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 7권, 태조 4년 3월 9일 임인 2번째기사
1395년 명 홍무(洪武) 28년
상산군 이민도의 졸기
상산군(商山君) 이민도(李敏道)가 졸(卒)하였다. 민도는 중국 하간(河間) 사람으로 원(元)나라 경원로 총관(慶元路摠官) 이공야(李公埜)의 아들이다. 부친이 〈국사(國事)에〉 죽었으므로 동지탁주사(同知涿州事)에 임명되었으나, 원나라가 어지럽게 되어 외가(外家)인 명주(明州)에 우거(寓居)해 있었다. 고려의 사신 성준득(成準得)이 〈원말군웅의 하나인 오왕(吳王)〉 장사성(張士誠)의 곳에서 돌아올 때, 민도가 자청하여 함께 〈고려에〉 와서 의술(醫術)과 점술(占術)로 이름이 나타나 왕왕 징험이 있으므로, 서운 부정(書雲副正)과 전의 정(典醫正)을 역임하고, 자혜부 사윤(慈惠府司尹)이 되어 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를 겸임하였다. 태조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은근히 추대(推戴)할 뜻을 가지고 역대의 연혁(沿革)을 설명하였다. 태조가 즉위하자 공신(功臣)의 열(列)에 참예하여 벼슬이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에 이르고, 추충 협찬 개국 공신(推忠協贊開國功臣)의 호를 받았다. 그의 처향(妻鄕)이 상주(尙州)이므로 상산군(商山君)을 봉하고, 나이 60세에 돌아가니, 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를 증직하고, 시호를 직헌(直憲)이라 하였다. 아들이 있으니 이진(李蓁)이다.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76면
- 【분류】인물(人物)