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에 국왕의 고명과 조선국의 인장을 내려달라고 청하는 글
예문춘추관 태학사(太學士) 정총(鄭摠)을 보내어, 한량 기로(閑良耆老)와 대소 신료(大小臣僚)들이 신문(申文)을 가지고 경사(京師)에 나아가,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청하게 하였다. 그 신문은 이러하였다.
"조선국 도평의사사 좌시중(左侍中) 조준(趙浚) 등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소방(小邦)은 왕씨(王氏)가 덕을 잃어서 준(浚) 등은 일국의 신민과 함께 이(李) 【휘(諱).】 를 임금으로 추대하였습니다. 홍무 25년 7월 15일에 지밀직사사 조반(趙胖)을 보내어 황제께 주달하였고, 계속해서 문하 평리(門下評理) 조림(趙琳)을 보내어 표문(表文)을 올려 아뢰게 하였더니, 삼가 성지(聖旨)를 받자오니, 권지 국사(權知國事)로 윤허하시고, 예부에서 온 자문을 받자오니, 그 사연에, ‘나라의 이름을 무엇으로 고쳐야 하느냐? 빨리 와서 알리라.’ 하옵기로, 이에 의하여 즉시 지밀직사사 한상질(韓尙質)을 보내어 주본(奏本)을 가지고 경사(京師)에 가서 삼가 성지를 받자오니, 이르기를, ‘동이(東夷)의 칭호는 오직 조선이라 하는 것이 아름답고, 또 그 내력이 오래 되니, 그 이름을 근본으로 삼아 본받을 만하니.’ 하셨으니, 삼가 이에 따라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밖에 홍무 26년 3월 초9일 문하 평리 이염(李恬)을 보내어 전조 고려 국왕의 금인(金印)을 부송(附送)했고, 또 그 해 12월 초8일에 좌군 도독부(左軍都督府)의 자문을 받자와 삼가 성지(聖旨)의 1절(節)을 뵈오니, 그 사연에, ‘정명(正名)에 합치되게 지금 조선이라고 이름을 고쳤은즉, 표문에 전대로 권지 국사라 함은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하겠다.’ 하셨으니, 이 분부를 받자와 일국 신민들이 벌벌 떨면서 황송히 여기오며, 모두 국왕이라고 시행하라 하오나, 오늘날 비록 국왕이라 일컬을지라도 명칭이 끊어져 내려 주신 고명과 조선국의 인장을 받지 못하여, 일국의 신민들이 밤낮으로 옹망하고 감히 사연을 아뢰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살피시기를 청하와 번거롭게 아뢰오니, 국왕의 고명과 조선의 인신(印信)을 주시어서 시행하게 하옵소서."
-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86면
- 【분류】외교-명(明)
○遣藝文春秋館太學士鄭摠, 齎閑良、耆老、大小臣僚上禮部申, 赴京請誥命印章。 其申曰:
朝鮮國都評議使司左侍中趙浚等, 竊謂小邦, 王氏失德, 浚等與一國臣民, 推戴李諱爲主。 洪武二十五年七月十五日, 差知密直司事趙胖, 奏達天庭, 繼差門下評理趙琳, 奉表陳奏, 欽奉聖旨, 許允權知國事。 準奉禮部來咨內云: "國更何號, 星馳來報。" 準此, 卽差知密直司事韓尙質, 齎擎奏本赴京, 欽奉聖旨節該: "東夷之號, 惟朝鮮之稱美, 且其來遠矣, 可以本其名而祖之。" 欽此, 除欽遵外, 洪武二十六年三月初九日, 差門下評理李恬, 送納前朝高麗國王金印, 又於當年十二月初八日, 準奉左軍都督府咨, 欽奉聖旨內一款節該: "卽合正名。 今旣改號朝鮮, 表文仍稱權知國事, 未審何謀?" 欽此, 一國臣民, 戰栗惶懼, 咸請國王欽遵施行。 見今雖稱國王名號, 切緣未蒙頒降誥命及朝鮮國印信, 一國臣民, 日夜顒望, 仰天籲呼。 伏請照驗, 煩爲聞奏, 乞賜頒降國王誥命及朝鮮印信施行。
-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86면
- 【분류】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