석은 계책을 채택하시와 성대(盛代)의 신전(新典)을 세우시어, 커다란 폐해를 고치고 나라를 바루는 것이 오직 이 때입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호조(戶曹)의 급전사(給田司) 예(例)에 따라, 대성(臺省)에 명하여 각 한 사람씩이 도관(都官)에서 개적(改籍)하는 임무를 맡게 하여, 다투고 송사하는 해를 따져서, 거짓을 금하는 법을 밝게 세우고, 원문(原文)을 수납(收納)하여 그 내력을 상고해 보아서, 관직의 고하와 노비의 다소를 물론하고 현재 부리고 있는 수효를 기록하여 1통을 만들고, 각기 공문(公文)을 주고 구적(舊籍)은 불태워 버려서, 금일의 공문으로써 후세(後世)의 원적(原籍)이 되게 하면, 문서가 간단하고 쟁송이 그칠 것이며, 인심이 안정되고 풍속이 후해질 것입니다. 전날 사전(私田)을 개혁할 때에 약간의 원망하고 비방하는 일이 있었으나, 대개 전법(田法)은 직품(職品)의 고하(高下)로써 토지의 많고 적은 것을 정하므로, 득실(得失)의 다과(多寡)가 서로 10이나 백에 이르게 되어 논의가 분분했으되, 오랜 뒤에 안정되었습니다. 지금 노비의 일은 실로 이것과 달라서, 일찍이 부리던 노비는 다만 내력만을 상고하고, 새로 만든 천적(賤籍)은 각각 그 상전에게 돌려주면, 그 사세(事勢)가 어렵지 아니하고, 사람들도 도리어 편리하게 여길 것입니다. 만약에 ‘빼앗아서 그대로 가진 자가 제 마음대로 빼앗게 되어, 미미한 존재가 없는 자는 원통해도 소송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원컨대 별사(別司)를 두도록 명하여, 그 기한을 정해서 위와 같은 송사를 한결같이 모두 판결한 뒤에 공문을 주고, 옛문서는 불살라 버리게 하여, 거짓의 시초를 없애고 다투어 빼앗는 길을 영구히 막으소서. 관청과 절의 노비에 이르러서는 다시 문서를 만들되, 역시 이 예(例)에 따라 번잡하고 문란하지 않게 하고, 그 금령 조목(禁令條目)은 마땅히 곧 의논하여 아뢰게 하소서."
임금이 도평의사사에 명하여 의논해서 아뢰게 하였다. 사사(使司)에서 형조 도관의 아뢴 대로 의논하였으되, 공사 노비에 대하여 따로 도감(都監)을 두고, 노비 문서를 새로 만들어 주고 옛문서는 모두 불태워 버리며, 그 서로 송사하는 노비는 주장 도관(主掌都官)으로 하여금 신축년 이후의 일은 병자년으로 위시(爲始)해서 2년을 위한(爲限)하여 결정해 준 뒤에, 도감에 전보(傳報)하고, 노비 문서를 만들어 주고, 옛문서는 역시 모두 불살라 버려 영구히 쟁단(爭端)을 없애고자 하였으므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87면
- 【분류】신분-천인(賤人) / 역사-고사(故事)
○刑曹都官朴信等上言: "臣等聞繼治世者, 其道同。 繼亂世者, 其道變, 此三代聖王, 不能無救弊之政也。 恭惟殿下, 憫前朝田制之亂, 遂革私田, 以正經界, 公私田籍, 盡行燒毁, 更定法制, 各給公文, 田有定限, 國有成法。 故豪强絶兼幷之志, 親戚無爭訟之冤, 公私贍足, 上下相安, 誠萬世良法美意也。 獨有奴婢一事, 尙循舊轍, 爭訟益繁, 奸僞日滋, 骨肉至親, 反唇相詰, 分門割戶, 患若仇敵。 而況其他奪攘, 詎可勝言! 各務求勝, 造飾百端, 眞僞混淆, 以故淹滯。 或有奸黠, 攻發陰伏, 或有貪婪, 追改日月, 文契汗漫, 言辭反復, 至使聽者, 眩於處決, 弭訟之方, 可謂難矣。 當該官吏, 苦心焦思, 決雖公正, 謗者競起, 決者見遞, 旋又呈訟, 無有涯涘, 弊之巨者, 莫玆若也。 殿下前日, 惡其如此, 許於得決者給之, 以革其弊。 然曾訟得決之外, 又有爭端非一, 故訟者如前, 以累盛朝。 法匪更新, 曷革玆弊? 今殿下應天順人, 創業垂統, 凡爲子孫萬世慮者, 至詳且備矣。 何憚而獨留此弊, 以貽傷風俗毁人心之端乎? 伏惟殿下, 深垂睿鑑, 廓揮剛斷, 俯採臣等之迂謀, 以立盛代之新典, 庸革巨弊, 以正國家, 惟其時矣。 願自今, 依戶曹給田司例, 命臺省各一員, 掌都官改籍之務, 推源爭訟之害, 明立詐僞之禁, 收納原文, 考其脈胳, 勿論官職高下、奴婢多小, 將時役之數, 具錄一通, 各給公文, 火其舊籍, 以今日之公文, 爲後世之原籍, 則文契簡而爭訟息, 人心定而風俗厚矣。 向者革私田之時, 稍有怨讟之興。 蓋田法, 以職之高下, 定田之多少, 故得失多寡, 至相十百, 論議紛紜, 久而後定, 今奴婢之事, 實異於是。 將曾役奴婢, 只考來歷, 作新賤籍, 各還其主, 則其勢非有難者, 而人反以爲便矣。 若曰攘奪仍執者, 得以肆志, 被奪微劣者, 冤抑莫訴, 願命立別司, 定其期限, 將上項爭訟, 一皆剖決, 然後隨給公文, 燒毁舊籍, 掃去詐僞之萌, 永杜爭奪之門。 至於官寺奴婢, 改作其案, 亦從此例, 毋致繁亂。 其禁令條目, 當續議以聞。" 上命都評議使司擬議申聞。 使司議得: "如刑曹都官所申, 公私奴婢, 別立都監, 賤籍改成給, 舊籍一皆燒毁。 其相訟奴婢, 令主掌都官, 將辛丑年以後事, 自丙子年爲始, 限二年決給, 傳報都監, 賤籍成給, 舊籍亦皆燒毁, 永絶爭端。"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87면
- 【분류】신분-천인(賤人)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